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은 지리산처럼 대표

먼저 배려했더니 도움의 손길 저절로 다가와

원래 서울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영농조합법인 ‘지리산처럼’의 정정은(38세) 대표는 언제부턴가 도시 생활에 허무함을 느꼈다. 주변 사람들과 경쟁하고 이겨야만 하는 도시의 삭막함이 싫었다. 정 씨는 남편과 고민한 끝에 돼지 분뇨로 비료를 만드는 재생에너지 사업을 마음먹었다. 2009년 시댁 어른들이 농사를 짓고 있는 전라북도 남원으로 내려왔다. 남편의 사업이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본궤도에 오르면서 정 씨는 농업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그러다 국내에 유통되는 기름 대부분이 수입산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농업기술센터에서 교육을 받는데 우리 전통 기름이 97% 이상 중국, 아프리카, 동남아시아에서 수입된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실제로 주변을 살펴보니 국산 들깨, 참깨로 기름을 짜는 사람들이 없더라고요. 이게 기회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하자고 마음먹었죠. 그렇게 겁 없이 시작했어요.”

감자 농사를 주력으로 하면서 유기농 들깨 농사를 준비했다. 틈틈이 약초나 전통 기름에 대한 공부도 병행했다. 중소기업청에서 청년창업자금 1억원을 융자받아 조그만 공장을 마련하고 착유기를 구입해 직접 기름을 짜보면서 차차 상품성을 갖춰 나갔다. 아무도 하지 않는 국내산 들기름을 짜느라 동분서주하는 정 씨에게 동네 어른들은 “그거 돈 안 된다”며 손을 내저었지만 말리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정 씨는 모든 부분에서 마을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원칙을 갖고 일을 진행했다. 새로 차린 공장에서 짠 기름은 동네에는 절대 팔지 않았고 마을 밖에서만 팔았다. 혹시라도 기존에 있던 인근 방앗간에 피해가 갈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주변에 들깨, 참깨를 경작하는 이웃이 있으면 사들여서 제품을 만들었다. 수매할 때는 좋은 가격을 매겨 지역민의 수입 창출에도 도움을 주었다. 덕분에 인근에서 정 씨와 계약 재배를 하겠다는 농민들이 많이 늘어 수월하게 안전한 원재료를 확보하게 됐다.

남편의 사업체에서도 지역민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일자리를 제공하고 직원 대우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 남편의 연고가 있는 지역이었지만, 그럴수록 더욱 조심스럽게 마을 사람들과 화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교육기관을 통해 알게 된 내용이 많아요. 식품을 가공하는 법, 전자상거래, 마케팅 등 많은 것을 배웠어요. 하지만 귀농에서 더 중요한 부분은 사람을 만나는 과정에서 얻게 되는 것 같아요. 사람들을 만나고 그 네트워크 속에서 배우고 깨달은 내용이 훨씬 많아요. 특히 농사에 관해서는 책에 기록된 내용보다 이곳에서 오랜 시간 직접 경험을 쌓은 분들의 말이 더 정확할 때가 많더라고요.”

정 씨가 차곡차곡 준비한 ‘지리산처럼’ 들기름은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지난 설에 선보인 패키지 상품은 짧은 기간 동안 1000만원 매출을 기록했다. 농업박람회에서 큰 호응을 얻어 백화점 납품까지 성사됐다. 특히 명동 롯데백화점 본점을 찾는 일본인 관광객들의 인기 쇼핑 품목이 되면서 자신감이 생겼다. 이제 다음 목표는 올해 안에 1억원 매출을 달성하는 것이다. 차별화된 상품성 덕분에도 용기가 생기지만 무엇보다 든든한 것은 마을 사람들이 있어서다.

“들깨 농사가 쉽지 않아요. 태풍에 넘어지면 농사를 망치거든요. 그래도 건강한 들깨, 참깨를 공급해 주겠다는 마을 사람들이 많아서 걱정이 없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