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 여유롭지 않아도 ‘축제’ 즐길 수 있다

100세 시대의 장수리스크. 너무 오래 사는 것이 오히려 위험하다는 금융사들의 명제는 ‘뻥’일 수 있다.

사람은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늘 두려워한다. 이 땅을 사는 40~50대의 가장 큰 두려움은 100세 시대다. TV에서 나오는 금융회사 광고들은 하나같이 전부 100세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너무 오래 살아서 위험하다고까지 이야기한다. 평균수명 증가로 인한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어 국민연금도 줄어든다고 설명한다. 게다가 치열한 경쟁으로 은퇴 연령은 갈수록 빨라진다고 강조한다. 결국 젊을 때 아껴 은퇴 이후 50년을 대비해야 한다고 결론짓는다.

금융회사 관계자에게 은퇴설계를 받으면 대부분 10억에서 20억 정도의 자금이 필요하다는 결론이다. 한 금융회사 은퇴연구소는 은퇴 후 부부가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하는데 월 183만원이 든다는 자료를 내놓았다. 기초생활비 153만원, 의료비 25만원, 건강검진비 연 60만원 등이 그 내용이다. 여기에 사회활동, 차량유지, 여행 등 안정적인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월 300만원 이상이 필요하고, 골프 등 사회적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월 500만원 이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단순하게 계산해 통계청이 밝힌 평균 정년퇴직 나이인 53세부터 100세까지 47년간 중산층의 삶을 사는데 필요한 자금은 17억원에 달한다. 최저생계비로 계산해도 9억원 정도가 필요하며, 여유롭게 살려면 무려 28억원 이상의 현금성 자산을 은퇴시점에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기가 찰 노릇이다.

금융회사 관계자는 이처럼 어이없는 금액을 연금 목표액으로 정하고 남은 기간을 환산하여 월 연금액이라고 컨설팅한다.

노후를 위해 저축과 투자를 하는 것. 그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금융회사의 지나친 공포마케팅이 문제다. 부작용도 심각하다. 대표적인 폐해가 연금보험의 높은 중도해지율이다. 안정적인 노후를 위해 ‘정도 이상’의 금액이 필요하다는 논리에 감당하기 버거운 금액으로 덜컹 가입한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무리한 지출을 감당하지 못해 중도 해지한다. 결국 손해는 금융소비자의 몫이다.

은퇴 후 필요 자금이 자신의 현재 경제력으로는 감당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절망하여 은퇴준비 자체를 포기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자산가나 사업가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거액을 준비하겠는가?

그러나 금융회사 논리를 파고들면 허점을 발견할 수 있다. 국민연금이나 퇴직연금 등 기본 연금은 무시하고 은퇴 후 경제활동 가능성도 제외한다. 대한민국을 복지가 전혀 없는 국가로 간주하며, 은퇴자를 전혀 생산적이지 않은 사람이라고 치부한다. 때문에 은퇴 직후부터 전혀 소득이 없을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 어느 정도의 자금이 필요할까? 정답은 없다. 사람마다 다르다. 다만 금융회사에서 말하는 것보다 필요 자금은 적을 수 있다. 합리적인 은퇴 설계를 위해서는 은퇴 후 경제활동, 소비생활과 함께 국민연금, 퇴직보험 등 확보 가능한 자금 등을 모두 합쳐 종합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실례로 국민연금을 살펴보자. 고령화로 연금 수령자가 증가하기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연금 수령 기간과 금액이 불리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단점만 있지는 않다. 공적연금으로써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운영 비용 일부를 국고에서 지원하며 상품 판촉비용 등 부대비용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국민연금은 월별로 자기 소득의 9%(직장인은 절반을 회사가 부담)를 내면 2028년부터 40%의 소득대체율을 보장한다. 20~30년 꾸준히 국민연금을 납부하면 만 60세(1953년 생 이후부터 출생연도별로 만 61~65세로 연장) 이후 연금을 받는다. 이때 가입기간 중 소득은 연금 수급 시점의 가치로 재평가된다. 아울러 소비자물가변동률만큼 매년 연금액이 변동된다. 물가가 상승해도 구매력은 떨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따라서 직장인이라면 회사가 그 절반을 부담하는 국민연금을 절대 아깝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자영업자의 경우도 개인연금을 중요시하는 만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국민연금 다음으로 중요한 게 퇴직연금이다. 퇴직연금은 과거 퇴직금이 연금형태로 전환된 것이다. 얼마 전까지 대부분의 기업은 퇴직금을 중간정산했다. 기업의 입장에서 중간정산하면 비용이 절감된다. 그러나 근로자의 입장에서 퇴직금은 최대한 늦게 수령할수록 좋다. 때문에 정부는 퇴직금 중간정산을 하지 못하도록 했고, 이를 퇴직연금으로 전환해 노후에 수령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했다. 이로써 근로자는 퇴직금을 계속 투자할 수 있어 노후 생활 안정에 도움이 된다.

개인연금은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의 부족분을 메우는 용도다.

그러나 공포마케팅으로 과도한 비중을 개인연금에 납입한다. 연금보험과 같은 저축성보험의 경우 매달 사고위험보장에 대한 보험료와 모집수수료 등의 사업성 경비를 공제한 잔액만 저축원금으로 적립된다. 또한 보험사가 모집인에게 수수료를 계약 초기에 집중해서 지급한다.

2012년 3월 한국소비자원 시장조사국 거래조사팀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금융소비자의 절반 이상(53.24%)이 이 같은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때문에 해약환급금이 적다는 불만(25.3.%)을 가지고 있었다. 은퇴준비에 대한 공포마케팅으로 과도한 상품 계약을 체결하지만 정작 유지하기가 쉽지 않아 조기 해약이 많고, 조기해약 할 때 왜 해약환급금이 적은지 그 타당한 이유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절판 마케팅 또한 문제다. 세제개편이나 보험업법 개정 또는 시행령 발표를 앞두면 과도한 절판 마케팅이 성행한다. ‘지금 가입하지 않으면 손해’라는 말에 두려워 금융상품을 선택한다. 그 상품의 특성이나 효과보다 지금가입하지 않으면 가입할 수 없으니 가입하는 것이다.

은퇴준비 특히 재무적인 부분은 합리적인 준비가 필수다. 따라서 아직 겪어보지 못한 은퇴. 막연한 두려움에 자세히 따져보지 않고 덜컥 가입하면 곤란하다.

우선 자신의 현금흐름에 맞아야 한다. 매월 납부하는 금융상품을 선택할 때는 반드시 자신의 현금흐름표를 직접 작성해보고 매월 현금흐름에 지장없는 한도 내에서 금액을 결정해야 한다. 특정 금융상품을 판매하는 영업인이 아닌, 판매에서 자유로운 전문가와 상담도 필수다. 금융상품을 판매하지 않는 전문가는 컨설팅에서 자유로울 수 있으며, 좀더 개인의 상황에 맞는 상품을 추천할 수 있다. 즉 여러 가지 금융상품을 비교하여 상품의 특징을 정확히 알고 가입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은퇴준비를 재무적인 영역에만 한정해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돈’ 그 자체가 은퇴의 목적이 될 수 없다. 은퇴한 분들은 ‘돈’ 문제가 아니라 지엽적인 부분이라 생각했던 다른 문제들 때문에 고통을 겪는 경우가 많다. 또한 은퇴 후 하고 싶은 일을 미리 준비한다면, 필요한 노후자금은 줄어들고 인생의 즐거움은 증가할 것이다. 일생을 통해 이루고 싶은 가치와 목표, 소중한 가족, 원만한 인간관계, 봉사를 통한 사회적 참여 등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도 많다.

금융사들의 공포마케팅으로 인해 ‘돈’으로만 은퇴를 준비하지 말고, 인생의 목표와 즐거움이 무엇인지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합리적인 은퇴준비를 해야 한다.

 

권도형_한국은퇴설계연구소 대표

한국은퇴설계연구소는 대한민국 은퇴설계의 새로운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금융권의 논리가 아닌 은퇴자 입장에서 비재무적목표를 포함한 은퇴설계를 지원한다. 저서로는 '꿈에 투자하라' '돈, 잘 쓰고 잘 모으고 잘 불리는 법' '정말 10억이 필요합니까?'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