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삼성동에 위치한 대웅제약 본사.


올 들어 재계에서는 유난히 ‘형제’가 경영 키워드로 부각되는 듯하다. SK그룹의 최태원 회장 곁에 동생 최재원 부회장이 가세해 형제경영의 새출발을 시사했고, 두산가 역시 형제경영의 전통에 따라 ‘박용현호’가 출범했다.

그리고 몇 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에서는 박삼구-박찬구 간 ‘형제의 난’이 재계를 들썩이게 했다.

이 같은 시각을 제약업계로 돌려본다면 ‘형제뉴스’의 주인공으로는 단연 대웅제약이 꼽힌다.

그도 그럴 것이 윤영환 대웅제약 창업주의 셋째 아들이자 지난 1997년부터 대웅제약의 대표이사로 근무하며 그룹 ‘1순위 후계자’로 지목받아 온 윤재승 부회장이 지난 5월 갑작스럽게 대표이사 자리에서 물러났고 그 자리에 바로 윗형인 윤재훈 부회장이 앉게 되면서 ‘대웅판 형제의 난’이라는 시각이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당사자인 윤재훈 부회장과 윤재승 부회장 간 직접적인 ‘갈등의 고리’는 없지만 뒤늦게 ‘삼남 대신 차남’을 택한 윤영환 회장의 심중을 놓고는 여러 가지 해석들이 나오고 있다.

‘후계자 1순위’에서 대표 내놓고 지분 팔아

윤영환 창업 회장(현 (주)대웅 대표이사 회장)은 여느 재벌그룹처럼 ‘장자승계’ 원칙을 따르지 않고 지난 1997년 삼남인 윤재승 부회장(당시 사장)을 대웅제약의 대표이사 자리에 앉혔다. ‘3남1녀’의 자식들이 모두 회사 일에 참여하고 있지만 그 중에서 삼남을 ‘황태자’로 삼은 셈이다.

이에 따라 윤재승 부회장은 차기 경영권 승계 ‘1순위’로 평가받으며 12년간 대웅제약을 포함한 그룹 전반을 지휘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그룹의 투명한 경영과 기업가치 극대화를 위해 지난 2002년에는 지주회사인 (주)대웅과 대웅제약을 분할했으며 대웅제약을 의약품사업, 건강기능식품사업, 건강프로그램사업, 의료 IT서비스사업 등 건강과 관련된 27개 관계사를 거느리는 토털 헬스케어 그룹으로 발전시켰다.

국내 제약사 CEO로서는 처음으로 세계경제포럼으로부터 ‘아시아 차세대 지도자’로 선정됐고, 작년에도 ‘언스트앤영 최우수 기업가상’ 시상식에서 ‘라이징 스타’ 부문을 수상할 만큼 경영능력 면에서도 비교적 후한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윤 부회장이 지난 5월 갑작스레 대웅제약의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자 ‘황태자의 낙마’로 보는 등 ‘대웅판 형제의 난’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지난 5월29일 열린 이사회에서 그를 대신해 그동안 대웅상사 등 비주력사업부문만을 담당해온 차남 윤재훈 부회장이 대웅제약의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됐고, 그는 지주회사인 (주)대웅으로 자리를 옮겼다(현재 그는 부친인 윤영환 회장, 정난영 사장과 함께 대웅의 (각자) 대표이사로 있다).

또 7월 말에는 대웅제약의 지분 전량을 매각하기도 해 ‘낙마설을 뒷받침하는 행보’라는 추측을 낳고 있다.

지난 7월29일부터 31일까지 3일에 걸쳐 자신의 대웅제약 주식 보유분 6만5640주(대웅제약 전체 지분 중 0.63%) 전량을 장내 매도를 통해 처분한 것인데 처분 당시의 단가를 감안하면 총 38억원 정도에 달하는 금액이다. 이로써 현재 윤재승 부회장의 대웅제약의 지분율은 0%다.

처분한 주식 수가 많지는 않지만 표면적으로 10년 넘게 대웅제약 대표이사직을 역임했던 그가 갑작스레 지분을 전량 매각한 것에 분명히 의문이 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최근에는 그가 보유한 (주)대웅의 지분 일부도 형수(윤재훈 부회장의 부인)인 정경진 씨에게 넘기면서 지분율을 12.24%에서 11.89%(7월22일 기준)로 낮추기도 했다.

매끄럽지 못한 경영과 실적부진이 발목?

그렇다면 도대체 윤재승 부회장은 왜 대웅그룹의 핵심기업인 대웅제약에서 물러난 것일까. 업계에서는 여러 가지 시선이 존재하나 크게 ‘경영책임론’과 ‘형제 공동경영론’으로 집약되고 있다.

우선 매끄럽지 못한 경영과 실적 부진에 따른 ‘낙마’로 보는 시각이 많다.

실제 지난 몇 년간 대웅제약은 의약단체와 마찰을 빚거나 무리한 마케팅으로 잡음을 일으켜온 게 사실이다.

지난해 8월 처방 권한이 없는 약사를 대상으로 ‘비만약사 양성 프로그램’을 진행하다 의사협회와 심각한 갈등을 초래했고(이 일로 대웅제약은 회원 의사들이 대웅제약 제품에 대한 처방을 회피하며 매출액이 전년 대비 마이너스 성장세로 급격히 꺾이기도 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비영리법인으로부터 기증받은 시신을 ‘돈벌이 수단’으로 활용했다는 의혹에 휘말리기도 했다.

여기에 올 3월에는 백세주로 잘 알려진 국순당과의 연합 판촉전을 벌이다 여론의 비난도 받아야 했다.

실적 면에서의 부진도 이어졌다. 다른 제약사에 비해 수입약품의 비중이 높아 환율상승의 피해를 고스란히 입은 때문인지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40%나 감소했다.

일각에서는 또 지난해 대웅제약의 구조조정 대상에 윤영환 회장 측 인사가 다수 포함돼 부자간의 갈등이 빚어진 것도 ‘윤 부회장의 퇴진’에 작용한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는 상황이다.

이처럼 ‘경영책임론’과 달리 다른 형제들에게도 후계자로서의 ‘기회’를 줘야 한다는 차원에서 윤재승 부회장이 뒤로 물러난 것이라는 해석도 ‘낙마설 배경’의 또 다른 축을 이루고 있다.

창업주 회장이 그동안 대웅상사라는 비주력 업체에 머물던 차남 윤재훈 부회장에게도 같은 ‘2세’로서 경영의 ‘기회’를 주기 위함이라는 분석이다.

현재 윤영환 회장의 자녀 모두는 경영에 참여하면서 어느 정도 대등한 지분을 갖고 있다.

장남 윤재용 씨는 대웅식품 사장, 막내 윤영 씨도 대웅제약 전무로 재직 중인데 지분 구조를 살펴보면 지주회사인 (주)대웅 지분이 윤재승 부회장 11.89%, 윤영환 회장 9.09%, 장남 윤재용 사장 10.43%, 윤재훈 부회장 9.37%, 윤영 전무 5.24% 등으로 어느 한 명에 편중되지 않고 지분이 고루 배분돼 있다.

따라서 누가 누구와 손을 잡느냐에 따라 향후 경영권 승계구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윤재승 부회장의 대웅제약 대표직 퇴임은 ‘낙마설’보다는 ‘차기 후계자들의 시험무대’를 만들어 놓은 것일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형제간 공동기회 차원에서 ‘일시 후퇴’ 분석도

재계 한 관계자는 “그동안 삼남인 윤재승 부회장에게만 기울어져 있던 후계구도의 균형을 맞추고 차남인 윤재훈 부회장에게도 경영능력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한 것이 아니겠냐”고 분석했다.

대웅제약 관계자도 “그동안 혼자(윤재승 부회장) 경영하다가 형제들간 같이 (경영) 하는 구도로 알고 있다”면서 “대웅그룹의 계열사만 10개가 넘는다.

혼자서 모든 회사를 책임질 수는 없지 않느냐”고 설명했다. 형제간의 보직이동과 지분변동이 이뤄진 최근의 대웅제약은 경영권 승계라는 관점에서 ‘전환기’에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김진욱 기자 action@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