▲ 출처= CJ대한통운

[이코노믹리뷰=박정훈 기자] 물류기업 CJ대한통운이 풀필먼트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밝히면서 관련 업계로부터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커머스에 최적화된 물류관리 서비스인 풀필먼트를 막강한 물류 인프라를 보유한 CJ대한통운이 직접 운영함으로 셀러(온라인 판매자)들에게는 곧 선택지가 넓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 물류업계에서는 두 가지 상반된 해석이 나오고 있다. 해석이 갈리는 논제는 “과연 감당할 만한 자신이 있는가”다.  

왜 풀필먼트인가
 
풀필먼트(Fulfillment)의 기본 개념은 마감 시간 없이 계속 이어지는 전자상거래 주문에 대응할 수 있는 물류 관리 체계다. 전자상거래 플랫폼을 통해 상품을 판매하는 셀러들은 시간에 관계없이 쏟아지는 모든 주문에 즉각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상품을 배송해주는 업체에게 주문 상품의 재고 관리에서부터 배송에 이르는 모든 절차를 맡기면 그만큼 비용과 시간을 절약함과 동시에 수익의 극대화를 도모할 수 있다. 즉, 셀러(개별 판매자 혹은 제조·납품기업)은 물류센터에 상품의 재고만 확보해두면 재고관리, 배송은 풀필먼트 서비스 기업이 ‘알아서’ 해결한다. 풀필먼트의 개념을 일반화 시킨 것은 글로벌 이커머스 기업 아마존의 풀필먼트 서비스(FBA·Fulfillment By Amazon)다. 이에 따라 Fedex, DHL, UPS 등 글로벌 물류기업들도 넘치는 이커머스의 물류 수요에 대응해 각자의 브랜드를 앞세운 풀필먼트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 출처= 이베스트투자증권

통계청의 조사에 따르면 2015년 연간 54조원 수준이었던 우리나라 이커머스 시장규모는 2019년 약 134조원대까지 커지면서 지난 5년 동안 2배 이상 커지는 놀라운 성장속도를 보여줬다. 이러한 시장의 변화는 자연스럽게 우리나라에도 이커머스에 특화된 풀필먼트에 대한 수요를 발생시켰다. 

쿠팡의 ‘과도기적’ 풀필먼트 

쿠팡의 ‘로켓배송’은 엄밀히 말해서 개념상으로 완벽한 풀필먼트는 아니다. 아마존의 FBA와 비교해서 보자면 아마존은 자사 플랫폼에 입점한 모든 판매자의 상품을 대상으로 풀필먼트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쿠팡은 자사가 직매입한 상품에 한해 풀필먼트 서비스를 적용하고 있다. 

쿠팡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물류 체계를 직접 관리하는 이커머스 기업이기는 하지만 자사 플랫폼의 모든 주문을 처리하기에는 아직 역량이 부족하다. 그렇기에 쿠팡에 입점한 개별 판매자들은 물류 업무를 직접 처리하거나 3PL(3자 물류, 배송업무 대행 전문)업체 혹은 중소 풀필먼트 업체에게 배송 대행을 맡긴다. 쿠팡이 지향하는 방향성이 아마존과 유사한 것을 고려하면 쿠팡은 앞으로 적용 대상이 개별 입점 판매자까지 확대된 풀필먼트 사업을 전개할 가능성이 높다. 이를 감안하면 현재 쿠팡의 풀필먼트는 완벽한 풀필먼트로 가기 위한 과도기적 성격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지난 2017년 10월 쿠팡은 기존의 물류부문 자회사 ‘컴서브’의 사명을 쿠팡 풀필먼트 서비스(CFS·Coupang Fulfillment Services)으로 바꾸고 이를 별도의 사업부문으로 분사시켰다. 아직까지 CFS는 쿠팡의 기존 물류 인프라 운영을 지원하는 정도의 업무를 하고 있지만 CFS를통해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 내에서 축적된 자사의 견고한 입지를 활용해 풀필먼트 혹은 3PL 업무를 시작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둔 상태다.

▲ 출처= CJ대한통운

CJ대한통운 “다 계획이 있었다” 

지난 19일 CJ대한통운은 네이버 브랜드스토어에서 판매되는 LG생활건강의 상품에 대한 풀필먼트 서비스 ‘CJ대한통운 e-풀필먼트’를 시작한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네이버 브랜드스토어를 통해 판매되는 LG생활건강의 상품 재고는 CJ대한통운의 곤지암 메가허브 풀필먼트 센터에 관리되고 주문 접수와 즉시 상품은 곤지암 센터의 허브터미널로 이동된다. 이후 자동화물분류기의 분류 과정을 거쳐 전국으로 배송되는 방식이다. 기존에 택배업체가 고객사에서 직접 물건을 허브터미널로 가져와 상품을 다시 분류하는 과정이 생략된 풀필먼트다. 

과감한 도전 vs 방향성에 대한 의문 

CJ대한통운의 풀필먼트는 물류업계에서 두 가지 관점으로 해석되고 있다. 첫 번째 관점은 풀필먼트 시장 규모 성장에 맞춘 지극히 자연스러운 대응이라는 것이다. 이베스트투자증권 오린아 연구원이 지난해 11월 18일 발표한 ‘배송 전쟁’ 리포트에 따르면 국내 풀필먼트 시장규모는 지난해 약 1조8800억원으로 추산됐다. 현재의 성장세를 고려할 때 2022년이면 2조3000억원까지 그 규모가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처럼 관련 시장의 새로운 ‘판’이 만들어짐과 동시에 경제 규모가 빠르게 커지고 있기 때문에 CJ대한통운의 사업 확장은 어떤 측면에서 예정된 수순이라는 것이다. 업계에는 다소 갑작스럽게 알려진 것이만 CJ대한통운은 2015년부터 자사의 풀필먼트 서비스를 염두하고 사업을 준비해왔다. CJ대한통운 관계자는 “2016년 공사가 시작된 곤지암 메가허브는 처음 설계될 때부터 풀필먼트를 위한 공간이 이미 확보돼 있었다”라고 말했다. 

▲ 출처= 쿠팡

그러나 두 번째 관점은 CJ대한통운이 추구하는 풀필먼트 사업 확장의 방향성이나 준비 정도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그간 CJ대한통운은 곤지암 허브로 대표되는 대형센터 그리고 전국 단위의 배송거점을 활용한 규모의 경제를 통한 일반 택배로 수익성을 추구해왔다. 그러나 일단 우리나라에서 전국 단위 온라인 주문 수요를 감당하고 있는 풀필먼트는 일단 수익성이 보장돼있지 않다. 가장 대표적인 비교의 사례가 쿠팡이다. 쿠팡은 완벽한 단계가 아닌 ‘과도기적’ 풀필먼트를 나름대로 완성하기 위해 수 년 동안 수 조원대의 적자를 감당하면서 물류센터와 지역캠프 포함 총 168개에 이르는 오프라인 인프라를 갖췄다. 이는 쿠팡이 국내 이커머스 업체에서 절대적인 입지를 갖춘 원동력이 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과연 CJ대한통운이 ‘아마존과 같이 되고자 하는 대의가 있는 쿠팡처럼 적자를 감당할 수 있는지, ‘풀필먼트’의 이름을 앞세울 수 있을 만한 오프라인 인프라를 갖춰두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물류-유통 미디어 플랫폼 비욘드엑스 김철민 대표는 “CJ대한통운이 이커머스 물류 역량 강화를 위한 풀필먼트 사업을 확장하는 것은 글로벌 규모로 일어나는 변화를 감안하면 분명 옳은 방향”이라면서 “다만 그 전제 조건으로는 과감한 투자와 향후 몇 년간 적자를 감수해도 좋다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커머스인 쿠팡과 물류기업인 CJ대한통운이 왜 풀필먼트 사업을 하느냐에 대한 궁극적인 접근 방식에서 바라보면, 적자를 감내하면서도 서비스 역량을 강화하는 쿠팡과 신규 수익창출을 목표로 접근하는 CJ대한통운의 시작점은 다를 수 있다”라면서 “업계 일각에서 나오는 여러 우려에 대해 CJ대한통운이 그 답을 찾고자 하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