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콘서트’라는 제목의 노래는 김태원이 작사 작곡한 곡을 리메이크하여 1989년 가수 이승철이 불렀다. “노래는 점점 흐르고 소녀는 울음 참지 못해/밖으로 나가 버리고 노래는 끝이 났지만/이젠 부르지 않으리/이 슬픈 노래” 그의 콘서트에 간 적이 있다. 중간에 울며 뛰쳐나가는 소녀는 없었지만, 그의 노래는 듣는 이에게 소름 돋는 감동을 주었다.

공연이나 콘서트는 그 연주로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사람이 해야 마땅하다. 유료라면 더더욱. 어느 직역도 마찬가지지만, 자기가 잘하는 분야를 통해 남에게 감동까지 줄 수 있으려면 진정한 고수여야 한다. 수술을 꽤 잘하는 손으로 새로운 삶을 선사하는 의사도 있고, 흘륭한 연주로 청중에게 감동을 선사하는 예술인도 있겠지만, 냉정하게 말하자면 그 실력과 감동의 크기에도 급수가 있을 것이다.

아마추어이면서 공연 무대에 서는 사람들도 있다. 본업이 따로 있지만 음악이나 무용으로 무대에 서는 대단한 사람들이다. 꽃다발 대신 좋은 와인이라도 챙겨 가서 축하해주곤 한다. 그런데, 그 아마추어들의 공연이 두 번째, 세 번째가 되면서 문득 잔망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공연은 원래 관객을 위한 것이다. 프로페셔널들의 공연은 관객에게 감동을 주고, 관객들은 기꺼이 돈을 지불한다. 반면에 아마추어들의 공연은 냉정하게 말하자면 사실 공연자 자신의 성취감이나 희열을 위한 것이다. 그 공연에서 관객들은 (대개는) 큰 감동을 받기 어렵다. (실수할까봐 보는 사람도 조마조마한) 아마추어의 공연에서 감동을 받는다면, 그 어려운 공연준비 과정을 본업과 함께 병행해서 무대에 올리기까지의 피나는 노력과, 멀티 플레이가 가능한 재능, 그리고 자기 개발의 노력과 관리에 대한 감동과 찬사이지, 그 공연의 예술성 자체로 감동받기는 어렵다. 음악 그 자체만 두고 보면, 음질이 좋은 스피커로 음원을 듣거나, 대가의 연주를 영상으로 보는 게 더 감동적일 수도 있다.

그런데, 무대에 한번 올랐던 아마추어들은 그게 마지막 콘서트가 아니다.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의 고통과 희열, 무대 위에서의 긴장과 행복감, 스포트라이트, 꽃다발, 축하세례와 찬사에는 중독성이 있는 듯하다. 어느 아마추어가 또 공연을 한다기에 짐짓 정색하는 표정으로 이렇게 농담을 했다. “마지막 콘서트야?”  

사실 나도 학생 때 매년 서울의대 합창단 정기 공연에 섰고, 친구와 가족을 초대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가족은 몰라도 친구들에게는 좀 미안하다. 공연에 감동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첫 번째 보러 와준 것은 우정이었다 치고, 그 다음부터는 괴로웠을테지. 작년에는 아크릴화 몇 점을 출품해 그룹 미술전시회를 하기도 했다. 몇몇 지인들을 초청했다. 좀 미안하긴 했지만, 단 한 명도 보러오지 않으면 좀 부끄러울 것 같아 몇 명은 불러야 했다. 

그래도 다른 점이 있다면, 미술 전시회는 다른 공연과는 달리 잠깐 들러서, 둘러보고 인사하고 혹은 사진 찍고 10분 만에 나갈 수 있다. 러닝타임이란 게 없으므로. 반면에 공연은, 초대한 출연자에게 눈도장을 찍으려면 반드시 끝날 때까지 그 공연을 봐야만 한다.

 *  *  *

고등학생 때였다. 시험은 거의 누구나 괴롭지만, 시험 날짜가 되면 은근히 설렜다. 학교에서는 설렁설렁 시간 때우고 장난만 치다가, 시험만은 유독 잘 보는 날 신기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옆 반 선생님이 보강을 와서 묻기도 했다. “넌 도대체 언제 공부 하냐? 학교 와서 놀고 집에 가서 밤새지?” 

공부할 땐 초집중했다. 시험 직전이었다. 옆자리 가까운 친구가 물었다. “야, 넌 시험 볼 때 안 떨리냐?” “하하, 아니, 전혀. 시험은, 말하자면...내겐 콘서트 같은 거야.” ‘재수없는’ 답변이었겠지만 언젠가부턴 실제로 그랬다.

시험이 콘서트가 되려면, 그게 쉽고, 즐겁고, 결과가 좋아야 한다.
성형수술도 마찬가지다. 수술이 쉽고, 즐겁고, 결과가 좋아야한다. 결과적으로 사람들이 기꺼이 돈을 지불할 만큼의 감동이 있어야 훌륭한 콘서트가 될 수 있다. 

‘마지막 콘서트’라는 제목으로 이 원고를 쓰는 중에, ‘나훈아, 마지막 콘서트 예고하며 은퇴시사’라는 기사가 떴다. 그는 "마이크를 내려놓는다는 것이 이렇게 용기가 필요할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며 "박수칠 때 떠나라는 쉽고 간단한 말의 깊은 진리의 뜻을 저는 따르고자 한다"고 편지에 썼다고 한다.

난 아직 떠날 수는 없다. 미련하게 혼자서 돌출입수술과 윤곽수술을 25년 동안 줄기차게 해왔고, 미국성형외과학술지(PRS)에 논문도 냈다. 그 일로 박수도 받고 축하 파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아직, 박수칠 때 떠날 수는 없다. 아직 세상에는 돌출입이 많고, 아직 성인이 되지 않았거나, 태어나지 않은(!) 돌출입도 있다. 돌출입만 빼고 이것저것 다 건드렸는데 성괴(성형괴물) 직전이 되었거나, 발치교정을 몇 년씩 했는데 돌출입 개선에 실패하고는 결국 날 찾아오는 안타까운 환자들도 있다. 얼마 전에는 20년 전 돌출입수술을 해준 환자의 딸이 17세가 되어서 엄마 손을 잡고 돌출입수술을 하러 왔다. 환자들로서는 자기가 받아야 할 수술을 가장 잘하는 의사에게 받고 싶은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모든 게 영원할 수 없다. 내가 평생 해온 돌출입수술이 매번 하나의 콘서트라면, 내게도 언젠가는 마지막 콘서트가 있을 것이다. 외과계의 대학교수들은 은퇴 전 마지막 수술을 마치면서 기념사진도 찍고 축하파티도 하겠지만, 방망이 깎는 장인처럼 압구정동 어디선가 소소하게 돌출입이나 얼굴뼈 윤곽 수술해온 필자에게는 별 거창한 세리머니도 파티도 없을 것 같다. 언젠가 만약 더 이상 수술을 못 할 이유가 생긴다면, 담담하거나, 서럽거나 이겠지.

그런데 며칠 전, 갑자기 훅 떠날 뻔 했다. 몇십 년 만에 만난 서울의대 합창단 후배들과 과음하고 집에 걸어가다가 제대로 넘어졌다. 아픈 줄도 모르고 일어나 집에 와 거울을 보니, 이마에 명랑 만화에나 나올법한 커다란 혹이 생겼다. 그러려니 하고 잤는데 아침에는 더 붓고 퍼렇게 멍이 들어 있다. 신경과, 신경외과 친구들의 권고대로 검사를 해보니, 다행히 CT상 뇌출혈이나 두개골 골절은 없었지만, 자칫 잘못하면 크게 다쳐 본의 아니게 최근에 집도한 수술이 마지막 콘서트가 될 뻔 했다. 다시 생각해보면 아찔한 일이다. 내 몸, 내 손이 건강해야 자연인으로서 원할 때쯤 마지막 콘서트를 하고 유유히 퇴장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이란 말은 참 슬프고 애틋하다. 그리고 피할 수 없이 운명적이다. 우리 모두는 예외 없이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으니까...나의 칼럼도 필연적으로 마지막이 올 것이다. 의학 분야에서도 ‘필수의료’가 아닌 성형외과, 또 그 중에서도 매우 지엽적인 ‘돌출입’수술에 얽힌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글로 엮어낼 기회와 공간을 주셔서 감사드린다. 그래도 돌출입을 가진 분들에게 ‘드라마틱’한 효과가 있는 수술이어서 글로 쓸 만한 ‘드라마’도 있었었다고 자평해본다.

 *  *  *

문득, 1년 전 돌출입 수술을 (약간 마지못해) 예약했다가 몇 번 미루고 결국 취소해버린 한 지인 생각이 난다. 그녀의 수술 포기는 “내가 수술할 정도예요?”라는 물음에서 시작한다. 사회경제적 지위가 훌륭한 그녀는 자존감이 매우 높다. 그녀의 주위에는, 그녀에게 (특히 외모에 관한) 직언을 해주는 사람이 없고, 늘 “멋지세요” “대단하세요” “아름다우세요”라는 이야기를 듣고 산다. 

그러니까, “입을 넣어야 아름다우세요.”라고 직언하는 성형외과 원장인 필자가 내심 미웠을 것이다. 결국 그녀의 자존심이, 수술을 해야만 예뻐질 정도의 외모라는 걸 인정하도록 허락하지 않았고, 수술을 포기했다. 물론 내 생각은 다르다. 그녀를 수술로 아름답게 만들어줄 수 없어 진심으로 안타깝다. 꽤 심한 돌출입을 가진 그녀가 딱 한 시간을 수술에 투자했다면, 그녀의 인생 제 2막은 더 빛이 날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녀뿐만 아니라 꽤 심한 돌출입인 줄 알면서도, 치아교정만 생각하거나, 돌출입수술을 아예 모르거나, 수술이 두렵거나, 수술만은 절대 하지 않겠다는 환자들이 아주 많다. 어떤 이유로든 이젠 메스를 놓겠다고 선언하는, 나의 마지막 콘서트 전에 만나 뵙길 바란다. 

시인 박목월에게 “선생님 대표작은 ‘나그네’지요?” 라고 물었더니, “아니, 나는 대표작을 오늘 저녁에 쓸 거다”라고 말씀하셨단다. 그간 모든 수술마다 열과 성을 다 했고 매순간 최선의 결과와 감동을 만들기 위해 영혼을 갈아 넣었다. 하지만 가장 멋진 돌출입수술은 오늘 할 것이다. 나의 콘서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