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9일 후베이성 우한의 혼인 등기소에서 커플들이 혼인신고를 하기위해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정확히 9시네요.” 지난 9일 중국의 한 혼인등기소에선 이 시간에 맞춰 둥(董)이라는 성을 가진 여성과 남편 리(李)모 씨가 결혼증명서를 받았다.

7월에 인터넷으로 편하게 등기 예약을 할 수 있었지만 이 커플은 굳이 8월8일 직접 등기소를 찾아 예약을 했다. 그리고 9월9일 오전 일찍 도착했다가 9시에 맞춰 결혼증을 받아갔다. 이들은 이날을 기념하기 위해 현장에서 사진까지 찍었다.

지난 9일, 중국 전국에서는 결혼식을 올리거나 혼인신고를 하는 커플들로 넘쳐났다. 결혼식장 예약이 꽉 찼고 혼인신고를 담당하는 구청 건물은 100m가 넘는 긴 행렬로 북적거렸다.

이날은 결혼을 생각하는 커플들에게는 매우 각별한 날이다. 9는 숫자 중에서 ‘최고’와 ‘끝’을 상징한다.

뿐만 아니라 중국어로 ‘9(九)’는 ‘오래되다(久)’란 뜻의 단어와 발음과 성조가 같다. 그렇다 보니 9가 겹치는 2009년 9월9일은 커플들에겐 백년해로를 의미한다.

부부가 오래도록 행복하게 같이 산다니 이만한 길일도 없는 것이다. 물론 기분이고 속설일 뿐이지만.

이날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에서는 무려 6000쌍의 부부가 결혼식을 올렸다. 한날 결혼식을 치른 횟수로 역대 최고 기록이다.

혼인신고 날짜도 이날로 고른 신혼부부들이 많았다. 새벽 2시부터 장사진을 치기 시작한 등기소에는 해질 때까지도 신고를 하려는 줄이 줄어들지 않았다고 한다.

별의별 커플들도 많았다. 76세 할아버지와 55세 할머니가 재혼 신고를 한 경우도 있었고 신청하러 가는 길에 택시에 관련 서류를 내려놓고 내린 정신없는 커플도 있었다.

이날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택시 기사는 서류를 돌려주기 위해 경찰서를 찾아 결국 이들을 수소문해 찾는 데 성공했다.

베이징에서는 이날 결혼한 커플이 10배나 늘었다. 숫자 9를 늘리기 위해 결혼시간뿐 아니라 테이블에 앉는 하객 수도 9명으로 조정하는 경우도 있었다.

선전(심천)에서도 결혼식이 5000건을 넘었고 광저우(廣州)·상하이에서는 혼인신고한 커플이 5000쌍을 넘었다고 한다.

홍콩도 상황은 비슷했던 모양이다. 원후이바오(文匯報)는 “호텔·여행사·결혼식장에 손님들로 가득하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요즘 중국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밸런타인데이나 기념일을 결혼날짜로 정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결혼을 준비하는 이들에겐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는 7월7일, 중국이 가장 좋아하는 숫자가 겹친 8월8일이 가장 대표적인 길일로 꼽힌다.

이처럼 같은날 무더기로 결혼하는 커플들이 늘자 업무가 폭주해 바빠진 당국도 골치를 앓고 있다. 지난 9일 결혼식이 넘쳐나자 “결혼날짜와 행복은 전혀 상관관계가 없다”고 알리고 다닐 정도니 말이다.

실제 일손이 모자라 업무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제때 예약을 받지 못하거나 등기를 해주지 못하는 경우도 속출해 신혼부부들로부터 항의가 이어졌다. 하지만 당국도 갑자기 신청이 몰려 어쩔 수 없다고 항변이다.

참고로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숫자는 8(八)이다. ‘돈을 많이 번다’는 단어 ‘파차이(發財)’의 첫 글자와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지난 베이징올림픽 개막식도 2008년 8월8일 오후 8시에 시작됐다.

아시아경제신문 김동환 베이징특파원 (donkim@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