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는 타이밍이다. 물 들어올 때 노 젓기다. 기회가 왔을 때 사업을 적극적으로 밀어붙여야 최대의 이윤을 낼 수 있다.

방위산업과 특수선 업계도 마찬가지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이어진 국제적 안보위기는 국내 방산·특수선 업체들에게 기회로 다가왔다. 향후 수십조원 규모의 폴란드 오르카 프로젝트, 캐나다, 필리핀, 사우디 잠수함 사업, 필리핀 및 페루 호위함 사업 등 다양한 글로벌 수주전을 앞두고 있다. 정부와 산·학·연이 한마음 한뜻으로 수주 경쟁에 힘을 보태야만 한다.

하지만 국내 특수선 업계는 물이 차오름에도 엔진을 쉽게 돌리지 못하는 모양새다. 최근까지 업계를 골머리 썩게 했던 수출입은행법과 지체상금 문제부터 시작해, 한국형 차세대 구축함(KDDX) 수주를 둘러싼 HD현대중공업(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의 갈등 등 수많은 암초가 그들의 앞을 가로막아왔다. 정부가 나서 방위산업을 국가전략산업으로 키우겠다고 호언 장담했지만, 업계에서 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수십년간 해군과 방위사업청 등에서 근무한 ‘방산 전문가’ 문근식 한양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예비역 대령)을 19일 만났다. 문 교수는 한국 특수선 업계가 갈등을 원만히 봉합하고, 해외 수주 경쟁에서 승리해 국익을 실현할 방법을 열정적으로 제시했다.

다음은 문 교수와의 일문일답.

문근식 한양대 특임교수. 사진=박상준
문근식 한양대 특임교수. 사진=박상준

KDDX 입찰을 둘러싼 갈등이 소송전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어쩌다 이렇게 일이 커졌나

"관련 기관들의 정무적 판단이 일을 키웠다고 생각한다. 보안사고가 발생하면 즉각 수사를 통해 제재를 내려야 하지만, KDDX 기본설계 입찰 전까지 벌점 부과는 있어도 관련 수사가 없었다. 결국 보안사고를 일으킨 현대중공업에서 기본설계 우선협상대상자로 지정됐다. 개념설계를 수행했던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으로선 반발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대우조선선해양이 문제를 제기했으나, 현대중공업과의 인수합병을 앞둔 시기였기에 수사가 진전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있다. 이처럼 표면적으로 양사의 갈등이 봉합되는 것 같은 분위기에서 현대중공업에서 기본설계를 수행했지만, 대우조선해양이 한화로 인수 합병되면서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통상 방위산업에선 기본설계자가 초도물품 수의계약까지 체결하는 게 일반적이다. 다만 기본설계를 수행한 업체로 하여금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를 하게 하려면 관련 위원회를 통해 의결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그런데 이 경우는 기본설계를 수행한 업체가 계약 체결 후 군사기밀보호법 위반으로 형사처벌을 받은 경우다. 통상적인 경우처럼 위원회를 통해 수의계약으로 초도함 상세설계 및 함 건조까지 이어진다면 정무적인 판단인 것이다"#(각주 참조)

특수선 양강 체제의 경쟁 과열이 문제된 것인지

"경쟁 구도는 방산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라도 필요하다. 일본 잠수함의 경우 미쓰비시와 가와사키 중공업이 매년 정확하게 물량 배분을 하여 건조해 왔다. 이렇게 하면 업체에서는 별다른 경쟁이 필요 없어 편하지만 기술 혁신이 안 된다. 한국은 그동안 두 회사가 강하게 경쟁해왔기 때문에 후발주자이지만 잠수함 기술력은 일본을 능가하기 시작했다. 국내의 치열한 경쟁은 기술 혁신 선순환을 가져온다" 

"관건은 방위사업청이 얼마나 공정하게 사업관리를 해주느냐다. 일련의 보안사고도 명확한 수사 방침을 세워 빠른 수사와 패널티 부여가 뒷받침됐다면 깔끔하게 끝났을 문제다. 경쟁력 상실을 우려하며 특정 업체에 입찰 제한을 쉽게 부여하지 못하는데, 일단 입찰 제한을 부여하고 이를 감면해줄 수 있는 규정이나 별도의 위원회 등을 마련해 패널티를 경감해주면 된다" 

"반면 KDDX 사태의 경우 패널티를 경감해 준게 아니라 없던 일로 해버렸다는 점이 문제다. 보안사고 당사자가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이라도 처벌을 받든지 공식적인 사과를 통해 해결하고 경쟁력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방위사업청이 판단을 내렸어야 했다"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조감도. 사진=HD현대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조감도. 사진=HD현대

방위사업청의 사업관리 능력 쇄신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방위사업청이 사업관리를 통해 납기와 성능을 보장해야 하는데, 공무원적 사고가 강하다. 대표적으로 원가 절감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춘다. 방산 경쟁력을 높이려면 원가를 어느정도 보장해줘야 하는데, 원가를 깎으면서 저가 수주 경쟁을 시킨다. 방위산업은 다품종 소량생산이 보편적이다. 소량생산을 하더라도 적절한 이윤을 보장해줘야만 업체로서도 생산 의욕이 생긴다. 이제 기술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했기 때문에 방위사업법을 개정해 적정이윤을 보장하고 수출을 통해 국가에서 투자한 돈을 회수하면 된다"

"과도한 외주 용역의뢰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사업 타당성 검토, 선행 연구 등을 외주로 돌리는 경향이 있다. 책임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 지금처럼 어렵고 중요한 문제를 청에서 직접 해결하지 않고 외부용역 결과에만  의존한다면 방사청 직원 수를 절반으로 줄여도 된다고 생각한다. 직접 사업을 관리해야 외주비도 아끼고 투명성, 효율성도 올라간다"

지난해 하반기까지 이슈였던 지체상금 문제 역시 정부에서 업체들의 효율성과 사정을 고려하지 않아 불거진 문제 아닌가

"업체에서 납기를 준수하지 못한 정당한 사유(천재지변 등)가 있더라도 일단 지체 상금을 지불하고, 나중에 소송을 통해 되찾아야 하는 구조 자체가 문제였다. 지체상금을 되찾으려면 해당 회사에는 또 소송팀이 있어야 한다. 비용 손실이 이중으로 발생한다. 방위사업 역사가 50년인데 2023년에 와서야 규정이 완화됐다" 

"국방과학연구소와 군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 ‘퇴직 후 3년간 취업제한 규정’도 완화해야 한다. 전문가 인력난과 인재 해외유출 등 각종 부작용이 뒤따른다. 미국의 규정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퇴직 전 항공기 획득사업에 관여했던 전문가라도 퇴직 후 곧바로 록히드 마틴 등의 기업에 바로 입사할 수 있다. 자신이 담당했던 분야와 직결되지 않는 직군으로 취업하기만 하면 된다"

미국의 사례를 예시로 들었는데, 대한민국이 본격적으로 방산 수출강국의 반열에 올라선 만큼 방산 선진국의 수출전략을 벤치마킹할 필요도 있어 보인다.

"이미 국내 방산업계가 북한과 경쟁하던 시기는 지났다. 앞으로는 수출이 방산업계를 견인할 것이다. 내수로는 한계가 있다. 군과 방위사업체가 군산복합체로서 상호의존·기능하는 미국은 세계 방산 1위 자리를 수출로 유지한다. 타국의 전쟁이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

"지금 대한민국의 상황도 비슷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시작으로 기회가 열렸다. EU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가맹국 국방비를 GDP의 2%이상 일괄적으로 올리고 있다. 폴란드는 3~5%를 올리는 중이다. 이런 흐름에 편승해 수출을 확대해야 한다. 최근 수출입은행법 개정안이 계류 위기에 놓였다가 막바지에 통과된 사례처럼 업계와 정부가 반대 노선을 타선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 미국처럼 정부와 국과연, 방사청이 전폭 지원하고 업체는 양질의 제품을 생산하는 형태로 거듭나야 한다"

대한민국 방산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방위산업을 국가 전략사업으로 선정한 것은 매우 잘한 일이다. 정부는 국가전략사업에 걸맞게 올인해서 업계를 도울 의무가 있다. 또한 방위사업청은 공정하고 효율적인 사업관리에 집중해야 한다. 지금처럼 수천억대 지체상금이 쌓이고 기업간 소송이 난발한다면 과거처럼 조달기능만 수행하고 사업관리는 각 군으로 되돌려야 한다는 말이 나올 수 밖에 없다"

구승모 한화오션 컴플라이언스실 변호사가 5일 기자회견에서 발표하고 있다. 사진=박상준
구승모 한화오션 컴플라이언스실 변호사가 5일 기자회견에서 발표하고 있다. 사진=박상준

#각주- 현대중공업은 지난 2012년~2015년 소속 직원들이 수차례 방위사업청, 해군본부 등을 방문해 KDDX 개념설계보고서 등 군사기밀을 불법 탈취하고, 비밀서버에 업로드해 광범위하게 공유하면서 입찰 참가를 위한 사업제안서 작성 등에 활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해당 자료는 대우조선해양이 연구한 선행연구자료로 밝혀졌다.

2020년 기본설계 우선협상대상자에는 현대중공업이 선정됐다. 대우조선해양은 2020년 현대중공업의 기본사업자 청구 신청이 부당하다며 가처분 신청서를 냈으나 기각당했다. 지난 2월까지 이어진 방위사업청 계약심의위에서도 행정지도 처분이 내려지며 현대중공업은 향후 입찰을 제한받지 않게 됐다. 이에 한화오션은 지난 3월 4일 현대중공업의 임원 개입 정황 수사를 요구하며 국수본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문근식 교수 약력

  • 1977 ~ 1981 해군사관학교 전기공학 학사 (35기)

  • 2004 해군본부 핵추진 잠수함 사업단장

  • 2007 방위사업청 잠수함 사업팀장

  • 2009 ~ 2012 주 독일 잠수함 사업관리실장

  • 2012 예편(해군 대령)

  • 2014 ~ 2014 국방과학연구소 전문연구위원

  • 2020 ~ 2023 경기대학교 정치전문대학원 교수

  • 2024.3 ~  한양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