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만난 이동통신회사 관계자는 “통신 보조금이 완전히 사라질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냐”고 푸념을 했다. 그는 “한쪽에서 규모의 경제로 밀어붙이기식의 보조금을 살포하면 시장을 지키기 위해 이쪽에서도 보조금 지급은 불가피한 상황”이라며 “정부가 매번 후발업체의 편을 들어 보조금을 규제해 왔으나 지금부터는 시장에 맡겨 놨으면 한다”고 말했다.

시장경제에 맡겨 놓자는 게 그의 주장이다. 보조금 문제가 우리 통신시장에서 하루 이틀 회자되는 얘기도 아니다. 통신시장이 과열될 때 마다 정부가 나서 제재를 가해 왔지만 영업정지 이후엔 다시 불법보조금이 기승을 부려 왔다. 통신회사의 자정노력에도 불구하고 판매활성화를 통해 이익을 극대화시키려는 대리점들의 속내가 불법보조금을 확산시키는 주요인이다.

간선도로를 다니다 보면 ‘휴대폰 개통시 180만원’이라는 문구의 현수막을 종종 볼 수 있다. “과연 휴대폰을 팔면 얼마나 남기에 개통하면 현금을 지급할까”라는 의문을 갖게 한다. 물론 이미 여러 사례를 통해 현금지급 이벤트 대부분이 가짜임이 밝혀졌지만 아직도 이러한 문구에 귀가 솔깃해서 연락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헤아릴 수 없다. 보조금 때문에 선뜻 가입했다가 ‘통신불량자’로 전락하는 사람도 많다. 이러한 피해자 양산을 막기 위해서라도 보조금은 반드시 척결되어야 할 문제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보조금을 줄이면 통신회사는 마케팅 비용을 적게 사용하게 되고 단말기 제조사는 단말기 공급원가를 낮출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적자폭이 큰 통신업체들은 마케팅 비용만 줄여도 손실을 어느 정도까지는 만회할 수 있다. 문제는 이익률이 떨어질 수 있는 단말기 제조사들의 반발이다. 소비자에게는 많은 이득이 돌아간다.

통신사와 함께 제조사가 부담했던 보조금을 위한 마케팅 비용을 떨어내면 제품공급가격도 떨어져 사실상 소비자가 높은 품질의 스마트폰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예로 삼성전자가 판매하는 갤럭시노트2에는 일정 부분의 마케팅 보조금이 포함돼 있다. 보조금의 거품을 걷어내면 저렴한 가격에 고품질의 성능을 가진 갤럭시노트2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보조금 규제를 없애고, 사업자간에 전면전이 벌어져서 승자와 패자가 확실하게 정해진 후, 시장의 게임 룰이 정착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 한 보조금 전쟁이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는 “정부가 보조금 규제를 없애야 보조금 전쟁이 없어질 계기가 만들어질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통신사 CEO를 지냈고 현재는 지식경제부 R&D전략기획단 정보통신산업 MD(Managing Director)인 조신 씨의 주장이다. 그는 보조금 규제를 없애는 게 최우선 과제라는 주장을 내놨다. 보조금 규제가 보조금을 없애는데 기여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요금 규제도 함께 푸는 게 맞다”고 설명한다. 요금인상을 못하게는 했지만, 동시에 요금 경쟁을 억제한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사업자들이 보조금과 요금을 놓고 적절한 경쟁모드를 찾아나갈 수 있도록 유도하면서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동안 지나간 정부들은 불완전한 시장을 보완하기 위해 개입했지만 당초의 성과를 얻지는 못했다. 규제가 시장에서의 경제 논리를 이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씨는 “불완전하나마 시장이 기능하도록 맡겨보는 것도 좋은 대안”이라고 설명한다.

회사에서 후배교육을 맡았을 때 답답한 경우는 많다. 후배의 문제점에 개입해 지적하고 고치려 하면 스스로 깨닫고 고칠 기회를 상실할 수도 있다. 시장경제를 수호하겠다고 나선 박근혜 정부가 스스로의 발목을 잡는 통신정책은 이전의 정부와 다를 바가 없다. 큰 울타리를 쳐놓고 참을성을 가지고 통신회사 스스로 바람직한 해답을 찾을 수 있도록 기다려봐 주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