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법무부가 21일(현지시간) 애플에 칼을 빼들었다. 메릭 갈랜드 미 법무부 장관은 "애플의 지난해 970억달러 규모 순이익을 거뒀으며 이는 100개 이상 나라들의 GDP(국내총생산)를 넘어섰다"며 정식으로 반독점 소송에 나설 것이라 밝혔다. 오랫동안 준비한 회심의 일격이다.

구글에 이어 애플도 반독점 소송에 직면하며 미국 빅테크 업계 분위기는 뒤숭숭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 공정거래위원회가 추진하고 있는 플랫폼 경쟁촉진법(플랫폼법)에 의외의 불똥이 튈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와 눈길을 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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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박의 행간은?
미국 민주당은 전통적으로 실리콘밸리에 우호적이다. 그러나 2017년 당시 트럼프 대통령 당선 정국에서 SNS 등을 통한 가짜뉴스 논란이 문제가 되자 규제 필요성을 절감하며 공세로 돌아섰다. 실리콘밸리 입장에서는 중부 러스트 벨트의 지지를 받아 탄생한 공화당 트럼프 정부가 규제의 칼날을 휘두르며 이민 문제까지 들먹이는 상황에서 민주당과의 관계마저 얼어붙게 되는 최악의 상황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해도 분위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빅테크 저승사자' 리나 칸 미 FTC 위원장을 필두로 빅테크에 대한 압박을 키우더니 미 하원 보고서를 통해 빅테크 규제의 필요성을 국가 정책으로 채택, 4대 빅테크 청문회까지 열리며 마크 저커버그가 정장을 입고 출석하는 진풍경까지 벌어졌다. 빅테크 쪼개기를 줄기차게 주장했던 엘리자베스 워런의 '악몽'이다. 

상황은 더욱 험악해졌다. 생성형 AI 기술이 발전하며 플랫폼 규제에 대한 여론은 더욱 고조되는 한편 시장 독과점과 관련해 구글이 반독점 소송에 휘말려 순다 피차이가 법정에 서고 전직 독과점의 아이콘인 마이크로소프트의 사티아 나델라가 '구글 디스'를 하는 혼란한 상황이 전개됐다.

다만 그 이면에는 복잡한 고차 방정식이 깔려 있다. 

미국 정부가 빅테크에 대한 압박에 나서면서도 생성형 AI 기술에 대한 정책에 있어서는 일견 부드러운 점이 눈길을 끈다. 지난해 10월 바이든 행정부 주도로 AI를 위한 행정명령이 발표된 후 늦어도 5월 나올 미국 AI법은 규제보다 가이드 라인 설정에 방점이 찍힐 전망이기 때문이다. 빅테크 압박은 거세게 몰아치지만, 생성형 AI 기술 등을 키우는 입장에서는 적절한 '가능범위'를 알려주는 선에서 산업 진흥에 중심을 뒀다. 자신들이 ICT 패권을 쥔 상태에서 외부와의 경쟁에는 진흥, 내부에서는 규제에 주목하고 있다.

유럽도 비슷하다. 세계 최초 AI법을 채택하며 빅테크에 대한 강력한 압박을 내세웠으나 업계에서는 역내 ICT 자주권을 지키려는 '시간벌기'로 이해하는 중이다. AI법 등을 통해 역내로 진입하는 실리콘밸리 플랫폼들의 진격에 제동을 걸면서 역내 기업들에게는 오히려 보조금 등을 책정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나아가 구글, 애플, 아마존, 메타 등 실리콘밸리 기업들에게 역시 천문학적인 과징금을 먹이며 진격로를 틀어막고 있다.

유럽연합 디지털시장법(DMA)도 비슷한 결이다. 

사진=미 상공회의소
사진=미 상공회의소

한국 플랫폼법 영향 받나
미국과 유럽 모두 '남의 편을 막아내고 우리 편을 발전시킨다'는 전략을 가동하고 있다. 사실상 최종 목표며, 최근 벌어지고 있는 빅테크 압박도 이 최종 목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당장 미국과 유럽 모두 자신들의 ICT 체력이 갉아먹히는 것은 원하지 않고 오히려 발전하기를 바라고 있으며, 빅테크 압박은 이를 위한 수단 중 하나일 뿐이다.

빅테크 압박이 새롭고 역동적인 ICT 발전의 마중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MS의 경우 PC 시절 독과점 논란에 시달릴 당시 소위 OS와 브라우저 끼워팔기를 멈추자 새로운 소프트웨어들이 봇물처럼 터져나온 사례가 있다. 빅테크에 대한 압박은 곧 중소 스타트업에게 기회이자 시장의 새로운 국면을 끌어낼 수 있는 발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비대해진 플랫폼의 야만성을 조절하고 그 권력을 상당부분 분산시키면 새로운 혁신의 가능성이 열리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DMA가 발표되자 독일스타트업협회(GSA)가 적극적인 환영 입장을 밝힌 배경이다. GSA는 2022년 1월 15일 “DMA를 명백히 환영한다(expressly welcome(s) the DMA)"고 밝히면서 입법이 가져올 긍정적인 영향을 명확하게 제시한 바 있다. 빅테크에 대한 압박이 스타트업에게는 기회라는 인식이 있기에 가능하다. 

물론 빅테크에 대한 무조건적인 압박은 규모의 경제를 어렵게 만든다. 압박 일변도가 곧 혁신을 위한 새로운 계단을 무너트릴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현 상황에서는 조금 더 입체적인 시선으로 빅테크 압박의 단면을 조명할 필요는 있다.

한국의 플랫폼법도 비슷한 측면에서 고민할 필요가 있다. 우선 플랫폼법이 한국 및 외국 기업간 기울어진 운동장이 될 것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을 잃었다. 퀄컴이 한국에서 조단위 과징금을 얻어맞는 시대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플랫폼법을 반대하는 이들은 스타트업들이 무너질 것이라 걱정하지만, 이 역시 GSA의 분위기 등을 고려할 때 역시 새롭게 따져볼 여지가 많다.

일각에서는 통상 분쟁 걱정도 한다. 미국 상공회의소와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등이 플랫폼법을 반대하는 상황에서 이를 강행했을 때 미국과의 통상 분쟁이 벌어질 수 있다는 논리다. 한때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의 망 이용료 분쟁에서도 게임 체인저로 부상했던 메가톤급 이슈라 많은 이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다만 현재 암참의 분위기는 구글과 애플이 주도하고 있고, 이런 상황에서 다른 기업들은 전혀 다른 생각도 하고 있다. 강력한 플랫폼을 가진 구글과 애플이 여전히 큰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그 외 기업들은 플랫폼법의 등장으로 구글과 애플 제국로 쏠린 권력이 일부 해체된 후 새로운 국면이 펼쳐져야 한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사실 전반적인 분위기 자체가 어지럽다. 중국 기업과의 대결 등 염두에 두어야 할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암참에서 구글과 애플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커서 묻히는 경향이 있지만 다른 기업들은 이들 빅테크의 지나친 폐쇄성을 항상 문제로 본다"면서 "플랫폼에 대한 미국 기업 및 행정부의 입장은 의외로 다양하다"고 말했다. 플랫폼에 대한 입체적인 고민이 필요한 배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