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둘, 좌현 앞으로, 우현 뒤로!”
가파른 급류를 타고 흘러나오는 교관의 목소리가 카랑카랑하다. 정신을 집중하지 않으면 자칫 고무보트가 뒤집힐지도 모른다.

팀원들의 손놀림이 자연스럽게 바빠졌다. 교관의 구령에 맞춰 패들(노)을 힘껏 젓는다. 바위에 걸릴 듯하면서 다시 거친 물살을 타는가 싶더니 어느새 보트는 지리산의 절경 속으로 빠져들었다.

무미건조하고 평면적인 일상에 끌려갈때, 끊어진 용수철마냥 삶에 대한 긴장감을 잃었을때, 답답하고 짜증날 때 거친 급류에 몸을 맡겨보는 것은 어떨까.

보트에 몸을 싣고 노 하나에 의지해 물살을 헤쳐나가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던 모든 시름이 세찬 물살에 말끔히 씻겨 내려간다.

장마철, 앉아만 있어도 땀이 흐르는 날씨를 뒤로하고 찾은 경남 산청 경호강은 래프팅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래프팅은 고무보트로 계곡을 질주하는 현대판 뗏목 타기로 빠른 물살과 급류, 아름다운 자연이 어우러져 무더위에 지친 몸과 쌓인 스트레스를 시원하게 날려버리기에 그만이다.


래프팅
춤추는 배와 나, 자연이 하나가 된다
경호강 진입로에 들어서니 맑은 물과 푸른 나무가 가득한 계곡 사이사이에서 ‘으악~’비명 소리가 들려온다.

뒤이어 가파른 골짜기를 타고 수십 대의 보트가 일렬로 줄지어 시원함을 만끽하며 내려온다.

교관에게 패들을 젓는 법과 안전교육을 마치고 8명이 한 팀을 이뤄 보트에 올랐다. 용소를 출발해 경호5교에 이르는 8km 물길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팀원들은 일단 한 보트에 같이 탄 이상 모두가 공동운명체다. 언제 만날지 모르는 장애물들과 예측할 수 없는 급류의 속도에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긴장감이 가득한 팀원들의 손놀림이 예민해진다. “하나, 둘” 교관의 구령에 맞춰 좌로, 우로 패들을 저었다.

출발한 지 1km쯤 지나자 교관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이제 곧 첫 번째 급류인 ‘자신지역’입니다. 급류 때는 머리 위로 손을 올리고 있다가 신호를 하면 힘차게 노를 저어 주세요.” 교관의 외침이 비장하게 들려온다.

앞에는 거센 물살이 하얀 포말을 일으키고 있다. ‘혹시 배가 뒤집히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잠깐. 급류에 고무보트가 빨려 들어가는가 싶더니 이내 솟구쳐 거친 물살을 헤치며 시원스레 질주한다.

‘우∼와’ 무사히 거센 물살을 헤친 기분에 팀원들끼리 노를 부딪치며 지르는 함성이 계곡 사이에 메아리친다.

그렇게 장애물을 헤치며 급류를 타고 나면 온몸은 물에 흠뻑 젓는다. 이때쯤이면 처음의 긴장감은 사라지고 한번쯤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생긴다.

파란 하늘, 하얀 구름, 초록 숲, 청록빛의 담(潭)과 소(沼)…. 강줄기를 따라 펼쳐진 자연의 모습 그대로의 아름다운 풍광에 넋이 나간다.

김철식 레포츠911 대표는 “경호강은 인제 내린천이나 영월 동강과 달리 급류와 평온한 구간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있다”며 “지리산 깊은 골의 맑은 물이 몸을 시원하게 하고 많은 역사 유적지와 첩첩의 연봉은 눈을 시원하게 한다”고 자랑한다.

어천 등 몇 번의 짜릿한 급류 구간을 벗어나자 잔잔한 호수 같은 구간이 나타났다.
“어차피 옷이 다 젖었는데 수영 한번 하시죠”라는 교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보트가 뒤집어졌다.

지리산의 시원함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구명조끼를 입고 있어 가볍게 둥둥 경호강을 떠내려간다.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서로 물싸움도 하고 보트를 이용한 미끄럼틀 타기 등 재미있고 색다른 물놀이가 이어진다.

가족과 함께 래프팅 체험에 나선 허재문(11·부산) 군은 “급류를 지날 때 가장 무서웠지만 그래도 짜릿한 기분이 들어 너무 좋았다”며 즐거워했다.

아빠인 허성철 씨도 한마디 거든다. “작은 보트 하나에 온몸을 맡기고 거친 물살을 헤치다 보면 어렵고 힘든 상황이 닥치더라도 단합해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 같다”며 래프팅 애찬론을 펼친다.

거의 2시간이 지나자 저 멀리 경호5교가 보이고 8km 래프팅의 긴 여행의 종착지에 닿는다.


펀야킹
날렵하게 급류를 헤치는 스릴 환상
래프팅으론 뭔가 부족하고 더 짜릿한 속도감을 만끽하고 쉽다면 펀야킹(Funya-King)에 도전해 보자.

카약을 좀 더 편하고 재미있게 만들었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펀야킹은 래프팅과 카약·카누를 혼합한 형태로 기동성을 갖춘 레포츠다.

또 물 위에 떠 있는 모습이 마치 오리가 헤엄치는 것 같다고 ‘더키(Docky)’라는 닉네임으로 불리기도 한다.

펀야킹은 역동적이면서도 작다는 것이 장점으로 래프팅과 비교를 거부할 정도로 속도가 빨라 짜릿함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인기 ‘짱’이다.

김철식 사장에게 간단한 교육을 받고 펀야킹에 올랐다. 무엇보다 래프팅용 보트에는 허리를 받쳐주는 것이 없어 불편했는데 펀약은 자리 뒤에 허리 받침이 있어 안정감이 느껴진다.

래프팅을 즐기는 보트들의 사이사이를 헤치며 펀약이 물살을 타고 질주한다.
순간 바위 옆으로 거친 급류가 펀약을 집어삼킬 듯 하얀 포말을 일으키고 있다.

물살에 펀약이 빨려 들어가더니 몸이 쑥 꺼지며 커다란 물벼락과 함께 펀약이 하늘 높이 솟아오른다.

놀이동산의 롤러코스트를 타는 것보다 더한 짜릿함이 온몸을 파고든다. 이어 아주 빠른 속도로 급류를 탈출한 펀약이 경호강과 한 몸이 되어 흐른다.

펀야킹 여행을 끝내고 나니 후덥지근한 장마철 무더위는 온데간데없고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로 시원함이 밀려온다.

여행메모

이건 꼭
긴팔옷을 준비하자. 2~3시간씩 래프팅을 하다 보면 화상을 입을 수도 있고 간혹 노에 의해 찰과상의 위험도 있다.

샌들도 좋지만 물속에서 신을 수 있는 아쿠아슈즈도 필요하다. 안전장비를 착용하는 것은 필수.

만약에 물에 빠졌을 경우 고개와 발을 들어올려 누운 자세로 하류를 보면서 내려가는 것이 안전하다.

구명조끼와 헬멧은 업체들이 모두 가지고 있어 따로 준비할 필요는 없다. 경호강에는 30여곳의 수상레포츠 업체들이 영업을 하고 있다.
문의 : 레포츠911 055-974-1219, 010-3030-3034, 레저스쿨 055-972-1315

가는 길
경부고속도로 이용 대전 지나 판암IC에서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로 갈아타고 가다 산청IC나 단성IC를 빠져 나오면 금방이다.

볼거리
산청을 찾았다면 지리산 계곡을 빼놓을 수 없다. 대원사, 내원사 계곡은 맑은 물과 원시적인 녹음이 살아 있어 여름 피서지로 그만. 또 문익점 면화 시배지를 비롯해 성철스님 유적지, 한방관광단지, 남사예담촌 등도 볼 만하다.

래프팅 이곳이 명소

강원 영월 동강
고요한 강물과 깎아지른 절벽, 그리고 간혹 보이는 오지마을의 농가들. 동강의 아늑한 비경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강물을 따라 구경하는 래프팅이다.

동강에서 래프팅을 타는 구간은 정선 고성에서 영월 섭새까지 30여km 구간. 이 중 진탄나루-섭새 코스를 가장 많이 찾는다.

인제 내린천
인제 래프팅은 코스가 70㎞에 달하며 국내에서 가장 난이도가 높은 곳. 갑자기 보트가 뚝 떨어진다 싶을 정도로 낙차가 큰 곳도 있다.

초행자들도 좋지만 중급 이상의 경험자 중 마니아가 많다. 코스는 원대교∼고사리(6㎞) 구간을 비롯해 4개 코스가 있다. 동강 못지않게 강줄기가 이리저리 휘어진 것도 특징이다.

강원 철원군 한탄강
한탕강은 주상절리의 협곡으로 강변의 아름다움만은 단연 압권. 한탄강에서 래프팅을 타는 구간은 상류인 직탕폭포에서부터 승일교, 고석정, 순담을 거쳐 군탄교 까지다.

이 중 순담에서 군탄까지 구간이 가장 많이 애용된다. 한탄강 래프팅은 큰 파도가 없어 아기자기한 편이다.

경호강(산청)=글ㆍ사진 아시아경제신문 조용준 기자 (jun2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