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가쟁명(百家爭鳴)’의 시대다. 논쟁의 도화선은 한국 경제에 스며든 ‘봄기운’이다. 혹한을 뚫고 날아온 제비 한 마리를 바라보는 시선은 서로 엇갈린다.

정책 혼선의 또 다른 출발점이다. 지난해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불거진 글로벌 금융위기는 한국 경제호를 집어삼킬 기세였다.

그로부터 10여개월, 이번에는 경기회복 논쟁이 뜨겁다. 논쟁은 꼬리를 문다. 경기회복의 형태, 그리고 ‘출구전략’의 시기로 확전되고 있다.

현정택 인하대 국제통상학부 교수, 이필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의 진단과 처방에 귀를 기울여보았다.

출구전략은 너무 앞서가는 그런 논의가 아닌가 보고 있습니다. 상반기에 약간 호전된 것을 보고 판단하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회복세가 과연 유지되고 있는지는 좀 더 판단해볼 여지가 있습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

작년 리먼브러더스발 금융위기가 글로벌시장을 뒤흔들자 20세기 초 ‘대공황’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지 않았습니까.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이하 윤창현) ●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터지면서 작년 10월 한 달에만 국내에서 250억달러가 빠져나갔습니다.

1년 동안 빠져나간 돈이 500억달러인데 한 달 동안 250억달러가 빠져나갈 정도로 어려웠습니다.

각국의 정책 공조로 봄기운이 뚜렷해지자 V자형 회복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습니다. 상전벽해식의 변화입니다.
이필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이하 이필상) ● 불안감에서 벗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 경제가) 회복 단계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입니다. 작년 4분기에 성장률이 -5.1%였기 때문에 이제 수렁에서 절반만 나온 격이거든요.

상반기 국내 성장률 2.3% 달성의 3가지 요인은 원화가격 하락으로 인한 수출호조, 희망근로로 인한 소비촉진, 내수를 살리기 위해 자동차 노후 교체에 대한 세금을 감면해 줬기 때문입니다.

경제사령탑인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의 지도력도 새로운 평가를 받고 있는 듯합니다.
현정택 인하대 국제통상학부 교수(이하 현정택) ● 정부가 위기를 잘 넘겼다는 건 좀 평가해 줘야 할 것 같습니다.

작년에 9월 위기설, 10월 위기설, 이럴 때일수록 좀 더 길게 내다보는 정책을 취해줬으면 좋겠습니다. ‘비욘드 크라이시스’를 염두에 둔 그런 움직임 말입니다. 비상 상황을 넘어가는 대책을 준비해야 할 때라고 봅니다.

지난 1987년 블랙먼데이 때도 다들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지만, 상황은 조기에 수습되지 않았습니까.
현정택 ● 작년 연말의 심리적인 공황 상태에서는 일단 벗어난 것 같습니다. 국내 주가도 급락했다 1500선을 회복했습니다.

하지만 경제지표도 아직까지 종잡기가 어려운 상태입니다. 경제가 하락하는 건 멈췄고 바닥이긴 한데 앞으로 치고 올라올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봅니다.

투자의 99%와 고용의 88%는 중소기업에서 나옵니다. 대기업이 살아나면 성장률은 높아지겠지만 서민의 고용과 투자와는 크게 상관이 없습니다.
이필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최악의 국면에서는 벗어났지만, 하반기 상황을 낙관하기는 아직은 성급하다는 의미인가요.
현정택 ● 기업 심리지수, 소비자 신뢰지수는 분명 많이 회복됐습니다. OECD회원국 중에서도 우리가 빠른 편입니다.

중요한 건 고용 문제인데, 경기가 나쁠 때 고용이 회복되는 건 1년 정도 시차를 두고 나타납니다. 그런 부분이 뒷받침될 때까지는 상당히 신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경기회복을 가로막는 불안 요인이 있습니까.
윤창현 ● 경상수지가 지난 6월까지 217억달러 흑자가 났습니다. 작년 한 해 64억달러 적자를 기록했었죠.

수출입이 모두 줄었는데, 수입이 더 줄어서 흑자가 난 것입니다. 수입이 650억달러 정도가 줄었는데, 300억달러가 에너지 수입 감소분입니다. 하반기 에너지가가 오르면 다시 수입액수가 늘어난다는 뜻입니다.

정부가 상반기 돈을 대거 풀어 경기를 지탱했습니다만, 하반기에 쓸 실탄이 충분하지 않은데요.
윤창현 ● 경기 종합지수를 보면 앞으로 좋아질 수 있는 가능성은 있는데, 아직 후행지수가 못 쫓아가고 있는 상황 같습니다. 고용이 좋아져야 조금 나아질 텐데, 이것이 관건이 아닌가 합니다.

시중에 풀린 돈을 거둬들일 ‘출구전략’ 시행시기를 둘러싼 갑론을박도 뜨겁지 않습니까.
이필상 ● 출구전략이 시행되면 1차적으로 고통받는 것은 서민과 중소기업입니다. 가계부채가 700조원에 이르고 1가구당 부채가 4000만원에 이르는데, 금리를 올려 돈줄을 조인다면 서민가계는 더 불안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일자리 불안에 더해 이자 갚기도 어렵고 빚을 내기도 어려워 생활고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죠. 지금도 영업이익을 내도 이자도 못 갚는 중소기업이 부지기수입니다.

일본이 장기 불황에 빠진 것도 출구전략 집행시기를 잘못 선택한 결과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윤창현 ● 출구전략은 너무 앞서가는 그런 논의가 아닌가 보고 있습니다. 상반기에 약간 호전된 것을 보고 판단하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회복세가 과연 유지되고 있는지는 좀 더 판단해볼 여지가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상반기에 재정의 65%를 썼습니다. 이제 하반기에 남은 것은 35% 정도인데요, 재정이 담당할 수 있는 역할이 줄어들게 되는 겁니다. 통화까지 환수해 버리면 하반기에 큰 충격을 줄 수 있겠죠.

하지만 노벨상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은 인플레이션은 어디까지나 화폐적 현상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윤창현 ● 돈이 안 돌 때는 아무리 풀어도 할 수가 없다는 거죠. 많이 풀었지만 돈이 안 돌 수 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합니다.

2분기 중에 ‘출구전략’을 집행했어야 한다는 과감한 주장을 펴는 전문가들도 있습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이하 전성인) ● 제가 두 달 전까지는 출구전략을 섣불리 시행하면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출구전략을 시행하기 전에 지반 다지기 작업을 통해서 서민가계에 미칠 충격파를 흡수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출구전략을 겨냥한 ‘지반 다지기’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금리인상의 충격파를 흡수할 선제적 조치를 뜻하는 건가요.
전성인 ● 정치권이 4월이나 6월 임시국회에서 통합도산법과 개인회생 절차를 정비했어야 합니다.

금리가 상승할 경우 이는 서민 가계에 직격탄을 날릴 것이고 그중 일부는 상환불능에 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치권이 허송세월을 보냈고, 지금은 자산가격이 더 많이 올라 상황이 더 어려워졌습니다. 출구전략을 시행하기가 더 어려워졌습니다.

큰 위험이 없다면 U자형 정도의 회복은 기대해 볼 수 있을 듯합니다. 3·4분기는 전 분기 대비 0.2~0.3% 정도를 예상하고 있습니다.
현정택 인하대 국제통상학부 교수

시중에 돈은 넘치는데, 정작 흘러가야 할 곳으로 가지 못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습니다
이필상 ● 시중에 풀린 유동성이 생산자금이 아닌 부동산, 증시 등 투기자금으로 몰리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투기 열풍을 잡지 못하면 국내 경제는 회복되다가 다시 주저앉는 더블딥의 수렁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의 규제완화 정책이 대기업의 특혜에 맞춰져 있다는 비판도 제기됩니다.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크지 않다는 게 골자인데요.
이필상 ● 정부 정책은 초점이 잘못 맞춰져 있습니다. 문제는 선택과 집중, 지속성인데 지금껏 정부 정책은 출자총액제한제폐지, 금산분리법, 수도권 규제완화 등 대기업, 고소득층 위주로 선택과 집중이 이뤄져 왔습니다.

대기업이 살아나면 성장률은 높아지겠지만 서민의 고용과 투자와는 크게 상관이 없습니다.

서민들을 더 어루만질 수 있는 방향으로 정책의 우선순위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됩니다.
윤창현 ● MB노믹스는 수정돼야 한다고 봅니다. 현 정부의 당면 과제는 당연히 위기극복입니다. 외국의 사례와 경험을 참고해서 당장은 성장에 집착하기보다 경제적 약자들의 고통을 덜어줄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MB노믹스의 밑그림 가운데 일부는 장기과제로 전환하고, 일부는 단기과제로 추진해야 합니다.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이필상 ● 투자의 99%와 고용의 88%는 중소기업에서 나옵니다. 대기업이 살아나면 성장률은 높아지겠지만 서민의 고용과 투자와는 크게 상관이 없습니다.

이에 미래 지식산업과 내수산업, 서비스 등 서민과 중소기업이 살 수 있는 신성장동력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지난 2분기 국내 GDP 성장률은 거의 ‘어닝서프라이즈’에 해당하는 성적이었습니다. 3분기에도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까요.
현정택 ● 돈이 많이 풀렸는데, 거둬들이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국제금융시장이 다시 한번 요동을 친다면 우리나라에 상당한 영향을 주겠죠.

유가도 또 다른 불안요인입니다. 이런 요인들을 잘 눈여겨봐야 합니다. 만약 이 부분에서 큰 위험이 없다면 U자형 정도의 회복은 기대해 볼 수 있을 듯합니다. 3·4분기는 전 분기 대비 0.2~0.3% 정도를 예상하고 있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내년 한국 경제에 대해 장밋빛 전망을 하지 않았습니까.
윤창현 ● 내년도 OECD가 맞는다면 한국 경제는 3.5% 성장을 할 겁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들 중 가장 높은 수준입니다.

맞았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될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남은 건 수출, 소비, 그리고 투자인데 수출은 우리 혼자 잘한다고 되는 건 아닙니다. 소비와 투자가 큰 역할을 하는 구도입니다.

정치권이 4월이나 6월 임시국회에서 통합도산법과 개인회생 절차를 정비했어야 합니다. 금리가 상승할 경우 이는 서민 가계에 직격탄을 날릴 것이고 그중 일부는 상환불능에 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

글로벌 위기로 미국의 위상에도 변화가 따르지 않을까요. 미국의 소비가 줄면서 중국이 그 역할을 할 수 있겠습니까.
현정택 ● 미국은 지난 20년간 능력 이상으로 소비를 해왔습니다.

저축률이 상승하는 것은 이번 금융위기 국면에서 이러한 점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중국이 국민소득 증가로 소비여력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물건만 만들어 파는 게 아니라 소비를 늘려나가는 거죠.

좀 더 멀리 내다보는 정책을 고민할 때가 됐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위기 이후를 대비한 포석 말입니다.
현정택 ● 경기 사이클이 회복되더라도 미국이 옛날처럼 소비를 하기는 어려울 거예요. 미국인들이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리고 있습니다.

미국 시장의 수요 감소를 보완할 시장이 많이 일어나는 게 중요합니다. 수출 시장이 종전과 같이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 같고, 그런 점에서 보면 내수가 중요한 겁니다. 3분기에는 좀더 지켜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정부가 민간 부문의 경쟁력 강화를 유도할 수 있는 지반 다지기에도 눈을 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윤창현 ● 필요 없는 규제는 완화하고 강화할 것은 더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경험적으로 볼때 2~3년 정도 어려운 시기를 넘기면 호전되는데 금융기관이 그때까지 구조조정을 하면서 위기를 넘기면 좋은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비판적인 목소리도 있지만 우리 상황에서 투자은행 모델도 배제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박영환 기자 blade@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