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블릴리언트사의 바흐 2대와 3대, 4대의 하프시코드를 위한 협주곡 음반.

② 펜타톤 레이블에서 SACD로 내놓은 인발 지휘 프랑크푸르트라디오심포니의 라흐마니노프 음반.

서양음악사를 보다 보면 음악가의 세계에도 호불호가 선명하게 엇갈리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예를 들어 브람스와 바그너는 숙명적인 앙숙이었다. 음악사 최대의 로망스를 이끄는 클라라를 둘러싼 슈만과 브람스의 묘한 관계 등 음악사 자체가 사실은 인생사로 연결된다.

이들은 서로 유기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음악 형식부터 작곡 내용까지 많은 부분을 지배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 같은 분위기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방법의 하나는 변주곡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것이리라.

작곡가들이 다른 작곡가의 주제를 바탕으로 한 변주곡만 만든 것도 아니다. 작곡가가 하나의 선율을 모티브로 여러 가지 변주를 이끌어낸 곡들도 명곡이 많다.

위키백과사전에 따르면 변주곡(variation)은 어떤 주제를 바탕으로 하여 리듬이나 선율 등에 변화를 줘 만든 악곡을 말한다.

원작이나 모티브를 뛰어넘어 사랑받는 변주곡의 세계로 들어가보자.
 

비발디 주제를 이용한 바흐의 4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
사실 바흐와 비발디, 누가 더 일찍 태어났는지 처음 생각했을 때 언뜻 바흐가 위라는 착각을 했다.

사람들이 왜 바흐를 클래식 음악의 종착역이라고 했는지 처음 느끼게 했던 곡이 바로 ‘4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BWV 1065번)’이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유치를 위한 기념음악회에서 이 곡을 처음 접했다. 스타디움에서 마이크와 PA용 스피커를 통해 전달되기는 했지만 4명의 국내 피아니스트가 연주한 이 협주곡은 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때 이곡이 연주된 음반을 찾아헤메다가 LP로 녹음된 장 피에르 발레(Jean Pierre Wallez)가 이끄는 파리앙상블오케스트라(Ensemble Orchestral de Paris)가 연주한 음반을 찾았다.

이 곡에서는 베로(Beroff)와 꼴라르(Collard), 리귀토( Rigutto), 타키토(Tacchino) 등 4명의 피아니스트가 함께 했다.

결국 이 음반을 CD로도 구해서 듣고 있을 정도로 애청하고 있다. 그러던 중 이 곡은 바하가 1730년 비발디가 먼저 작곡한 ‘4대의 바이올린과 1대의 첼로, 바소 콘티누오를 위한 협주곡’을 편곡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물론 당시에는 챔발로용으로 연주됐다. 비발디의 원곡은 사계와 함께 그가 ‘조화의 영감’에서 10번째 곡으로 편곡했다. 조르디 사발의 시대연주음반과 비욘디의 음반에서도 이 곡을 만날 수 있다.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변주곡’을 작곡한 브람스와 리스트, 라흐마니노프
바하와 비발디 시대를 함께 풍미했지만 많은 곡을 남기지는 않았던 음악가가 니콜로 파가니니(Niccol Paga-nini)다.

1823년 파가니니 선풍을 일으킨 그의 음악은 당대에는 연주가 어렵다고 모든 사람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을 정도.

그가 남긴 곡은 바이올린 협주곡 1·2번과 24개의 무반주 바이올린 카프리치오, 라 캄파넬라 등에 불과하다.

하지만 브람스부터 리스트, 라흐마니노프는 그가 사용한 선율을 주제로 각각의 변주곡을 작곡했다.

그가 얼마나 후대의 음악가들에게 영감을 제공했는지 짐작이 가능하다. 브람스와 리스트, 라흐마니노프는 공통적으로 파가니니의 무반주 바이올린 카프리치오 A단조의 주제를 가지고 변주곡을 만들었다.

파가니니 곡 자체가 사실상 변주곡의 형태를 띠고 있어 가능했던 것이리라. 리스트는 독특하게도 이를 피아노 연습곡으로 만들었다.

당대 최고의 피아노 연주자였던 리스트는 바이올린 연주의 전설 파가니니를 피아노로 해석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이 곡의 제목은 ‘파가니니 대연습곡’이다. 고전주의의 마지막 신봉자 브람스는 편곡이라는 이름으로 전혀 새로운 해석의 변주곡을 내놓았고, 파가니니 외에도 슈만과 헨델 주제에 의한 변주곡을 작곡하기도 했다.

라흐마니노프도 파가니니 외에 바흐나 크라이슬러 곡을 편곡해 그가 직접 연주한 음반으로 남기기도 했다.
 

③ 에밀 질렐스가 연주한 베토벤 피아노 변주곡집 음반.

④ 흥얼거리는 그렌 굴드의 허밍 소리까지 녹음돼 가슴을 설레게 하는 CBS 레코딩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⑤ 번스타인이 지휘한 뉴욕 필하모닉 어린이를 위한 클래식 음반.

⑥ 야노스 스타커가 협연한 차이콥스키 로코코 변주곡 음반.

베토벤의 마적 주제에 의한 7가지 변주곡
베토벤도 변주곡을 다수 작곡했다. 창작 주제에 의한 32개 변주곡을 비롯해 드레슬리 행진곡 주제에 의한 9개 변주곡 등 수십 곡에 달할 정도.

헨델의 주제에 의한 12개의 변주곡은 피아노 연주를 위해 작곡됐다. 그의 변주곡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모차르트가 작곡한 오페라 ‘마적’ 주제를 바탕으로 한 7개의 변주곡이다.

마적이 지금도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이 곡에 단연 관심이 간다. 그는 또 다른 모차르트 주제에 의한 12개의 변주곡도 만들었다.

베토벤 당시 음악은 가장 대중적으로 연주됐다는 점을 감안할 때 유명 오페라에서 사용한 아리아와 주제를 바탕으로 변주된 연주곡을 작곡하는 것은 어찌 보면 매우 당연한 일이었을지 모르겠다.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글렌 굴드를 비롯해 유명 피아니스트치고 바흐의 골드베르그 변주곡을 연주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정도로 유명한 곡이다.

사실 다른 변주곡이 선대 작곡가의 주제를 바탕으로 했다면 이 곡은 바흐가 1725년 만든 ‘막달레나 바흐를 위한 연습곡집’의 선율에 30개의 변주곡을 붙여서 만들었다.

골드베르크는 바흐가 작센공으로부터 궁정음악가 칭호를 받을 때 도와줬던 하이저링크 백작을 모시던 클라비어(피아노의 전신) 연주자의 이름에서 왔다.

바흐가 작곡한 곡을 당시에는 골드베르크가 연주했고, 그래서 연주자의 이름을 딴 것이다.

이 곡의 최고 연주는 누가 뭐래도 글렌 굴드다. 일생에 걸쳐 수많은 골드베르크 연주를 남겼던 굴드가 죽은 뒤 소니에서 야마하 피아노로 컴퓨터 연주를 실시한 음반이 나왔을 정도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일상생활에 묻어나는 캐논 변주곡
유명곡이 단 한 곡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자주 연주되는 곡을 꼽으라면 파헬벨의 캐논을 꼽을 수 있다.

바흐보다도 1세기 앞선 1653년에 뉘른베르크에서 태어난 요한 파헬벨(Johann Pachelbel)은 오르간을 중심으로 한 코랄 변주곡 등 주요한 작품을 남겼지만 사실 ‘캐논’이 더 유명하다.

캐논(Canon)은 원래 같은 주제를 반복해서 연주하는 돌림노래 형식을 말하며, 파헬벨이 작곡한 캐논은 뒤에 이어지는 지그(춤곡의 일종)와 함께 널리 알려져 지금도 연주되는 곡이다.

조지 윈스턴이나 제임스 골웨이 등 뉴에이지 연주자들에 의해 피아노, 플루트 등으로 연주되기도 하는 캐논은 오케스트라와 성악곡으로도 인기가 높다.

헨리 퍼셀 주제로 브리튼이 만든 교육용 변주곡
벤자민 브리튼이 만든 교육용 음악 ‘청소년을 위한 관현악 입문’은 가장 최근에 작곡된 변주곡의 교과서 가운데 하나다.

이 곡의 정식 명칭은 ‘퍼셀 주제에 의한 변주곡과 푸가’. 이 곡은 퍼셀의 주제를 연주하는 1곡과 퍼셀의 주제에 의한 13개의 변주곡과 악기를 해설하는 2부, 그리고 마지막 관현악으로 연주되는 3부 브리튼의 푸가 연주로 구성됐다.

영국의 바로크 음악가 퍼셀은 오페라 ‘디도와 아이네아스’, ‘인도의 여왕’을 비롯해 각종 종교음악과 합창곡을 작곡했던 당대 최고의 작곡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퍼셀이 9개의 모음곡으로 작곡한 ‘Suit from Ab-delazar(어브델라자르 모음곡, 속칭 무어인의 복수)’의 론도 주제를 바탕으로 작곡됐다.

차이콥스키 로코코 주제에 의한 변주곡
차이콥스키가 러시아적 분위기를 물신 풍기며 작곡, 첼로로 연주되는 ‘로코코 주제에 의한 변주곡’은 특정 주제가 아닌 작곡가가 생각한 선율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프랑스 루이 15세 시대의 건축 양식 로코코는 우아하고 호화로운 모습의 상징이었는데, 차이콥스키는 그 느낌으로 이 곡에 7개의 변주곡을 붙였다.

음악학자들은 이 곡이 모차르트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해 작곡됐으며, 18세기 발레의 화려하고 이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 것으로 평가했다.

이 곡은 사실상 차이코프스키의 첼로 협주곡에 해당한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아시아경제신문 조영훈 금융부장 (dubbcho@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