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3월 18일 은행연합회에서 은행장들과 회동하기 위해 만찬 장소에 입장하고 있다. 사진 = 강예슬 기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3월 18일 은행연합회에서 은행장들과 회동하기 위해 만찬 장소에 입장하고 있다. 사진 = 강예슬 기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8일 국내 주요 은행장들과 만났다. 당초 금융권 안팎에선  이번 회동에서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자율배상 등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이복현 금감원장은 회동 후 기자의 질문에 "홍콩 ELS 관련 대화 자체를 하지 않았다"고 말하며 추가 설명은 하지 않았다. 이 원장에 이어 모임 장소에서 나온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도 "요즘 현안인 PF(프로젝트파이낸싱) 관련 대화도 하지 않았다"며 "은행의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다.

이날 오후 6시 열린 은행연합회 이사회와 정례회의 겸 비공개 만찬은 정기적 모임이다. 은행연합회는 매달 넷째주 월요일에 이사회를 개최한다.

은행연합회 이사회는 조용병 은행연합회장과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과 산업·기업은행, SC제일·한국씨티은행, 광주은행, 케이뱅크 등 11개 은행장들로 구성돼 있다. 당국에서는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번갈아가며 만찬에 참석한다. 

다만, 홍콩ELS 금감원의 홍콩 ELS 분쟁 조정 기준안이 나온 이후 일주일 만에 열리는 자리인 만큼 홍콩 ELS 자율배상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오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날 손실 피해를 호소하는 홍콩 ELS 상품 가입자들도 은행연합회 정문앞에서 피켓을 들고 시위를 했다. 경찰병력들이 은행연합회 입구를 막으며 홍콩ELS 가입자들이 은행연합회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차단했다. 

양정숙 개혁신당 국회의원들도 피해자들과 함께 섰다. 홍콩 ELS 판매의 불법적 부분이 있다는 점, 이에 따라 금감원의 배상 발표를 원점화 하고 재논의 해야할 필요성, 불법 판매가 검사 결과 나온 만큼 원금 보장 및 손실에 대한 적절 배상, 재발 방지 등이다.

홍콩ELS 가입자들과 함께 선 양정숙 개혁신당 국회의원. 사진 = 강예슬 기자.
홍콩ELS 가입자들과 함께 선 양정숙 개혁신당 국회의원. 사진 = 강예슬 기자.

양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고 "은행권의 불법적이고 무책임한 ELS 상품의 불완전판매로 인해, 평생 피땀 흘려 모은 생존권과 직결된 자금을 잃을 처지에 놓여 있으며 금감원의 검사 아래 금소법과 자본시장법의 위반이 확인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 일동은 단 한번도 금감원과 홍콩지수ELS 피해 배상에 관한 소통 과정을 논한 적이 없기에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이러한 배상 결과를 발표하였는지 과연 금번 배상 발표가 홍콩지수ELS 피해자 일동에게 수렴할 수 있는 부분인지 묻지 않을 수가 없어 기자회견을 진행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양 의원은 "금융당국과 은행연합회에 묻고 싶다"라며 "금소법과 자본시장법의 근간에 있는 홍콩지수ELS의 판매 방법의 위반은 무엇이며 그로 인한 피해 보상 대책의 인과적 관계는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나"라고 했다.  

은행연합회 정례회의를 마치고 만찬장소로 이동하는 조용병 은행연합회장. 사진 = 강예슬 기자.
은행연합회 정례회의를 마치고 만찬장소로 이동하는 조용병 은행연합회장. 사진 = 강예슬 기자.

앞서 금감원은 지난 11일 홍콩 ELS 분쟁 조정 기준안에서 기본배상비율 및 공통배상비율을 판매사의 적합성 원칙, 설명의무, 부당권유 금지 등 판매원칙 위반 여부에 따라 23~50%로 정했다.

여기에 판매사 가중치(3~10%), 투자자 요소 ±45%포인트, 조정요인 ±10%포인트 등 가·감산 요소를 반영키로 했다.

이 원장은 지난 13일 홍콩ELS  개인 가입자들과의 열린 토론 후 취재진과 만나 "대규모 금융소비자 피해 사태가 발생 시 개별적으로 금융사를 상대로 소송하면, 비용이나 시간 노력, 정보 비대칭 측면에서 어렵기 때문에 당국이 불가피하게 책임 분담안을 마련한 것"이라며 소송을 통한 장기전으로 가는 것에 우려를 표명했다.

은행이 선제적인 자율배상에 나서면 배임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단 주장과 관련해선 "분쟁조정기준안을 법원이 적용하는 기준에 준해 마련했다는 점은 법률적 근거에 따른 것이고, 소비자와 책임을 분담하는 방안이 개별 금융사 배임 이슈에 연결된다는 점은 조금 먼 이야기"라며 판매사에도 적극적으로 자율배상에 나서줄 것을 요구했다.

이날 은행연합회 이사회와 정례회의 겸 비공개 만찬에 참석한 은행장들은 대부분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고 입장했다.

은행연합회 정문 앞에 차를 주차하던 평소와 달리 지하 주차장에 주차후 바로 엘리베이터를 이용했다. 피해를 호소하는 홍콩ELS 가입자들이 모여 있는 정문을 가급적 피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기자들의 질문에도 침묵했다.  

앞서 조용병 은행연합회장은 지난 11일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은행에서 어느 상품을 파느냐 마느냐 보다 시스템을 갖춰서 고객의 자산관리 선택권을 줘야하고, 부족한 부분은 보완해서 고객의 선택권이 좁아지지 않게 해야 할 것"이라며 고위험 상품 판매 전면금지에 대해 선을 그은 바 있다. 조 회장은 이복현 원장과 회동하는 이날 모임에 입장하면서는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비공개로 진행된 이복현 원장과 은행장들의 만찬이 시작되기 전에는 이 원장이 악수를 청하며 다소 부드러운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었다.

홍콩ELS 사안을 이야기한다 하더라도 만찬 장소인 만큼 구지 경직된 분위기로 대화를 시작할 필요는 없었을 것으로 보였다.

다만 약 2시간 동안 이어진 만찬에서 현안에 대한 보다 심도 있는 대화를 이어갈 필요성이 큰 상황으로 판단됐다.

18일 은행장들과 모임을 갖고 돌아가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사진=강예슬 기자.
18일 은행장들과 모임을 갖고 돌아가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사진=강예슬 기자.

회동을 마치고 나온 이 원장이 "ELS 관련 대화 자체를 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에 대해 "설마 진짜 대화를 하지 않았겠나"라는 취재진들의 의구심 섞인 반응들이 나왔다.

일단은 비공개 회동이라는 점에서 이날 대화의 구체적 내용이 알려지기까진 다소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