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4년 국내 시장에 도입된 적립식펀드는 한국인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놓은 ‘나비의 날갯짓’이었다.

‘스타벅스’에서 값비싼 커피를 마시는 젊은 세대들은 저축을 중시하는 부모세대의 재테크 방식에 만족하지 않았다.

동시대인들에게 재테크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이랜드 출신의 박형구 금호생명 보험설계사, 개그맨 최양락의 부인으로 널리 알려진 팽현숙 씨, 그리고 강남 입성과 딸들의 미래를 위해 주식투자를 한다는 이한표 LG CNS 과장의 재테크 희망연가를 들어보았다.

“재테크는 ‘연탄불’입니다. 젊은 시절 꿈을 지피거든요…”
이랜드 출신 박형구 금호생명 보험설계사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는 일상의 연속이다. 박형구 씨는 40대 중반의 2년차 보험 설계사이다.

수화기 너머에서 흘러드는 낯선 목소리의 고객들은 늘 10년 전을 떠올리게 한다. 이랜드에서 근무하던 그는 매장 개척 업무를 담당했다. 타사 브랜드 매장을 방문해 이랜드 쪽으로 돌리는 일이 그의 업무였다.

지난 15일, 광화문에 있는 금호생명 지점 사무실. 형형색색의 색종이 위에 쓰인 슬로건이 벽면에 가득한 보험사 지점은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그는 고객들과 약속을 조율 중이었다.

지난 1997년 태국을 필두로 아시아 여러 나라를 강타한 외환위기는 그의 삶을 바꾸어놓았다. 박 씨는 30대 중반의 나이에 중견기업 ‘이랜드’를 떠났다.

그리고 유명 인터넷 쇼핑몰에 신발, 가방을 공급하는 ‘벤더’를 차렸다. ‘홀로서기’의 시작이다.

태국에서 ‘덤핑가’로 들여온 나이키 재고 상품은 날개 돋친 듯 판매됐다. 하지만 모든 것은 ‘일장춘몽(一場春夢)’이었다. 마무리가 부실한 제품의 반품이 폭주했던 것. 첫 도전에 실패한 그는 중소기업의 직원으로 취업했다.

이번에도 박 씨의 ‘발목’을 잡은 것은 바로 20%에 달하는 반품률이었다. 홈쇼핑에 공급한 양복은 불티나게 팔렸으나, 반품으로 재고관리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며 물건을 적기에 공급하지 못하자 홈쇼핑업체는 계약을 취소했다. 박 씨는 당시를 떠올리며 씁쓸한 미소를 짓는다.

박 씨는 요즘 주말에도 늘 바쁘다. 지난 주말에는 한 경매 주택을 방문해 위치, 지분, 근저당 관계 등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두 아들, 부인과 목동에 있는 30평대 빌라에서 사는 그는 법원 경매로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1차 목표이다. 매월 120만원가량을 펀드나 보험상품 등에도 투자하고 있다.

어린 두 아들의 교육비 마련을 위한 ‘펀드상품’, 노후 대비 종신보험, 청약저축 등에 적지 않은 돈을 투자하고 있다.

펀드투자에서 보험상품, 경매까지, 재테크에 공을 들이다 보니 노하우도 생겼다. 직장생활에 쫓기는 직장인들은 경매 컨설팅사를 활용하라는 것이 그의 조언이다. 수수료(50만원)를 받고 경매에서 낙찰될 때까지 컨설팅을 해준다.

그런 그가 요즘 눈여겨보는 매장들이 있다. 박 씨는 요식업 분야에 마지막 승부수를 던질 계획이다.

친환경 식재료만을 써서 음식을 만드는 유기농 뷔페가 그를 사로 잡는다. 박 씨에게 재테크는 30대 중반 시절의 꿈을 되살리고 마음을 훈훈하게 데워주는 ‘연탄불’이다. 참을 수 없는 ‘중독’이자 평생을 함께 가는 벗이기도 하다는 게 그의 고백이다.

“재테크는 순댓국입니다. 마음을 훈훈히 데워줍니다”
순댓국집 운영하는 팽현숙 전 개그우먼

유명 연예인을 남편으로 둔 여자에게도 재테크는 늘 관심사다. 최근 《팽현숙의 내조재테크》라는 책을 통해 자신의 목돈 마련 노하우를 공개한 개그우먼 출신 사업가 팽현숙 씨.

그녀가 재테크를 시작한 이유도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유는 바로 안정적인 노후 대비 때문이다.

팽 씨는 “연예인이란 직업이 겉보기엔 화려해도 수입이 일정치 않아 항상 불안하다”고 말한다.

안정적인 수입원을 마련하기 위해 팽 씨는 직접 장사를 시작했다. 장사를 위해선 목돈이 필요했고 목돈 마련을 위해 팽 씨가 선택한 재테크 방법은 부동산 임대업과 저축이 전부였다.

사업을 시작하기 전부터 돈이 생기면 무조건 은행을 찾았다. 꼼꼼하게 지출목록을 작성하는 팽 씨의 지출 일순위는 언제나 적금이다.

적금을 떼어놓은 후에 남은 돈으로 각종 생활비 계획과 목돈 마련 계획을 잡는다. 장사가 잘돼 하루 매상이 300만~400만원을 넘나들 때도 마찬가지였다.

구리에서 ‘꽃피는 산골’이라는 카페로 대박을 내던 시절에도 돈 자루를 들고 매일 은행을 찾았다.

당시에는 신용카드가 활성화되기 전이라 돈 자루 가득 현금을 들고 다녔다. 팽 씨는 매일같이 은행을 찾은 것이 재테크 성공의 숨은 비결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소액이라도 저축하기 위해 매일 은행을 드나들다 보니 지점장과도 친해질 수 있었다.

지금은 대부분의 매출이 신용카드를 통해 이루어져 전처럼 돈 자루를 들고 은행에 갈 일이 없어졌지만 팽 씨의 은행 출입은 그치지 않았다.

은행 직원들과의 친분 유지는 상품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동네의 상권이나 근처 아파트의 투자가치를 조언받는 등 혜택이 끝이 없다는 것.

팽 씨가 부동산 임대사업을 시작한 것은 호주에서 1년을 보내고 돌아온 직후였다.
복지 혜택이 풍성한 호주의 경우 많은 사람들이 임대주택에서 주세(週稅)를 내고 살고 있다. 때문에 노후 걱정을 크게 하지 않는다.

이 모습을 본 팽 씨는 한국도 머지않아 복지국가가 되면 부동산 임대업 시장이 더 커지리라 예상한 것이다. 막상 부동산 임대사업을 시작하려 했더니 여유자금이 필요했다.

팽 씨의 목돈 마련 노하우는 역시 저축. 팽 씨는 5000만~6000만원의 목돈이 모이면 아파트를 샀다.

6000만원의 종잣돈에다 8000만원 정도의 전세를 끼고 나머지는 대출을 받으면 2억원 정도의 아파트를 구입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방법을 몰라 고생을 좀 했지만 몇 번 반복하다 보니 목돈 마련이 훨씬 수월해졌다.

팽 씨는 임대의 목적을 분명히 한 후 18평, 24평, 27평형의 국민 평수의 아파트만 매입해 왔다. 이보다 큰 평형의 아파트들은 세입자를 구하기 쉽지 않은 까닭이다.

팽 씨는 현재 남양주시 와부읍에 위치한 ‘옛날 순대국’집으로 다시 한번 대박을 내고 있다. 실제로 점심시간이 지난 시간이었는데도 가게는 빈 테이블을 찾기 어려웠다.

팽 씨의 꿈은 ‘놀부 부대찌개’와 같은 외식업 프랜차이즈의 CEO가 되는 것이다.
최근에는 꿈의 실현을 위해 ‘주식회사 PK’라는 회사도 차렸다.

저축과 부동산 임대업이라는 재테크 수단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팽 씨에게 재테크란 외식업 CEO라는 달콤한 열매를 맺게 해줄 텃밭이다.

“재테크는 예쁜 두 딸입니다. 그녀들의 미래를 책임지거든요”
강남에 사는 이한표 LG CNS 과장

이한표 과장(39)은 강남에 사는 30대 직장인이다. 외국계 기업에 다니는 아내의 연봉을 더하면 가계 소득은 연간 1억원을 훌쩍 넘는 데다, 대기업 직원으로 젊은 나이에 강남에 입성했으니 그만하면 성공한 직장인의 전형이기도 하다. 주말이면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강한다.

잠재 고객사들을 상대로 제안서를 쓰고 자사의 솔루션을 마케팅하는 것이 그의 주요 업무이다.

지난주에는 대규모 프로젝트 준비를 하느라 주말에도 회사에 출근해 아내의 눈치를 봐야 했다. 요즘 폭주하는 업무에 파김치가 될 법한 이 과장이 퇴근 후 거르지 않는 일이 있다.

바로 ‘다큐멘터리 시청’과 ‘증시 분석’이다. 그는 귀가한 뒤 바로 컴퓨터 앞에 앉는다. 놀아달라고 보채는 두 딸도 아랑곳하지 않고 네이버 주식 관련 정보를 꼼꼼히 살펴본다.

애널리스트들의 종목분석 리포트, 그리고 주요 뉴스들을 훑어보며 유망 종목을 저울질한다. 미 증시 상황도 실시간으로 확인한다.

올 들어 이 과장은 2000만원가량을 주식투자로 벌었다. “일진전기를 비롯한 몇 개 종목에 투자해 재미를 봤어요.

사실, 지난해 이머징마켓 펀드에 투자했다 손실을 봤는데, 이번 직접투자로 손실을 모두 만회하고도 수익을 남겼습니다.”

그가 주식시장에 뛰어든 것은 3년 전.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자신만의 투자 기준을 세운 것이 성공의 비결이다.

투자의 첫단추는 애널리스트들의 추천 종목 리포트다. 증권사 해당 사이트나 네이버 등을 방문하면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자료에서 이씨는 투자대상을 발굴한다.

물론 맹신은 금물이다. 추천 종목 관련 리포트를 꼼꼼히 읽어보고 주가 추이를 살핀 뒤 매수 여부를 결정한다.

해당 종목의 ‘재무제표’도 비교적 꼼꼼하게 살펴보는 편이며, 기술적 분석방법도 전문가 수준에는 못 미치지만 주요 그래프를 독해할 정도는 익혀 투자에 활용한다.

‘손절매’ 기준도 비교적 뚜렷하다. 주가하락 폭이 매입가 대비 7%에 달할 때 무조건 종목을 정리한다.

개미투자자들은 대개 손절매 시기를 놓쳐 손실폭을 키우는 반면, 주가가 조금만 올라도 이익실현에 나서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그는 지난 3년간 이러한 한계를 떨쳤다.

테마주에 집착하기보다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정보에서 종목 발굴 연습을 하는 편이 더 현실적이라는 게 그의 결론이다.

한때 증권방송에 등장하는 고수들의 강의를 듣기도 했으나 일과 주식을 병행할 수 없어 지금은 포기했다며 기술적 분석도 주요 그래프만 보는 정도라고 고백했다.

이한표 과장이 밤마다 개미투자자로 변신하는 이면에는 현실에 대한 고민이 있다. 바로 어린 두 딸의 교육, 그리고 대한민국 일번지 강남 입성이다.

강남 신천에 위치한 30평형대 아파트에 살고 있으니 이미 강남 입성에는 성공한 셈이지만, 아직까지는 ‘반쪽 성공’에 불과하다.

“최근에 아파트 전세를 월세로 돌려달라는 집주인의 요구로 한바탕 홍역을 치렀어요. 결국 전세금을 더 올려주기로 가닥을 잡았습니다만 빨리 집장만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더 절실해졌습니다.” 올해 3세인 막내 딸을 돌보는 조선족 도우미 아주머니에 지출하는 돈도 월 140만원 수준.

여기에 영어 유치원 수강료, 그리고 스케이트 강습비, 막내딸의 문화센터 영어교육 수강료를 더하면 양육비만 월 300만원에 달한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부부가 일찌감치 종신보험에 가입해 노후에 착실히 대비하고 있다는 것 정도이다. 이 과장에게 재테크는 남녀 간의 연애이다.

헤어지고 만나기를 반복하며 상대방의 속내를 조금씩 알아가는 지루한 기다림의 예술이기도 하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두 딸의 미래이기도 하다.

박영환 기자 blade@asiae.co.kr
이재훈 기자 huny@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