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러시아 간 무역분쟁이 일어났다. 자유무역 국가들과 벌이던 무역분쟁이 우호국이자 같은 사회주의 국가에서 벌어진 것이 우선 아이러니다.

지난달 중순 러시아가 중국에서 수입된 밀수품 20억달러어치를 압수해 불태우겠다는 사건이 발생한 것. 흔히 무역분쟁 하면 덤핑 문제가 꼽힌다.

세금도 내지 않고 값싸게 들여와 국내 시장을 어지럽히니 러시아 입장에서 중국 밀수 제품이 덤핑 제품보다 더 밉기도 할 것이다.

러시아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이번에 압수된 밀수품 가격이 20억달러에 달하지만 중국 상인들 전언에 따르면 30억~60억달러에 달해 금전적 피해는 생각보다 막심하다.

양국은 국경 사이에 비공식 세관을 두고 밀수를 사실상 허용해 왔다. 중국어로 ‘후이서칭관(灰色淸關)’으로 불리는 이 세관은 지난 1992년 소련연방 해체 이후 수입절차를 간소화하고 물건을 싸게 들여오기 위해 정부의 묵인 아래 운용돼 왔다.

이번 조치로 사실상 전 재산을 날린 중국 상인들의 충격은 컸다. 자살하는 사람이 속출했지만 아직 해결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쇼우린(小林·가명) 씨는 러시아를 떠돌며 밀수 장사를 하는 중국 상인이다. 그는 수백만 위안어치의 물건을 러시아 경찰에 모두 빼았겼다. 몇 년 전 고향 친구들과 함께 러시안 드림을 이루기 위해 건너왔지만 지금은 악몽이 돼버렸다.

러시아 정부는 모스크바 내 밀수품이 거래되는 한 시장을 급습했고 20억달러에 달하는 밀수품을 모조리 압수해 버렸다.

수만 명의 중국 상인들이 일시에 갖고 있던 물건을 빼앗기고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된 것이다.

쇼우린은 자신의 잃어버린 물건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지만 허사였다. 쇼우린은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고 가명을 요구했다.

실명이 거론되면 압수된 물건을 되돌려받지 못할까 봐서다. 중국 저장(浙江)성 출신 상인 모임의 회장인 니지샹(倪吉祥) 씨는 “이번에 압수된 물건은 컨테이너 6000대에 달한다.

1대당 50만~100만달러에 해당하므로 계산상 최소 30억달러는 된다”며 밀수품이 20억달러에 달한다는 러시아 정부의 발표를 믿지 못했다.

니 회장은 “중국 상인들은 러시아에서 줄곧 밀수장사를 해왔지만 예전에 압수당했을 때와 비교하면 이번은 규모가 너무 크다”고 하소연했다.

중국 상인들은 현재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은 러시아 정부가 자신들의 제품을 압수하고 나서 다시 러시아 상인을 통해 슬그머니 시장에 내놓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다급해진 중국 정부는 일단 러시아 측에 통사정하며 양해를 구하고 있다. 사건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중국 측 잘못이 명백하기 때문에 시비가 붙었다간 혹을 떼내긴커녕 더 붙일 판이다.

친강(秦剛)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부간 대화로 풀어 나가자며 양국 간 무역거래는 공동의 이익인만큼 잘 해결돼야 한다고 자세를 굽혔다.

친 대변인은 기자회견을 갖고 “상인들의 밀수는 양국의 국경에서 예전부터 존재해 왔던 비공식 세관 절차에 따른 행위인만큼 신중하게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는 우선 중국 밀수 상인들에게 러시아 현행법을 따를 것을 엄중히 요구하고 있다.

아시아경제신문 김동환 베이징특파원 (donkim@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