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MM의 2만4000TEU급 컨테이너선 '그단스크호'. 사진=HMM.
HMM의 2만4000TEU급 컨테이너선 '그단스크호'. 사진=HMM.

국제 물류에 훈풍이 불고 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이후 수에즈 운하 일시 폐쇄로 촉발된 국제적 해상 운임 폭등 현상이 점차 사그러드는 분위기다. 대표적 운임지수인 SCFI(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도 지난 2월 2일 최고점인 2217포인트를 기록한 후 18일 기준 1772포인트까지 내려오며 국제적 물류 대란도 머지않아 해소되리란 기대감이 싹튼다.

반면 시장 상황은 다르다. 특히 지난해를 시작으로 신조선들이 바다에 대거 풀리고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조선해운 시황 전문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전체 선복량은 2023년과 2024년에 걸쳐 15%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지난 코로나 19 팬데믹 시기 글로벌 선박 부족과 운임 폭등으로 수혜를 입은 선사들은 신조선을 대거 발주했고, 해당 물량들이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선사에 인도되며 시장 포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문제는 신조선 공급 증가가 단기에 그치지 않고 향후 2025~2026년까지 꾸준히 이어지리란 전망에 있다. 선박 공급 과잉이 길어지며 선사들은 당면한 수에즈 리스크 해소를 넘어 국제적 경쟁 과열을 동반한 해상 운임 하락을 대비해야 한다는 평가다.

국내 최대선사 HMM도 마찬가지다. 예견된 치킨게임에 대비해야 한다.

HMM은 올해에만 1만3000TEU(1TEU=6m 길이 컨테이너 1개)급 초대형 컨테이너선 12척을 인도받을 예정이다. 해당 물량과 여타 선박들까지 인도받으면, 2023년말 기준 80만7719TEU(71척)이던 HMM의 컨테이너 선복량은 올해 말엔 100만TEU를 상회할 수 있을 것으로 점쳐진다.

초대형선 위주 선대 꾸린 HMM

HMM은 그간 초대형선박 위주 발주와 운용으로 ‘규모의 경제’를 착실히 수행해 왔다. 전체 선복량 약 80만TEU 중 1만TEU 이상 초대형선의 비중이 약 62만7000TEU로 80%에 근접한다. 그 중 2만TEU를 상회하는 최대 규모 선박만 28만6000TEU로, 약 45%에 달한다. 

초대형선박은 중소형선박과 비교했을 때 원가 대비 매출 비율이 높고, 연료 효율도 우수한 편이다. 나아가 적은 선박으로도 많은 화물을 운송할 수 있어 운항 일정 관리도 용이하다. 선박 적취율을 소화할 물동량만 받쳐준다면 가장 효과적인 선종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문제는 HMM의 초대형선 위주 운항이 선박 공급 과잉과 국제적 물동량 하락이 현재의 예견된 상황에서는 리스크라는 점이다. 대형 선박인 만큼 항차마다 일정 이상의 화물을 실어 날라야 하는데, 경쟁 과열과 무역 경색으로 인하 예년처럼 쉽지 않다.

구교훈 한국국제물류사협회장은 “기존 1만8000TEU 선대를 대거 운용하던 덴마크 머스크 라인은, 근래 가장 먼저 컨테이너선 선형을 축소하며 적정 크기 선대 운용으로 소석률(화물 적재율)을 유지하고 있다”며 “해운 시황 호황기에는 규모의 경제 선봉장 역할을 해준 2만4000TEU급 초대형 컨테이너선이 시황 침체기나 불황기에는 되레 소석률을 유지하기 힘든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향후 시황을 고려하면 2만4000TEU급 선박보다 1만3000~1만5000TEU급 선박을 확충하는 게 영업 리스크도 적고 소석률 손실도 적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실제로 2023년 4분기 기준 HMM의 화물 적취율은 66.5%다. 호황기의 막바지였던 2022년 4분기 72.2%에 비해 다소 줄어든 모습을 보인다.

2023년말 기준 HMM 선대 현황. 사진=HMM
2023년말 기준 HMM 선대 현황. 사진=HMM

초대형선만의 강점 여전…속단 일러

예견된 불황기에도 여전히 초대형선박만의 강점을 활용할 수 있다는 의견도 많다. 대형선 운용사에게 불리한 시황이면 이미 중소형선 위주 운용사는 상당한 타격을 입은 뒤라는 뜻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대형선은 기본적으로 효율이 좋다. 원가 경쟁력을 바탕으로 장기 계약 체결에도 유리한 데다, 중소형선 대비 원양항해에 압도적으로 유리하다”고 말했다. HMM은 원양선사다.

그는 “대형선 전망이 불투명하다고 해서 1만TEU 규모 컨테이너선 10척을 5000TEU 20척으로 바꿔 운용하면 사정이 나아질 것이란 예측은 단편적”이라고 지적했다. 중소형선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취율 확보에는 어려움을 겪지만, 원가 경쟁력과 원양 운항능력을 바탕으로 강점을 충분히 어필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지난 2017년 한진해운 파산 당시에도 이러한 우려가 제기됐다. 한진해운이 파산하자 정부는 해양진흥공사를 중심으로 국고를 지원해 HMM 선대에 2만4000TEU급 선박을 대거 투입했는데, 당시 초대형 선대의 ‘적취율’과 ‘효율성’을 두고 논란이 일었던 바 있다.

결과적으로 HMM은 불황기를 이겨내고 2022년 호황을 맞이해 초대형 선대를 십분 활용해 역대급 매출을 거뒀다. 이처럼 해운 시황 예측이 쉽지 않은 만큼, 지나친 우려와 속단은 금물일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건 내실 다지기다. 어떤 선종을 운용하더라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체급’을 갖춰야만 한다.

다행히 HMM은 특히 사선과 용선 비율이 상당히 건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선은 선사가 직접 소유하고 운용하는 선박이고, 용선은 선주로부터 빌려 사용하는 선박이다. 사선 비율이 지나치게 높으면 선박 원가 부담이 가중되고, 반대로 용선 비율이 너무 높으면 고정 지출이 상승하고 불황이나 지정학적 리스크 등의 이슈에 유기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업계에서는 통상적으로 사선 6과 용선 4의 비율을 이상적으로 여긴다.

HMM의 사선 용선 비율은 2023년 말 기준 68%가량으로, 이를 바탕으로 꾸준히 흑자를 내고 있다. 이런 탄탄한 비율을 바탕으로 예견된 불황도 유연히 대처할 수 있으리란 기대가 있다.

해운업계에 들이닥친 각종 환경 규제에도 유연히 대응 중이다. 지난해 2월에는 9000TEU의 중형급 메탄올 추진 컨테이너선을 9척 발주하며 본격적으로 친환경 선대 확보에 나섰다. 동시에 보유 중인 초대형선박의 효율적인 연료 소모량을 바탕으로 저속운항, 탄소 저감 솔루션 시행, 스크러버(탈황장치) 설치 등 선제적 조치를 취하고 있다.

HMM 관계자는 “근래 인도받은 2만4000TEU급 선박들은 최신 스마트쉽으로, 선박 운항 빅데이터를 분석해 운항 효율과 오염물질 저감 효과를 극대화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