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 대형마트의 채소 매대. 사진=연합뉴스
서울 한 대형마트의 채소 매대. 사진=연합뉴스

최근 신선식품 시장은 그야말로 춘추전국 시대다. 마트, 이커머스에 더해 편의점과 알리익스프레스(알리)까지 뛰어들면서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올해 1∼2월 식료품 물가지수는 전년 동기 대비 6.7% 상승했다. 이는 2021년(8.3%) 이후 3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동기간 식료품 물가 상승률은 7.3%로 2022년 10월(7.5%) 이후 1년 4개월 만에 가장 높다. 식료품 물가 상승의 가장 큰 원인으로는 과일의 작황 부진으로 인한 가격상승이 지목된다.

식생활 서구화로 증가한 ‘신선식품’ 소비

국내 신선식품 소비는 식생활 서구화와 밀접히 연관돼 있다. 이는 경제성장과 관련 깊다.  1970~1980년대 한국의 GDP(실질국내총생산)는 10%대로 급격히 성장한다. 1990년대 평균 GDP 성장률은 7.32% 수준으로 축소됐으나, 소비는 이전보다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1970~1980년대 근면하게 일해 나라에 부가 쌓인 덕분이다. 1990년대는 이를 향유한 시대다.

서구화된 식생활은 당시 연구자료로도 확인된다. 1992년 국민영양조사 결과를 분석한 ‘식생활형태의 서구화로 성인병 증가 우려’ 리포트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육류, 어패류, 채소류, 과일류 섭취량이 이전보다 증가했다. 반면 농경사회부터 전통적으로 많았던 곡류와 콩류 및 감자류 섭취량은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리포트에서는 국민영양조사가 처음으로 실시된 1969년과 1992년을 비교했다. 구체적으로 ▲곡류 558.8→337.2g ▲감자류 76.6→22.4g 등은 절반에서 3분의 1가량으로 축소된 것으로 나타났다. 동기간 ▲과실류 48.1→123.9g ▲육류 6.6→58.1g 등은 각각 2.5배, 8.8배 정도로 늘어났다.

이러한 흐름은 앞으로도 지속될 전망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지난 1월 발표한 ‘농업전망 2024’에서 지난해 국민 1인당 농식품 소비량을 ▲곡물 138.0kg ▲6대 과일 31.2kg ▲오렌지와 수입 열대과일 12.1kg ▲3대 육류(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 60.6kg 등으로 추산했다. 지난해와 1990년대 초반 1인당 농식품 소비량을 비교하면 곡물류는 199.2g 감소하고, 육류는 2.5g 늘어나 식생활 서구화가 보다 뚜렷이 드러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7대 곡물, 5대 채소, 3대 육류 소비량은 전년보다 감소하지만, 수입 열대과일 소비량은 전년보다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CU 미국산 큐브 스테이크 출시. 사진=CU
CU 미국산 큐브 스테이크 출시. 사진=CU

신선식품도 ‘마트 대신’ 편의점

신선식품 유통채널로 편의점도 주목받고 있다. 먼저 고물가에 가성비 상품 공급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편의점은 1+1, 2+1 등 행사와 각종 덤 상품, PB(자체) 상품 강화로 마트보다 저렴한 상품이 많다는 인식이 생겼다. 여기에 1인가구 증가에 따라 퇴근길에 장을 보는 근거리 장보기가 확대되는 추세다. 

실제 편의점 신선식품 매출은 증가 추세다. GS리테일이 운영하는 GS25의 최근 3년간 신선식품 전년 대비 매출 신장률은 ▲2021년 37.2% ▲2022년 31.8% ▲2023년 23.7% 등을 기록했다. GS25는 신선식품 성장세가 지속될 것으로 판단하고 올해 FCS(신선강화매장)를 100호 이상 확대하는 목표도 세웠다. 1500원 두부, 9000원대 냉동삼겹살(700g) 등 고물가 시대 소비자가 ‘알뜰 소비’를 확신할 수 있게 한다는 포부다. 계열사인 슈퍼마켓 GS더프레시의 초저가 PB 리얼프라이스를 도입하고, 장보기 관련상품도 최대 500여종까지 늘릴 방침이다.

BGF리테일이 운영하는 CU도 신선식품을 강화하기는 마찬가지다. 2021~2023년 CU의 식재료 전년 대비 매출신장률도 21.4→19.1→24.2%로 매해 두자릿수 이상을 기록했다. 특히 CU는 동기간 정육 카테고리의 전년 대비 매출신장률이 24.1→36.9→26.4%로 급등해 관련 상품군을 확대 중이다. 하이포크 한돈 정육의 경우 2023년 3월 판매를 시작해 올해 1월 초순 약 10만개의 판매고를 올렸을 정도다. 정육 강화는 식재료 매출 자체가 2030세대 비중이 전체의 63.7%를 차지한 데서 비롯된 대응으로 풀이된다.

세븐일레븐과 이마트24도 신선식품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코리아세븐이 운영하는 세븐일레븐은 2021년 신선식품 브랜드 세븐팜을 론칭한 바 있다. 당시 세븐일레븐은 ‘편리한 도심 속 오아시스 농장’을 콘셉트로 1~2인 가구용 야채‧과일‧육류‧수산물 등의 강화를 내세웠다. 이듬해 달걀‧우유 등 기본 식자재를 가성비 PB인 ‘굿민’으로 선보이기도 했다. 이마트24는 2021년 과일 특화 마케팅 ‘이달의 과일’을 시작했다. 1인가구에 세척하고 한입 크기로 썬 제철과일 수요가 높을 것으로 분석했다. 아울러 가치소비를 중시하는 2030세대 취향을 반영해 동물복지, 무농약, 저탄소 신선식품 등을 도입하고 있다.

3월 10일 알리 식품 코너인 더신선 스토어에서 판매 중인 설향 딸기의 고객 평점이 5점 만점에 4.9점을 기록 중이다. 사진=알리익스프레스 앱 캡처
3월 10일 알리 식품 코너인 더신선 스토어에서 판매 중인 설향 딸기의 고객 평점이 5점 만점에 4.9점을 기록 중이다. 사진=알리익스프레스 앱 캡처

무섭게 커지는 알리, 신선식품 ‘도전장’

불과 1년만에 유통업계 ‘태풍의 눈’이 된 알리도 있다. 알리는 지난해 애플리케이션(앱) 사용자수가 무섭게 늘더니 올해 3월초 신선식품까지 영역을 넓혔다. 와이즈앱·리테일·굿즈에 따르면 올해 2월 기준 알리 앱 사용자수는 818만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130% 증가했다.

신선식품 영역확대 속도전도 상당하다. 알리는 올해 2월 중순 신선식품 상품기획자 인력 공고를 냈다. 이후 3월 초에 ‘더신선 스토어’를 통해 딸기, 토마토 등 신선식품 배송을 시작했다. 불과 2주만에 신선식품 사업이 뚝딱 생겨났다. 6개월 이상 준비기간을 예상하던 국내 유통업계는 그야말로 허를 찔린 셈이다.

현재까지 알리의 속도전은 성공적이라는 평가다. 3월 10일 현재 관련 카테고리에는 총 30개의 상품이 등록돼 있다. 최고 인기 상품은 800건 이상 팔린 ‘논산 설향 딸기 750g’으로 47% 할인한 1만3674원에 판매 중이다. 한국내 판매자를 통해 무료 배송된다. 딸기를 구입한 한 고객은 “딸기가 싱싱하고 좋다. 시중가보다 저렴하게 샀다. 배송도 하루만에 왔다”며 칭찬일색의 후기를 올렸다.

알리의 초기 사업 선전은 ‘수수료 0원’ 정책에 힘입은 바 크다. 알리는 지난 2월 한국 상품을 판매하는 K베뉴(K-Venue) 국내 판매자를 모집하며 ‘당분간’ 입점수수료와 판매수수료 면제를 선언했다. K베뉴 중 식품 코너인 더신선 스토어 또한 마찬가지다. 국내 이커머스 판매자 수수료는 10~20% 정도다. 단순 산술로 1만원 상품을 팔면 1000~2000원을 떼가던 수수료가 0원이 됐다. 판매자 입장에서는 배송료를 지불한다고 해도 남는 장사라 해볼만 하다. 수수료를 떼지 않으니 고객에 할인율을 늘릴 가능성도 높아졌다.

일각에서는 더신선 스토어의 급격한 확대 가능성도 제기한다. 가공식품과 달리 신선식품 판매 기업의 경우 중소기업이 많아 수수료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수수료 문제로 쿠팡과 결별한 국내 대표 식품기업 CJ제일제당도 최근 알리 입점을 결정지었을 정도다. 이미 알리 K베뉴 카테고리에서 비비고 만두를 비롯해, 햇반, 김치 등을 구입할 수 있다.

이제 다급해진 것은 국내 유통시장이다. 초저가 상품에 고객을 뺏기고 낮은 수수료에 판매자 마저 잃을 위기에 봉착했다. 알리의 기본 사업모델도 위협적인 요소다. 알리는 전통적으로 수수료를 1~2%로 적게 책정하고 광고 수입으로 매출 확대를 해왔다. 알리 입장에서도 일단 판매자가 모여야 광고 수입을 올릴 수 있다. 알리의 현재 수수료 0% 정책이 의미있는 투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