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인도네시아 공장. 사진=현대차그룹
현대차 인도네시아 공장. 사진=현대차그룹

미국 의회가 자국 전기차 시장에서 몸집을 키우는 현대차·기아 견제에 나섰다. 지난해 테슬라에 이어 미국 전기차 시장 판매량 2위를 기록한 현대차·기아가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예외 규정을 통해 보조금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자국 보호 정책이 점차 강화되고 있는 가운데 현대차·기아는 현지 생산량을 늘리는 등 적극적인 활로 구축에 나섰다.

IRA 피해간 ‘리스’ 전기차…현대차·기아 리스 비율 급증해

지난 2022년 8월 미국은 자국의 자동차 산업 보호를 골자로 하는 IRA 법안을 발효한 바 있다. 북미에서 생산한 전기차 중에서 핵심 광물 및 배터리 부품 요건을 충족해야만 최대 7500달러(약 1000만원)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이 골자다.

다만 미 내부에서 IRA 취지가 다소 퇴색되고 있다는 비판은 꾸준히 나왔다. ‘미국 우선 비즈니스’를 끌어내려는 IRA의 미비점을 공략하는 이들이 많다는 지적이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 분야에서는 미국 의회조사국(CRS)이 나섰다. CRS는 지난 17일 ‘리스 전기차에 대한 세액 공제 예외 보고서’를 통해 현대차그룹이 IRA 리스 제외 규정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전기차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리스 등 상업용 판매 전기차에는 예외적으로 보조금을 지급하는 규정이 IRA 통제를 벗어나는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설명이다. 

CRS는 허술한 예외 조건으로 인해 IRA 보조금 지급에 ‘틈’이 발생했다는 입장이다. 미국에서 판매하는 모든 전기차를 한국에서 수출하던 현대차가 ‘상업용 전기차 시장’ 조항을 통해 원래라면 받을 수 없는 보조금을 받았다는 것이다.

IRA 시행 당시 전기차 판매에 제동이 걸리자 한국 정부와 현대차그룹은 상업용 전기차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달라고 요청했고, 미국 재무부는 이를 받아들였다. 이에 미국 재무부는 상업용 전기차를 ‘납세자가 재판매가 아닌 직접 사용 또는 리스를 위해 구매한 차량’으로 정의하고 예외의 사례에 보조금을 적용했다.

CRS는 이 지점이 문제라고 봤다. CRS는 보고서를 통해 “해당 예외 적용 범위가 (리스를 제외하고) 화물 운송 등 통상적인 업무에 쓰이는 차량으로 한정됐으면 기존 보조금 요건과 충돌 소지가 없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예외 규정이 엄격하지 않아 보조금 지급 대상이 아닌 리스 전기차도 수혜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자동차 딜러들이 리스 차량에 보조금을 신청하고, 고객에게 저렴한 값으로 이관하는 영업 활동도 지적했다. CRS는 “현대차가 북미에서 만들어지지 않은 아이오닉 5 리스 고객들에게 7500달러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고 광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CRS가 현대차를 특정으로 지목해 보고서를 작성한 배경을 두고는 의견이 분분하다. 다만 업계에서는 미국 정부가 2023년 기록적인 실적을 기록한 현대차그룹을 견제하고 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지난해 현대차그룹은 미국 시장에서 총 9만4000대의 전기차를 인도하며, 1위 테슬라(65만4888대)를 이어 미국 전기차 판매량 2위에 올랐다. IRA 예외 규정을 활용한 결과다. 실제로 2022년 IRA 실행 이전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리스 비중은 5%에 불과했으나 현재는 40%를 넘어섰다. 

미국 전기차 시장 전체에서도 리스 비중의 증가는 두드러진다. 자동차 정보 사이트 에드먼즈는 예외 규정을 적용한 이후 미국 전기차 리스 비중이 2022년 12월 9.7%에서 2023년 3월 34.3%로 증가했다고 밝혔다. 월스트리트저널 또한 지난해 미국 전기차 리스 비중이 최근 3년 중 최대인 59%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IRA 제정을 주도한 조 맨친 상원의원은 리스 차량 보조금 지금에 관해 “재무부가 상업용 및 소비자용 전기차 세액공제 시행과 관련해 공개한 정보는 법의 허점을 노리는 기업들의 요구를 들어준 것으로 법의 취지와 확실히 어긋난다”고 비판했다. 본래 취지에 맞게 IRA 제도를 운영하려면 ‘리스’라는 예외 규정을 삭제하고, 순수하게 북미에서 생산한 차량에만 보조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칩스법’이 생각나는 이유…답은 결국 美 생산

이러한 강경 조치는 반도체 업계에 적용되는 칩스법(CHIPS Act)과 유사하다. 미국이 2022년 만든 칩스법은 반도체 제조 기업들이 해외에서 생산하던 칩을 미국 내 공장에서 생산할 경우 정부의 보조금을 지원하는 정책이다. 대규모 보조금을 통해 반도체 제조 기업들의 미국 이전을 촉진, 장려하겠다는 것이다.바이든 행정부는 반도체 보조금과 R&D 비용을 포함해 총 527억달러를 기업들에게 지원한다.

삼성전자의 경우 이러한 미국의 반도체 생산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텍사스 테일러시에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공장을 짓고 있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에 지급되는 반도체 지원금이 많아야 20억~30억달러 수준일 것으로 예상했으나, 삼성전자가 미국 공장 설립에 추가 투자 의사를 보이면서 미국 정부가 60억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할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차·기아도 점차 까다로워지는 미국의 보조금 규제를 충족하기 위해 현지에 직접 공장을 짓고, 생산 거점을 마련한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10월 미국 조지아주에서 전기차 전용 공장인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완공을 앞두고 있다. HMGMA는 연간 30만대의 전기차를 생산할 수 있으며, 50만대까지 규모를 키울 수 있다. 현대차 협력사 중 한 곳인 ‘세원’도 HMGMA 가동 시기에 맞춰 전기차 부품을 납품하기 위해 미국 에핑햄 카운티 린콘시 그랜드 뷰 산업 단지에 전기차 부품 공장을 짓고 있다. 

‘리스의 벽’에 부딪힌 현대차·기아지만, 올해 10월 HMGMA 완공 이후에는 IRA 조건을 온전히 충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호세 무뇨스 현대차 글로벌 최고운영책임자(COO) 또한 “(HMGMA) 공장에서 제작된 전기차는 7500달러 수준의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