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쿡 애플 CEO. 사진=연합뉴스
팀 쿡 애플 CEO. 사진=연합뉴스

미국·유럽연합(EU) 당국의 반독점 규제와 AI(인공지능)란 거대한 흐름에 애플의 성문이 흔들리고 있다. 

그동안 애플은 소프트웨어에서 하드웨어로 이어지는 하나의 거대한 생태계를 조성함으로써 자신들만의 왕국을 만들었으나, 최근 미국과 EU는 그 폐쇄성을 반독점 위반 행위로 규정했다. 

애플, AT&T처럼 분할?

26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미 법무부는 스마트폰 시장을 독점한 애플이 아이폰이라는 플랫폼을 이용해 “광범위하고 지속적인 불법 행위에 관여하고 있다”면서 소송을 제기했다. 애플 생태계가 아이폰 의존도를 높이고, 서비스 혁신을 저해했다는 게 미 법무부 판단이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빅테크들의 반독점 위반 제재에 적극적이다. 지난해 9월 미 연방거래위원회(FTC)는 아마존이 전자상거래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악용했다는 이유로 제소했다. 같은 해 1월 미 법무부는 구글이 디지털 광고 시장에서 지배력을 남용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애플의 소송 또한 이 같은 기조의 연장선으로 파악된다. 

미국 뿐만 아니라 EU도 애플을 정조준하고 나섰다. 25일(현지시간) EU는 빅테크 기업들의 시장 지배력 남용을 막기 위해 도입한 디지털시장법(DMA)의 첫 조사 대상으로 애플, 메타,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을 지목했다. 

이날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 EU 반독점 담당 집행위원과 티에리 브레통 내수담당 집행위원은 기자회견을 열고 “애플과 알파벳, 메타의 DMA 위반 여부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고 발표했다. 

위원회는 애플이 사용자가 기본 앱을 삭제하고 설정을 쉽게 변경할 수 있어야 한다는 DMA 조항을 위반했다고 보고 있다. 이에 대해 위원회는 애플이 운영체제인 iOS에서 기본 설정을 쉽게 변경할 수 있게 했는지, 소프트웨어 앱을 쉽게 제거할 수 있도록 했는지, 브라우저와 검색 엔진을 쉽게 선택할 수 있도록 했는지 등을 조사할 계획이다. 

미국과 EU의 이같은 강경한 조취에 시장에선 애플이 분할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984년 미국의 통신사 AT&T도 미국과 EU의 협공에 못 이겨 기업을 분할한 바 있다. 당시 최대 독점기업으로 여겨졌던 AT&T는 반독점 규제 당국의 공격을 받았고, 결국 7개의 독립회사로 분할됐다. 

다만 일각에선 각 국가의 이러한 조치에 대해 과도하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에서 30년 가까이 기술 분야를 취재하며 애플 심층 취재원으로 유명한 월트 모스버그는 애플을 독점 기업이라고 칭한 법무부의 주장에 우스꽝스럽다고 비판했다. 

모스버그는 애플의 시장 점유율이 미국에서 50%를 웃돌고 전세계적으로는 25% 미만 수준이라며 “마치 베스트셀러인 고가의 와인이 실제로는 전체 시장 점유율이 높지 않은데도 독점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법무부는 애플이 독점권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 시장에 대한 정의를 다시 해야한다”며 “소송의 핵심은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고 경쟁사와 같은 비즈니스 모델을 갖지 않은 애플의 철학에 관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덧붙였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자 마이크로소프트의 전 윈도 부문 사장인 스티븐 시노프스키 또한 “법무부가 지난 2019년 이전부터 빅테크 기업들의 행적을 쫓기 시작했다. 애플을 상대로 한 이 소송은 구성이 부실하며 잘 서비스되고 있는 것을 어떻게 규제해야 할지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며 해당 사건에 대해 불만을 표출했다. 

사용자 경험에 집중... LLM은 협업

반독점 규제가 외부에서 애플의 성문을 두드리고 있다면, AI는 애플 내부에서 성문을 풀어헤치고 있다. 

챗GPT를 시작으로 작년초부터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메타, 아마존과 같은 빅테크들은 경쟁적으로 AI모델과 서비스를 선보인 반면에 애플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 때문에 시장은 애플의 AI 개발 능력에 대해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고, 주가는 연일 하락세를 걷고 있다. 

이에 애플은 최근 한편의 논문을 게시하고 타사 AI 모델 도입 소식이 밝혀지며 AI에 대한 애플의 청사진이 드러나고 있다. 

애플은 지난주 ‘MM1-방법, 분석 및 멀티모달 LLM 사전 학습의 인사이트’라는 제목의 논문을 통해 MM1이라는 멀티모달 모델을 발표했다. MM1은 매개변수가 최대 300억개인 모델로 1000억개 이상인 LLM(Large language model, 대형언어모델)이 아닌 SLM(Small language model, 소형언어모델)으로 볼 수 있다. 

MM1은 이미지를 이해하고, 본 것을 기반으로 질문에 응답하며, 여러 이미지를 분석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데 강점을 갖고 있다. 또 눈에 띄는 점은 MM1의 매개변수가 최대 300억개에 불과하나 그 성능은 GPT4와 유사하다는 점이다. 

애플은 또 지금까지 30개가 넘는 AI 기업을 인수한 것으로 파악되며, 근래에 인수한 캐나다 AI 스타트업인 ‘다윈AI(DarwinAI)’는 더 작고 빠른 AI 시스템을 만드는데 강점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애플이 SLM에 집중하는 양상을 보이는 데에서 애플의 전략을 엿볼 수 있다. 팀 쿡 애플 CEO는 지난 1월 실적 발표에서 “애플은 소프트웨어 플랫폼에 생성형 AI를 통합하는 데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고 있다”고 밝혔다. 애플의 강점이 최상의 유저경험을 제공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애플은 이미 시중에 나온 애플의 생태계에 AI 모델을 접목시킴으로써 유저가 직접 피부에 와닿을 수 있는 혁신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 위해 아이폰, 아이패드, 맥북 등에 직접 탑재될 수 있는 소형언어모델 개발에 몰두하는 것으로 보이며, 아직 소형언어모델의 성능이 대형언어모델에 못 미치기 때문에 유저가 불편함 없이 AI 서비스를 경험하기 위해선 이 둘의 결합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애플은 구글 등 대형언어모델 부분에서 앞서고 있는 기업에게 손을 내민 것으로 보인다. 

시진핑 주석 면담에서 해법 나올까

한편 애플은 중국에서도 위협을 받는 중이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2024년 첫 6주 동안 애플의 스마트폰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무려 24%나 급감했다. 반면 애국 소비와 프리미엄 스마트폰으로 부활한 화웨이는 폭발적으로 64% 성장했다. 

팀 쿡 CEO는 이를 타개하기 위해 지난 22일 베이징에서 왕원타오 중국 상무부장을 만나 중국에 대한 투자를 약속했으며, 중국에서 판매하는 아이폰 등에 중국 빅테크 중 하나인 바이두의 AI 모델을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또 팀 쿡 CEO는 중국 베이징에서 중국발전고위급포럼에 참석한 뒤 오는 27일 시진핑 주석을 직접 만날 것으로 관측된다. 중국 경제 상황이 녹록치 않은 만큼 시 주석이 대외 개방과 외자 유치를 적극 확대하면서 애플이 활로를 모색할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