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과 나는 경제를 보는 시각이 크게 차이가 없다.”국내 케인스주의 경제학계의 거목 정운찬 국무총리 내정자의 취임 소감 일부다.

케인시안(적극적 시장 개입)으로 널리 알려진 그가 시장원리를 강조하는 이 대통령과 경제철학이 과연 같을 수 있을까? 보수주의 학자들에게 물어봤다.

정부가 ‘중도·실용’을 경제운영 철학으로 갖고 있다고 볼 때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볼 수 있단다. 특히 재정지출을 확대한다는 측면에서는 거의 일치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여기에다 정 내정자가 갖춘 유연성에 높은 점수를 주고 있었다. 이념을 뛰어넘어 다양한 의견을 담을 그릇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다.

다만 워낙 실세 관료들이 많고 대통령 의지도 확고해 4대강 사업이나 녹색뉴딜정책을 흔들어놓기는 어렵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총리 권한의 한계도 이런 회의론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반면 진보학자들은 기대 섞인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변절이 아닌가’라며 당혹해 하면서도 사회통합 관점에서 일할 수 있지 않냐는 의견도 점차 늘고 있다.

이에 대해 정작 본인은 “책상머리에서 고뇌할 만큼 한가하지 않다”라고 답하고 있다. 그렇다면 경제학자들이 보는 그만의 총리 성공의 방정식은 과연 무엇일까?


원로들 생각을 먼저 물었다. 정 내정자의 정치적 스승으로 ‘자다가도 만난다’는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전 민주당 의원)은 “총리라는 자리는 경제정책을 하는 자리가 아니다”라며 경제정책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따라서 케인시안이니 이런 경제철학 얘기는 필요가 없다는 것. 이어 총리가 과제를 풀어내는 자리가 아니라며 김 전 수석은 “일단 대통령 밑에서 일하려면 (경제철학을) 맞출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일 못하는 거지”라며 “내정자가 평소에 상식을 존중하는 사람이다. (상식선에서 모든 것을 생각하면) 대과 없이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의 조언도 잊지 않았다. 김 전 수석은 “총리가 개성이 뚜렷하면 견딜 수 없어지는 것”이라고 말한 뒤 “무엇보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역할을 충실히 하면 되는 것”이라고 당부했다.

다만 “대통령도 (총리와) 조화할 수 있도록 이해하며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두 분 모두 해피앤딩할 수 있다”고 첨언했다.


조윤제 서강대 국제대학원장은 정부가 중도·실용을 취하고 있어 정 총리 내정자와 맞지 않는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실제로 경제위기 이후 정부가 재정통화 측면에서 과감한 케인시안적 정책을 펴고 있다는 것.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대통령 경제보좌관을 지낸 조 원장은 특히 정 내정자가 정권의 얼굴마담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총리라는 자리는 어려운 자리다. 대통령이 힘을 실어주는 만큼 (힘을) 가지는 것”이라며 “(얼굴마담이 되는 것은) 이 대통령이 하기 나름이다. 국정운영 철학으로 봐야 한다”고 언급했다.

윤진식 정책실장, 강만수 경제특보 등 이 대통령의 ‘경제 오른팔’과의 호흡도 크게 문제가 없을 것으로 관측했다.

정부 내에서 서로 다른 의견이 나와야 정상적인 정부라는 조 원장은 “(정 내정자가) 다양한 의견을 담아낼 그릇을 갖고 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강만수 특보는 소신이 뚜렷하고 고집이 있는 관료로, 윤진실 정책실장은 조용하면서도 성실하고 책임감이 넘친다는 말로 청와대 핵심 라인들을 평가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에 대해서는 세련되면서 경륜이 높다고 했다. 때문에 4명이 모이면 보완적인 관계가 유지될 것이라며 “정부에 여러 관점을 가진 분들이 함께하는 것이 좋다”라고 평가했다.

그는 감세정책의 경우 정 내정자가 경제 상황을 봐가며 추진하게 될 것으로 판단했다.


서울대 경제학과 재학 시절 정영사 기숙사에서 2년(1967~68년) 동안 한 방을 쓰며 한솥밥을 먹은 좌승희 경기개발연구원장은 “무엇보다도 유연하다는 큰 장점이 있는 분”이라며 먼저 정 내정자을 치켜세웠다.

대표적인 보수학자인 그는 그런 의미에서 중도실용을 강조하는 2기 이명박 정부에 적합한 분이라고 했다. 물론 기존 청와대 경제라인들과도 충분히 하모니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좌 원장은 특히 경제분야 정책에 기대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좌 원장은 “미라클적인 경제해답을 찾아낼 거라는 기대보다는 사회통합 측면에서 일하도록 배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경제정책에 깊게 관여할 수도 없겠지만 (관여하는 것도) 이분의 장점을 활용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서울대 총장 시절 정 내정자의 행보를 예로 들었다. 지역균형선발제도의 도입으로 대변되는 그의 서울대 개혁이 바로 그것.

좌 원장은 “전체를 조망하고 국민을 통합하는 정치적 역할을 더 해줘야 한다”고 제언했다. 중앙정부 등 관에서 너무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강조한 뒤 “규제완화도 특정 누구를 봐준다가 아니라 모든 경제 주체들에게 자유를 준다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그는 지적했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상무)은 이 대통령 경제 철학과 충돌 가능성에 대해 “전적으로 본인이 어떠한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달려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경제를 분석하는 학자인만큼 “충돌하지 않게 잘 이끌어갈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특히 앞으로 경제 상황 대처 방향에 여야 대립이 우려되는 만큼 슬기로운 대처를 주문했다.

권 실장은 “출구전략, 금리인상, 재정확대 등 여야가 대립할 사안들이 산적해 있다”며 “정치적인 면도 책임져야 하는 것이 총리 자리다. 중심을 잡고 슬기롭게 헤쳐나갈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금리인상 등 출구전략과 관련 “지금 경제흐름으로 봐서는 올해는 무리다. 내년 상반기 정도에 나올 얘기”라면서 “항시 주시하며 경제 부담을 감안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MB노믹스 변화 가능성에 대해서는 “알 수 없는 일”이라며 “중도실용 노선의 일환으로 정채변화를 꾀하는 것인지 다른 이유가 있는지 속내가 궁금할 뿐”이라고 답변했다.

덧붙여 설비투자가 위축되는 점을 우려한 그는 경기부양 기조를 유지하고 일자리 만들기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필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전 고려대 총장)는 먼저 “청문회도 열리기 전에 세종시 문제가 불거져 우려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문제가 또 다른 지역갈등으로 심화될 경우 정 내정자의 가장 큰 미션인 ‘사회통합’을 오히려 저해할 수 있다는 소리다.

특히 그는 4대강 사업, 세종시 등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핵심정책의 경우 이에 반대 목소리를 내던 정 내정자가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보고 있다.

이 대통령의 의지가 워낙 확고하기 때문. 이와 관련 이 교수는 “단기적인 경제논리로 풀 게 아니라 국가 100년대계로 국토균형발전 관점에서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면서 “만약 정 내정자가 현 정부 뜻대로 수정해야 한다고 따른다면 굉장한 정치적 부담을 안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교수는 또 대통령 중심제에서 총리의 권한이 약해 할 수 있는 일에 한계가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청와대 관료들을 통솔하고 지휘하는 데 역부족일 것으로 예상했다.

대통령의 정책기조와 자신의 기조를 서로 밝히고 조화하는 것이 가장 급선무라고 밝힌 그는 “실업자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제자라인들의 생각도 궁금했다. 이들의 생각은 대체로 기대반 우려반이었다.


먼저 정 총리 내정자의 애제자 중 한 명으로 알려진 김상조 한성대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는 “(총리 내정자가) 알아서 잘 하실 것”이라는 말로 기대 속 우려감을 나타냈다.

특히 경제정책에 대해서는 “(경제분야 일을 하려 한다면) 사표 쓰고 나와야 한다”며 정 내정자가 해야 할 일이 아니라고 선을 그어 말했다.

나아가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한다며 “강만수, 윤진식 등 핵심 경제 실세들이 버티고 있는데 되겠는가”라면서 “정운찬의 성공은 경제정책에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분명한 소신을 나타냈다.

그가 생각한 정운찬의 미션은 바로 ‘사회통합’. 김 교수는 이른바 친서민 노선을 어떻게 진정성을 담아 이뤄낼지를 정 내정자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옳은 선택이었냐는 질문에는 노코멘트라며 말을 아꼈다.

자타가 공인하는 정 내정자의 수제자로 알려진 전성인 홍익대 교수(한국금융연구센터 소장)는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이명박 정부에서 케인시안이 살아가는 방법을 묻는 질문에 “이 정부가 작은 정부가 맞느냐”라며 약간 냉소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그러면서 앞으로 펼쳐야 할 경제정책과 관련해 “내가 말하는 게 적절하지 않다”라며 언급 자체를 회피, 현안에 대해서는 극도로 말을 아끼는 모습을 나타냈다.

김성배 기자 sbkim@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