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식사시간이 급하고 짧아 유난히도 위와 장에 관련된 질환이 많이 발생한다. 또한 급체 또는 체했다고 스스로 진단한 뒤 민간요법을 이용하거나 병원을 찾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사실 급체는 병명이 아니라 증상이다. 서양 의학에서는 정의된 것이 없어 소화불량 또는 급성 소화불량 등으로 비슷하게 표현한다. 급체는 사람마다 증상의 호소가 다양한데, ‘명치가 막힌 것 같다’ ‘소화가 안 된다’ ‘가슴이 답답하다’ ‘토할 것 같다’ ‘신트림이 자꾸 올라온다’ ‘상복부가 빵빵하다’ 등으로 증상의 구분이 애매모호한 경우가 많다.

급체의 증상을 통해 나타나는 질환은 매우 많다. 그 중 위경련, 급성 위염, 위식도 역류성 식도염, 급성 장염이나 장 마비 등이 가장 흔하고, 그 외 담낭염, 급성 충수염(맹장염) 초기, 과음, 진통제 등의 약물이 원인인 경우가 있다. 하지만 드물게 위암, 담낭암, 췌장암, 대장암 등이 원인인 경우가 있어 주의를 요한다.

필자가 내과 전공의 3년차 때 70세 초반의 약간 뚱뚱한 할머니가 급체했다고 병원을 찾은 적이 있다. 지병으로 20년 동안 당뇨가 있으며, 명치가 꽉 막힌 것처럼 가슴까지 답답하고 불과 몇 달 전 위 내시경과 복부 초음파 검사에 이상이 없었다 하면서도 살면서 이렇게 심한 체증은 처음이라고 통증을 호소했다.

그 당시 순환기 내과에서 수련하던 필자는 당뇨 또는 비만이 있는 30%가량의 고령자에게 가슴 통증 없이 심근 경색이 나타난다는 내과 교과서의 한 문장이 떠올랐고 심전도 검사를 실시했다.

할머니는 체했는데 심장 검사를 하냐고 반문했지만 심전도 결과에서 예상대로 ST 분절상승(급성 심근 경색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변화)이 나타났다. 또 이후 심장 효소 검사에서도 최종적으로 양성으로 판명됐다. 다행히 할머니는 심장센터에서 치료가 잘 돼 아무런 합병증 없이 퇴원했다.

이후 찾아온 젊은 남자 환자의 경우도 그랬다. 체했으니 약만 달라는 환자에게 다양한 질환 때문에 급체할 수도 있으며 특히 급성 충수 돌기염 초기가 의심되니 혹시 아래쪽 배가 아파오면 즉시 병원에 연락하라고 했다. 이틀 뒤 그 남자는 예상대로 급성 충수 돌기염으로 진단이 나와 수술을 했다.

젊은 여성에게 주로 발생하는 질환으로 발작성 양성 현훈증 또는 현기증이 있다. 이 역시도 급성 체증을 일으킨다. 마치 차멀미나 배멀미를 하듯 어지럽고 속이 꽉 막힌 듯하다가 토하기도 한다. 처음 증상은 어지러움이나 급체로 병원을 찾는다. 흔히 ‘달팽이관’이라고 하는 몸의 평형을 담당하는 귀의 전정기관이 이상을 나타내면서 멀미 같은 증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렇듯 급체는 주로 위나 장, 담도 등 소화기 이상으로 발생하지만, 신체에서 다른 문제가 생겼을 때도 같은 증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 증상이 같다고 다 같은 병이 아니며, 같은 병이라도 그 증상이 천양지차로 나타날 수 있다.

양종욱 성민병원 부장(내과)
■ 인하대 의대, 가천의대 외래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