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영학의 아버지’이자 ‘CEO들의 영원한 스승’인 곽수일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는 새롭게 정립하기 시작한 ‘포스트모던 경영이론’을 꾸준히 확장해 나가고 있다.

최근에는 마케팅과 조직행동론에도 이 이론을 적용하기 위해 연구 중이다.
곽 교수는 포스트모던 경영이론의 근간을 이루는 정보통신의 비약적 발전이 이번 위기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이번 위기를 겪으며 변화될 소비자들의 행동패턴에 대해서도 주목하고 있다.

곽 교수는 국내 경영인들의 위기대응 능력을 높게 평가한다. 고용을 큰 폭으로 줄이지 않고도 고통분담이라는 방법으로 대응한 점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가 생각하는 국내 경영인들의 또 다른 장점은 벽이 나타나면 그것을 넘어가려는 의지가 강하다는 것.

곽 교수는 요즘 비가 와도 즐겁고, 해가 나도 즐겁다고 말한다.
4년 전부터 선산이 있는 여주에 심기 시작한 묘목 생각 때문이다.

비가 오면 자신이 키우는 나무들이 목을 축일 수 있다는 생각에, 해가 나면 신나게 광합성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즐거운 것이다.

그가 생각하는 위기극복의 열쇠는 바로 긍정의 힘과 위기를 극복하려는 의지에 있었다.

추석은 주로 어떻게 보내십니까.
선산이 있는 여주에는 미리 다녀오고 추석 연휴기간에는 주로 가족들과 집에서 보낸다. 이번 추석에는 서울에 있는 친구들과 조촐한 오찬모임을 갖기로 했다.

지난해부터 포스트모던 경영이론을 세우는 데 집중하고 계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론은 많이 진척됐나요.
처음보다 더 다양한 부분으로 확장 적용하고 있다.

처음에는 경영학 원론적인 차원에서 정보통신의 발달이 생산에 미치는 영향에 주로 초점을 맞추었는데 최근에는 마케팅과 조직행동론 분야에도 포스트모던 경영이론을 적용해 보고 있다.

마케팅에 포스트모던 경영이론을 도입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입니까.
오늘날의 마케팅 지식은 한계에 이르렀고, 그 한계를 돌파하게 해 줄 열쇠가 정보통신기술의 비약적 발전에 있다.

이제는 ‘Future is past’, 즉 미래가 과거가 되는 사회다. 미래를 미리 예측하고 마케팅하는 시대라는 말이다.

예를 들어 설명해 주신다면.
얼마 전 넷플릭스(Netflix)라는 온라인 DVD 대여업체에서 100만달러를 상금으로 건 행사를 진행했다.

고객의 행동패턴을 현재 넷플릭스가 하고 있는 방식보다 10% 이상 효율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팀에게 상금을 주기로 한 것이다.

고객이 과거에 빌린 DVD를 분석해 앞으로 어떤 DVD를 빌릴지 그 행동패턴을 예측하는 것인데, 실제로 한 팀이 100만달러의 상금을 받았다.

업계 관계자들은 넷플릭스가 1000만달러 이상의 가치 있는 지식을 얻었다고 평했다. 그만큼 정확한 미래 예측이 마케팅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고, 이는 포스트모던 경영이론으로 설명 가능하다.

조직의 인사구조, 조직행동론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는데요.
인사조직에도 ‘조직 없는 조직화’라는 엄청난 변화가 올 것이다. 소수가 인터넷을 통해 조직하면 다수가 이에 참여해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방식이 기업에서도 유용하게 쓰일 것이다.

지난번 촛불집회는 이러한 모습의 뼈대를 보여준 사례라 하겠다. 물론 촛불집회는 사회·정치적 현상과 따로 떼어 설명할 수 없지만 새로운 조직화 방식의 골격만큼은 기업에서도 눈여겨봐야 한다.

이제는 꼭 그 기업에 소속된 직원이 아니더라도 프로젝트에 따라서 그 회사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게 되는 일이 늘어날 것이다.

이번의 경제위기에 대해서도 포스트모던 경영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까.
사실 이번 위기도 포스트모던 경영이론의 핵심이 되는 정보통신기술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옳다 그르다의 판단을 내리기는 어렵지만 어떤 측면에서든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다.

예를 들면 파생상품들이 이처럼 급속도로 판매되고, 또한 그로 인해 이처럼 세계 경제가 하루아침에 무너진 일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이번 위기는 정보통신기술의 발전과정에서 생긴 하나의 변화로 파악해야 된다는 입장이다.

후학들 중에 경영인들이 많이 있으실 텐데 이번 위기 때문에 힘들다고 찾아온 사람은 없었나요.
최근 1년 사이에는 다들 생존전략에 대해 고민한 것 같다. 직접 찾아온 사례는 없었다. 다만 나는 국내 경영인들이 이번 위기에 잘 대응했다고 본다.

특히 잡셰어링(Jobsharing)과 같은 고통분담 전략은 대규모 구조조정을 하지 않고도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 생각한다.

아직 신규 고용은 여의치 않지만 경제활동 인구의 실업률은 다른 국가에 비해 매우 적었던 것이 사실이다.

최근 주가도 많이 회복되고 환율도 안정되는 등 긍정적 지표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위기가 어느 정도 극복됐다고 보십니까.
이렇게 단시일 내에 무너진 것을 보면 경기가 회복되고 있다고 확신하기는 사실 어렵다.

미국과 유럽이라는 세계시장의 2대 축이 회복되지 않으면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에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미국이 오래 끌 것으로 보인다. 경영인들은 이에 대비하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

대비라 하면 어떤 것부터 해야 할까요.
말했지만 지난 1~2년 동안 국내 기업들은 생존전략을 짜는 데만 골몰했다. 하지만 이제는 시장점유율을 유지·확대하는 전략을 준비해야 된다고 본다.

몇몇 없어진 기업들로 인해 시장에 빈 공간이 많아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인원과 비용을 줄이고 최소비용으로만 투자했다면 이제는 그 빈 공간을 누가 먼저 선점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할 때이다.

또 한 가지 대비할 것이 있다면 소비자들의 변화된 행동패턴이다.

이번 위기를 겪으면서 소비자들의 행동패턴이나 심리에도 변화가 찾아왔다는 말씀이신지요.
미국이나 일본을 보면 소비자들의 변화된 행동패턴에 맞춘 사업들이 늘고 있다.

이번 위기를 겪으면서 브랜드가치를 최우선으로 여기던 소비자들 중 상당수가 합리적인 가격을 최우선으로 여기게 된 것 같다.

특히 고급 브랜드를 상당히 좋아하던 일본에서의 변화는 놀랍다.

유니클로와 같은 브랜드의 성공이 이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까.
유니클로 사례를 해외 언론에서도 앞다투어 다루고 있다. 유니클로는 좋은 품질을 유지하면서 적절한 수준의 가격대를 형성해 큰 성공을 거두었다.

상품가격에서도 양극화가 심한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적절한 가격 수준의 제품 시장이 없는 것 같다.

이 시장은 엄청난 잠재력이 있지만 아직 국내 기업 중에서는 적극적으로 공략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미국이나 일본 소비자들의 행동패턴 변화가 국내에도 그대로 이어질 것이라 생각하시는지요.
꼭 그렇진 않겠지만 분명 어떠한 변화가 올 것이고 경영자라면 이 부분을 가장 먼저 감지해야 한다.

업종에 따라 그 변화의 양상이 다를 것이라 본다. 자신의 분야에서 소비자들이 어떤 변화된 행동패턴을 보이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위기를 겪으며 케인스주의가 다시 부활하고 케인시안들이 주목받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케인시안들의 덕을 많이 본 게 사실 아닌가. 위기에선 케인스주의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위기 시가 아니라면 금리를 통해 시장을 조율하는 게 낫겠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케인시안들의 정책이 큰 효과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

다만 한국에서는 출구전략을 매우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시중에 돈이 너무 많이 풀렸다.

이번 위기를 통해 경영자들이 배워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인간행동과 심리에 대한 분석을 경제학의 틀 안으로 가져오지 못한 것 같다. 파생상품 같은 것은 수학적으로 분석하면 확실하다.

하지만 인간이 어떤 심리에 의해 투자를 결정하는지에 대한 분석은 아직까지 초보적인 수준에 있는 것 같다.

이 부분에 대한 분석을 과학화할 수 있다면 이번 같은 위기를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개인적으로는 인생에 있어서 언제가 가장 위기였습니까.
큰 수술을 두 번 받았다. 한 번은 정말 위험했다. 하지만 긍정의 힘으로 이겨냈다. 췌장암 선고를 받았던 랜디 포시 교수가 쓴 《마지막 강의》라는 책은 ‘꿈을 가져라, 그리고 벽이 있으면 넘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당시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만보를 걸으며 극복하려고 노력했다. 벽을 넘어설 수 있다는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는 국내 경영인들도 잘하고 있는 부분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현장에 있는 경영자들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
요즘 시골에 가끔 가서 묘목을 심는다. 식물은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큰다는 말이 있다. 정말 그렇게 느낀다.

자주 갈수록 더 잘 자란다. CEO도 묘목을 심는 마음으로 경영을 하면 좋을 것 같다. 기업도 CEO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큰다.

솔선해서 더 열심히 뛰면서 위로는 경영전략을 세우고, 아래로는 조직관리에도 힘쓰는 경영에 대해 이번 추석을 계기로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다.

이재훈 기자 huny@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