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갑갤러리 두모악 박훈일관장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가장 친숙하면서도 아련하게 잊혀져가는 단어, 아버지와 선생님. 그것들에 대한 그리움과 기억들 두 세개쯤은 누구나 저마다의 가슴 한켠에 아련하게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포토그래퍼 박훈일, 그는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 삼달리에 위치하고 있는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의 관장이다. 동시에 한 소년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한 사람의 육신과 영혼이 곳곳에 기억과 흔적으로 스며들어 있는 그 정원을 모두들 사랑한다. 김영갑갤러리가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가장 큰 이유는 그곳에 정원이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에게는 아버지의 정원에 대한 기억이 있고 김영갑선생님의 정원에 대한 아주 특별한 기억이 있다.

제주는 곧 오름이다. 그곳은 시간이 멈추는 곳이다. 오름의 곁에는 늘 중산간으로 향하는 길이 있다. 또 그곳에는 언제나 바람과 나무 그리고 꽃들이 함께 한다. 숲으로 뒤덮인 곶자왈과 한라산. 그 아래에는 거치른 고요의 바다가 있고 또 그 곁에는 탑동과 강정이 자리잡고 있다. 그는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을 지키며 사진작업을 하고 있다.

, , , , , , 라는 이름은 그를 대신한다.

김영갑갤러 두모악 박훈일 관장

가족과 함께하는 힐링 에너지가 있어 늘 행복한 곳

그에게 사진은 무엇인지, 김영갑선생은 어떤 존재인지를 물었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그에게 제주는 사진이고 김영갑선생이다. 세상 사람이 모두 사진가인 세상에 그가 말한 제주의 이야기들을 들어 본다. 중산간은, 두모악은 그에게 어떤 존재인지를 또 물었다.

Q. 김영갑갤러리 두모악, 두모악에 관한 궁금증 하나

두모악은 한라산의 옛 이름이,김영갑 선생님이 제주도로 내려오셔서 20년간 진행한 작업의 화두였다. 2001년도에 폐교가 된 삼달리 초등학교를 임대를 한 후 리모델링하여 미술관으로 만들어진 곳이다.

Q. 스승으로 바라 본 김영갑 선생님에 대한 기억을 서술하면

김영갑 선생님은 사진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지난 82년부터 제주도를 촬영하고 싶어, 3년 정도를 계획하고 왔다 갔다 하면서 작업을 했다. 사랑에 눈멀면 마음도 놓치는 법, 선생님은 왔다 갔다 하면서 작업해서는 도저히 제주를 작업할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하고 85년도에 정착을 했다. 처음에는 10년 정도 작업을 하면 되겠다 싶었는데 10년이 지나고도 제주의 작업이 부족하고 오히려 제주도가 좋아져 정착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2001년 하반기 건강이 안 좋아져 2001년도 겨울쯤에 현재 미술관을 임대하고 그곳에 미술관을 만드는 작업을 했고 그 과정은 평생 동안 제주 작업을 한 것이 된 것이다.

Q. 사진을 찍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지

나는 김영갑 선생님 때문에 사진을 시작을 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선생님을 처음 만났는데 선생님의 흑백 사진에 매료되어 작업을 시작했고 선생님한테 사진을 배우겠다고 졸랐다.나한테 하루도 거르지 않고 사진 작업을 할 수 있느냐고 물었고 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내게 화두와 같은 것이다. 쉽지가 않다. 작업하기 위해 어딘가를 찾아가고 그것을 작업하고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일상 속에서 작업의 소재를 찾고 그 속에서 내가 하고 싶은 작업을 하는 것이다. 특히 선생님이 돌아가신 후 두모악을 맡아서 운영하고 있는데 그런 입장에서 사진가인 나한테 필요한 것은 시간이었다. 작업할 시간, 나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시간. 작업하는 시간만큼은 핸드폰도 꺼놓고 아무 생각도 안하게 된다. 일상 안에서 작업이라는 생각보다도 그 공간 안에서 이루어진, 자신과의 호흡. 이런 시간들을 많이 가지면서 자연스럽게 작업을 하게 되는 것. 그것이 내게 아주 중요하다. 나의 일상도 사실 내일에는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다음에 나는, 이곳은, 시간은 어떻게 변할까 늘 고민한다. 과거에 대한 회상, 기억, 성장통. 그것들을 잊고 있다가 문득문득 떠오르는 것들을 회상하고 작업하고 있다. 기억 그리고 변화와 나 그런 것들이, 중산간은 내 사진의 중요한 부분들이다.

Q. 2013년 미술관에서 준비하고 있는 계획이 있다면

김영갑 선생님도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았듯이 나 역시도 미술관을 운영하면서 많은 분들에게 도움을 받았는데늘 환원에 대한 생각을 한다. 미술관이 잘 되면 될수록 해야 되는 역할은 미술관으로서의 역할인데 열심히 작업하는 작가들이 작업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역할이 미술관이 해야 될 역할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김영갑 선생님이 만드신 두모악이 어떻게 영원히 이곳에 남아 있을까하는 고민, 가장 중요한 것은 지역에 대한 고민이다. 지역과 미술관이 함께 갈 수 있는 것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그리고 작업적인 것은 제가 늘 어떤 새로운 곳에 가서 새로운 작업을 하는 것보다도 그냥 내가 늘 있는 곳 안에서 하다가 보면 뭔가 보인다. 그리고 그것을 작업을 통해 만들고 싶다. 처음에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난 다음 맡았을 때는 정말 사람들이 많이 오지 않았다. 하루 평균 관람객이 30명 정도였다. 지금은 아침에 불을 켜면 저녁까지 계속 사람이 오가고 주중에는 일 평균 200명 정도, 주말에는 400명 정도 왔다 간다. 제주에 관람, 관광 오신 분들도 많이 들리고 미술관만 보기 위해 오는 분들도 꽤 많다. 그 역할에 대한 고민은 많을 수 밖에 없다.

나는 삼촌, 선생님에 대한 그의 기억을 넘어 자신의 미래, 미래의 기억에 대해 궁금해졌다. 삼달리 곳간은 그에게 어떤 존재인지를 다시 물었다.

삼달리, 아트올레로서의 곳간 그리고 바다

곳간은 물건을 간직하는 장소다. 곳간 쉼은 발레왓과 마찬가지로 가을에는 감귤을, 다른 계절에는 작품을 전시한다. 역시 무인전시 공간이다. 하지만 빌레왓보다 조금 더 갤러리스럽다. 플라스틱 감귤 상자가 보이는 건 마찬가지지만 공간도 제법 넓고 작품의 위치마다 조명도 설치했기 때문이다. 물론 전시도 점점 더 틀을 만들어 갈 것이다. 그곳에서 2010년 사진가 박훈일의 사진전을 열었고 그 이후에도 레지던스 형태로 발전할만큼 많은 시도들을 해왔다. 이곳이 지역을 너머 아트올레로서 존재해야하고 또 하나의 명소로 자리잡았으면 좋겠다. 퀄러티가 있으면 사람이 모이고 올 사람은 온다는 것, 사진이 학습이라는 도구를 통해 아이들에게 장래 꿈을 이뤄주는 것, 생명을 걸고 사진 작업을 하는 것 그가 한 약속이다. 그 약속이 미술관의 역할이고 힘이다. 그곳이 바로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이다.

바다는 거칠지만 고요하고, 매서워 보이지만 따듯하다. 제주 사람들에게 바다는 희망이고 꿈이다. 나를 알기 위해 찾는 곳이고 스스로 되돌아보게 하는 곳이며, 마음을 비우는 곳이고, 나를 다시 채우고 돌아오는 곳이다. 사람들은 바다를 보면서 쉬고, 바다를 보면서 다시 시작한다. 자신을 되돌아보는 거울이고, 새로운 희망을 꿈꾸는 곳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바다를 매워서 땅을 만들었고, 넓은 땅이 생겼다고 좋아했다. 그러나 그곳에 살던 물고기들마저 고향을 잃었고, 어릴 적 그곳에서 뛰놀던 우리의 추억도 이젠 영원히 묻혀버렸다. 나와 너, 우리의 아들 딸들도 저 바다를 보며 이땅에서 계속 살아가야 할 것이다. 어린 시절에 꾸었던 꿈을, 먼 훗날 이 바다에 앉아 다시 얘기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에게 탑동의 기억은 곧 삼촌, 선생님에 대한 기억과 일치한다.

제주의 기억: 낮선 익숙함

바다는 그에게 어떤 존재인지를 다시 물었다.

 바다는 내게 사진을 다시 시작하게 해주었다. 2005년 5월, 피를 나눈 삼촌 이상으로 다정다감했고 때로는 엄한 스승이었던 김영갑선생님이 영영 내 곁을 떠나셨다. 한동안 선생님의 부재를 인정할 수 없었다. 아무런 생각도,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었고, 멍하니 바닷가 위에서 여섯 달을 보냈다. 내 무기력한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던 바다가 먼저 말을 걸어 왔다. 작업해야지! 그곳에서 뭐하고 있는거지? 파도 소리가 마치 내게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불현 듯 바다를 필름에 담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그 뒤로 바다를 담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에게는 아버지의 정원에 대한 기억이 있고 선생님의 정원에 대한 기억이 있다. 그에게 중산간은 삼촌, 선생님에 대한 기억과 일치한다. 문을 열면 자욱한 안개가 보이고 그 안개 너머로 오름이 보이고 어린 시절 동무들과 함께 캐어먹던 고구마와 콩 익는 냄새가 여전히 나의 코끝을 자극한다.내가 처음 본 삼달리의 기억은 그랬다. 그만의 오름을 훔쳐보기 시작했고 또 그러다 난 사랑에 빠졌다. 그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은 이처럼 자연 한 가운데 놓여있다. 그는 사라진 낮선 풍경 위에서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내며 익숙한 듯 다른 풍경 속에서 새로운 기억을 써내려 왔다. 대상과 만나는 방법을 새롭게 시도할 준비가 되어 있는 제주 토박이 사진가 박훈일을 나는 좋아한다. 나도 그렇게 살아갈 이유가 생겼다.

탑동2007년태풍나리 (박훈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