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것은 하나도 없다. 어떤 위기든 일어날 수 있다.”

26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별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서영경 한은 금융통화위원이 발표하고 있다. 출처=한국은행
26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별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서영경 한은 금융통화위원이 발표하고 있다. 출처=한국은행

26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별관에서 ‘팬데믹 위기는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가?: 통화정책 경험과 과제’를 주제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서영경 한은 금융통화위원은 팬데믹이 남긴 교훈을 한마디로 정리했다.

서 위원은 1988년 한은에 입행해 경제연구원 국제경제연구실장, 국제국 국제연구팀장, 통화정책국 금융시장부장을 거쳐 한은 부총재보를 지냈다.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 대한상공회의소 지속성장이니셔티브(SGI) 원장으로 근무하다가 지난 2020년 4월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으로 합류했다.

다음 달 20일 4년의 임기를 마치는 서 위원은 “한은에 근무하며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등 두 번의 위기를 겪어봤기 때문에 한국 경제에 위기가 발생해도 잘 대응하고, 위기를 예방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을 통해 생각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그는 “팬데믹은 전례 없는 보건위기였던 데다 전쟁 등 다수 충격이 중첩됐기 때문에 통화 정책적 대응에 어려움이 컸다”고 부연했다.

서 위원은 재임 기간 한은 금통위의 통화 정책을 “팬데믹 위기와 뒤이은 인플레이션 충격이라는 전대미문의 상황에 대응해 물가 안정을 도모하면서 대내외 금융 안정을 달성하는 어려운 책무를 잘 수행했다”고 평가했다.

물가 안정을 위해 기준금리를 0.5%에서 3.5%로 빠르게 인상한 점과 지난 2022년 하반기 부동산 PF 시장을 중심으로 금융 불안이 확산하자 RP 매입, RP 대상 증권 확대 등을 통해 시장 안정화를 도모한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서 위원은 “통화 정책은 아직도 많은 난제를 안고 있다”며 “가파른 금리 인상과 공급망 회복에 힘입어 지난해 하반기 이후 인플레이션이 완화 국면에 접어들었지만 연이은 충격이 세계 경제에 가져온 후유증과 잠재 위험은 아직도 남아 있다”고 진단했다.

물가가 안정화되고 있으나 여전히 공급 충격 관련 불확실성이 높으며 민간 부채 취약 부문, 부동산 PF 등을 둘러싼 금융 상황도 안심할 수 없다는 게 서 위원의 설명이다. 물가와 가계부채의 상승률은 낮아졌으나 높아진 레벨(level) 효과로 민간의 실질 구매력이 약화하고 내수 회복이 지연될 가능성도 우려했다.

그는 “중장기적으로는 기술 변화, 저출산·고령화, 글로벌 공급망 변화, 기후변화 등 구조변화로 통화 정책 여건에도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면서 “앞으로도 거시 경제 상황은 물론 산업·고용 등 미시적 영역에 대한 연구도 강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

서 위원은 “통화 정책의 파급 경로 축소 등 여건 변화를 반영하는 동시에 대차대조표 정책, 거시 건전성 정책, 외환 정책 등 여타 보완적 정책을 적극 활용해 통화 정책의 유효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적절한 금리 인하 시점에 대해선 “답하기 어렵다”며 말을 아꼈다. 서 위원은 “금리 인하보다는 ‘정상화’라고 하고 싶다”며 “금리를 정상화(인하)하게 되면 내수 진작이라는 긍정적인 효과와 주택 가격을 자극해 가계 대출이 늘어날 수 있다는 부정적인 효과가 모두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는 “두 가지 방향을 잘 보면서 결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 위원은 “기준금리 인하가 가계대출이나 주택가격을 자극할 우려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가능성이) 크지는 않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 실질금리가 양(+)인 상황으로 긴축 국면이기 때문에 통화 정책 정상화가 금융 불균형을 초래하는 정도는 당장 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서 위원은 “금리가 하락할수록 금융 안정에 미치는 비선형적(여러 사건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 영향이 커질 수 있다”며 “경제 주체들의 금리 인하 기대가 과도하지 않도록 커뮤니케이션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3개월 단위 포워드 가이던스에 대해서는 시장 예측력과 반응도가 주요 선진국 수준이라고 본다며 “지금보다 시계를 확장하는 것이 경제의 기대 관리와 의사결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26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별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서영경 한은 금융통화위원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출처=한국은행
26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별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서영경 한은 금융통화위원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출처=한국은행

금통위원으로 지낸 4년을 돌아보며 비틀스의 노래 ‘The long and winding road’를 떠올렸다는 서 위원은 “큰 실수는 없었던 것 같지만, 구불구불하고, 끝이 안 보이는 마라톤을 뛴 것처럼 어려웠다”고 평가했다.

서 위원은 “마라톤을 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라스트 마일(last mile)에서는 결승점이 보이기 때문에 오히려 쉽다고 하는데 여전히 길이 울퉁불퉁하고 끝이 보이지 않아 어려움이 크다”며 “떠나는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다”고 했다.

금통위원 퇴임 후 계획에 대해서는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퇴직 후 3년 동안 취업 심사 대상이기 때문에 선택지가 많지 않다”며 “당분간은 쉬면서 앞으로의 진로를 고민해 볼 생각이다”라고 답했다.

금통위원으로서 가장 도전적이었던 결정으로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금리 인상을 시작했던 퍼스트 마일(first mile)”을 꼽았다. 서 위원은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상황 파악이 힘들었다”며 “물가 흐름이 계속될지 일시적일지, 금융 안정에는 얼마나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할지 판단이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기준금리를 0.5%포인트(p) 인상하며 두 번째 빅스텝을 단행했던 지난 2022년 10월 금통위도 “굉장히 어려웠던 결정”이라며 “당시 소수의견이 두 명이나 나올 만큼 금통위에서도 이견이 있었다”고 전했다.

차기 금통위원에 관해서는 “다양성 측면을 고려해 여성뿐 아니라 산업계에 몸담았던 분이 오시면 균형적인 의사결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금통위원뿐 아니라 한은 고위직에도 여성이 많아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서 위원은 “한은에 입행하는 직원의 40% 정도가 여성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고위직 (여성)이 자동으로 늘어나지는 않는다”며 “2~30대에 일과 가정을 어렵게 유지하다 보면 (임원이 될 나이인) 40대가 되면서 초반의 열정이 줄어드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그는 “여성 고위직이 많아지면 여성 직원이 이들을 롤모델로 여겨 일에 대한 열정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이런 의미에서 여성 금통위원의 수도 유지, 확대됐으면 좋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