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형진 영풍그룹 고문(왼쪽)과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사진=각 사
장형진 영풍그룹 고문(왼쪽)과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사진=각 사

국내 최대 비철금속업체 고려아연을 둘러싼 영풍과 고려아연측의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보기에 따라 '두 가문'의 감정 싸움으로 비화할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양측은 오는 19일 고려아연 주주총회에서 현금 배당과 제3자 유상증자 허용안 정관 변경을 놓고 본격적으로 맞붙을 것으로 보인다.

“배당 더” vs “이미 많아”

고려아연은 지난달 19일 공시를 통해 주당 5000원 기말 배당을 결정했으나, 고려아연의 대주주인 영풍은 강하게 반발한 바 있다.

영풍은 “지난해 6월 중간 배당으로 1주당 1만원을 배당한 바 있으며 중간 배당과 결산 배당을 합산하면 제50기(2023년) 주당 현금배당금은 1주당 총 1만5000원으로, 이는 전기 현금배당금 2만원에 비해 5000원 감소한 것”이라며 “현재 7조3000억원 상당의 배당가능 이익잉여금이 있으며 1조5000억원의 현금성자산을 보유하는 등 자금 여력이 충분한 상태에서 주당 기말 배당금을 중간 배당금보다 줄이면 주주들의 실망이 크고 주주들이 회사의 미래에 대해 불안감을 느껴 주가가 더욱 하락할 위험이 있다”고 반발했다.

그 연장선에서 영풍은 고려아연측에 주당 1만원 배당을 요구하고 나섰다.

고려아연도 즉각 반론을 내놨다. 고려아연은 “당사는 이미 다른 철강 및 비철금속업체 대비 높은 배당성향과 주주환원율을 유지해오고 있었고, 1000억원의 자사주 취득 및 소각 결정을 내리며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꾸준히 노력했다”며 “지난해 아연가격 하락과 전기료 인상 등으로 연결기준 매출액 및 당기순이익이 2022년 대비 각각 13.5%, 33.2%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배당정책을 따르기 위해 1주당 5000원의 기말배당안을 이사회에서 승인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고려아연의 지난해 배당성향은 57.4%로, 지난해 2월 고려아연이 발표한 ‘향후 3년간 배당성향 30% 이상 유지’ 정책을 대폭 상회했다. 자사주 소각과 배당정책을 통해 주주환원율 역시 창사 이래 가장 높은 수준인 76.3%를 기록했다는 게 고려아연의 주장이다. 영풍의 지난 5년간 주주환원율은 10% 수준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은근한 디스'로도 보여진다.

이어 고려아연은 “영풍측이 주장한 주당 1만원 배당은 배당성향 77.1%에 해당한다”며 “자사주 소각을 포함하면 주주환원율이 96%에 육박하며, 이는 향후 신성장동력 발굴과 투자 재원 확보에 차질을 줄 수 있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지난 10년간 대한민국 평균 배당성향은 약 26% 가량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관 변경은 주주가치 하락” vs “단순 문구 수정일뿐”

양사는 정관 변경에 대해서도 부딪혔다.

고려아연은 이번 주주총회에서 400억원 이내 제한적 범위에서 외국인 합작법인에게 신주 인수권을 부여한 정관을 삭제할 예정이다. 기존 정관에서는 경영상 필요로 3자 배정 유상증자 시 ‘외국의 합작법인’에게만 제한된 금액 내에서 신주를 발행할 수 있었다. 주주 핵심 권리인 신주 인수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영풍 관계자는 “신주인수권에 대한 제한을 풀어 기존주주를 포함한 3자에게 신주인수권을 임의적으로 부여할 수 있도록 정관을 개정하는 것은 전체 주주이익에 반하는 것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특정 일부 주주들에게 이익이 돌아가게 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고려아연은 “신기술의 도입 등 경영상 목적 달성을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한해 3자배정을 할 수 있도록 문구를 명확히 하는 등의 변경”이라며 “3자배정에 따른 신주 발행한도(400억원)를 기존과 동일하게 유지하는 등 그 내용의 실질적인 변경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황금알 낳는 거위’ 고려아연을 잡아라

고려아연은 영풍그룹의 핵심 계열사로, 고(故) 장병희·최기호 영풍그룹 공동 창업주가 설립한 이래 최씨 일가가 경영을 맡아왔으며 영풍그룹과 전자계열사는 장씨일가가 담당했다.

양 집안은 지난 70년간 ‘한 지붕 두 가족’ 체제를 이어오며 무난한 관계를 유지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상황이 변했다. 최윤범 고려아연 현 회장이 취임한 후 서로의 지분을 사들이며 싸움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먼저 영풍그룹 입장에서 고려아연은 포기할 수 없는 카드다.

고려아연이 영풍그룹의 핵심 캐시카우로 꼽히기 때문이다. 2021년 영업이익 1조원을 돌파한 이후로 3년 연속 90조원 이상의 매출액을 거둬들이고 있다. 지난해 제조업계 전반에 닥친 불황에도 불구하고 영업이익률 6.80%라는 견실한 실적을 기록했다. 올해는 잠정 7.55% 수준의 영업이익률, 100조원의 매출액을 달성할 것으로 예견되는 만큼, 전망도 밝은 편이다.

근래 경영과 사업확장도 공격적으로 이어오고 있다. 2033년까지 신재생에너지에 8조3000억원, 이차전지 소재에 2조1000억원, 자원순환에 1조5000억원의 설비투자를 추진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지난 6일부터 8일까지는 ‘2024 인터배터리’에 참가하며 이차전지 소재 밸류체인을 대대적으로 어필하기도 했다.

당장 고려아연으로부터 받는 배당금만 연간 1000억원이 넘는다. 그 연장선에서 영풍은 공격적인 기세로 고려아연 지분 매입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에만 계열사 씨케이를 비롯해 에이치씨, 시네틱스, 영풍전자 등을 동원해 총 1950억원 규모의 고려아연 지분을 사들인 바 있다.

고려아연도 반격하고 있다. 기초체력을 키우며 존재감 확보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역시 지난해부터 세계경제포럼에 정식으로 가입, 다보스포럼에 참석해 적극적으로 브랜드 홍보와 네트워킹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9월에는 국제에너지기구의 ‘핵심 광물 및 청정에너지 서밋’에 국내 기업인중 유일하게 초청되기도 하는 등 연일 주가를 올리고 있다.

다만 고려아연의 파상공세를 막기에는 다소 힘이 부치다는 평가다. 영풍이 고려아연에서 받는 연 1000억원의 배당금 등을 포함한 풍부한 자금력으로 지분을 사들이고 있으나, 고려아연은 '총알'이 다소 부족하기 때문이다. 공격적인 신시장 진출 등으로 출혈이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최씨 가문이 종친회까지 동원해 영풍의 공습을 막으려 안간힘을 내고 있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런 가운데 고려아연의 플랜B도 눈길을 끈다.

고려아연은 지난 2022년부터 한화, 현대차그룹, LG화학의 해외법인 등에게 유상증자를 통해 지분 일부를 넘긴 바 있다. 당시에는 우호지분 확보 목적이 아니라 각 사와 추진 중인 이차전지, 신재생에너지 사업 등을 원활히 하기 위한 일시적 동맹이라는 메시지가 나왔다.

다만 시중에서는 고려아연이 백기사를 불렀다는 시선이 많다. 현재 최윤범 회장측의 우호주주와 특수관계인을 합한 지분률은 33% 수준에 달하지만 영풍측은 32%에 불과한 상황이라 영풍측은 그 어느 때보다 백기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고려아연 주총 주주 평균 출석률(85%)를 고려했을 때, 영풍측에서 의안에 반대표만 던져도 참석 인원의 3분의 2 찬성을 달성하지 못해 의결에 실패할 수 있다. 영풍측이 플랜B로 백기사 카드를 빼들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영풍그룹 역시 고려아연의 유상증자 행보에 대해 “고려아연은 외국합작법인에 전체 주식의 16% 상당 지분을 넘겼다”며 “이런 상황에서 (주총 안건으로 올라온)신주인수권 제한 규정마저 풀어버린다면 기존주주의 권익을 위한 최소한의 보호 장치가 사라진다”고 견제 중이다.

다만 일련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양 사는 “계열 분리가 목적은 아니다”고 선을 긋고 있다. 최악의 파국은 서로 원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2024 인터배터리에 참여한 고려아연 부스. 사진=고려아연
2024 인터배터리에 참여한 고려아연 부스. 사진=고려아연

안건 찬반 갈린 ISS…캐스팅보트 향방은

신경전이 심해지는 가운데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인 ISS는 이번 고려아연 주총 안건을 두고 일부는 찬성, 일부에는 반대했다.

먼저 1호 의안인 5000원 기말 배당을 포함한 연간 주당 배당금 1만5000원에는 찬성했다. 고려아연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반대로 2-2호 의안인 정관 변경 의안의 경우, 3자 배정 유상증자 제한이 사라짐에 따른 기존 주주에 대한 주식가치 희석 위험이 크다는 점을 들어 영풍의 손을 들어줬다.

이밖에도 사업목적에 '전기공급 및 판매업'을 추가하는 2-1호 의안에는 찬성하며 고려아연의 편에, 주식소각 관련 조항을 삭제하는 2-5호 의안과 황덕남 변호사의 신규 사외의사 선임 의안인 3-8호에 대해서는 반대하며 영풍의 편에 섰다.

ISS는 기업의 주총 안건을 분석해 의결권 행사 지침을 제시하는 전문 기관으로. 세계 투자자의 70% 이상이 ISS의 의견을 참고해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ISS가 사실상의 중립을 표방한 만큼, 이번 주총은 양측의 우호지분 확보 여부와 ‘캐스팅보트(지분 8.5%)’를 쥔 국민연금의 선택에 따라 갈릴 예정이다. 현재 양측 지분율이 백중세인 만큼, 출석 주주 3분의 2가 찬성하면 안건이 통과되는 주총 칼자루는 국민연금이 쥐고 있다는 분석이다.

국민연금으로선 단기 배당이윤과 고려아연의 장기적 이득을 모두 고려해야만 한다. 단기 배당이윤만 따르자면 영풍 측의 주장대로 2만원 배당이 옳지만, 고려아연의 주장대로 과도한 주주환원으로 재원 손실이 발생한다면 장기적 배당 손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