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 기초 주가연계증권(ELS) 투자자들이 피해 보상 등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 기초 주가연계증권(ELS) 투자자들이 피해 보상 등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 연계 주가연계증권(ELS)에 대한 정부의 배상안(손실 분담 기준안)이 11일 공개된다. 배상안은 ELS 투자자에게 판매 금융회사가 얼마를 배상해줘야 할지 가늠하는 가이드라인이 된다.

판매 금융사가 반드시 받아들여야 하는 법적 의무는 없다. 금융권은 배상안 수용 여부에 따라 자율배상을 결정하게 되지만 자율배상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의 조정절차를 밟게 된다. 분조위 조정안마저 수용하지 않을 경우 판매사와 금융소비자간 법정 공방도 이어질 수 있다.

배상안 발표 이후에는 판매사들이 이를 수용할지 결정하기 때문에 사실상 피해보상의 공이 은행을 비롯한 금융사들에게 넘어가게 된다.

앞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차등 배상을 언급하면서 손실액 전액 배상을 요구하는 홍콩ELS 가입자들과 입장 차이를 보인바 있다. 배상안 발표 이후에도 홍콩ELS 가입자들은 '계약 원천 무효'를 주장하며 궐기 대회 등의 행동에 적극 나설 예정이다. 

사진=이복현 금감원장. 사진=금융감독원
사진=이복현 금감원장. 사진=금융감독원

이달 5일 이 원장은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현해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홍콩 ELS 사태 배상과 관련해 0~100% 차등 배상을 원칙으로 할 방침이라는 취지를 밝혔다.

이 원장은 "과거에 저희가 경험이 많이 쌓이지 않을 때는 일률적으로 20%는 배상하라, 50% 배상하지 말아라 이렇게 했는데 지금 그때보다는 연령층, 투자 경험 내지는 투자 목적, 창구에서 어떤 설명을 들었는지 그리고 이런 것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한 수십 가지 요소들을 어떤 매트릭스에 반영을 한다"라고 말했다.

진행자(김현정)가 '아직 최종 결정은 아니지만 몇 가지 가이드라인만 정리를 해보자면 우선 케이스에 따라 차등 배상이 원칙이다?'라고 질의하자, 이 원장은 "배상이 안 될 수도 있다"고 답했다.

이어 "예를 들자면 법률상 보면 의사결정을 하기 어려운 분들을 상대로 이런 상품을 판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실제로 있고 그런 경우에는 해당 법률행위 자체에 대한 취소 사유가 될 여지가 있기 때문에 100% 내지는 그에 준하는 배상이 있을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즉 이 원장은 전액 배상의 가능성을 완전히 닫아두지는 않았지만, 기본적인 틀은 가입자별 차등 배상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전액 배상이 적용될 수 있으려면, 라임과 옵티머스 사태처럼 계약 당시 판매사가 투자자의 판단을 방해했다는 사실이 완벽히 드러나야 할 것으로 보인다. 사모펀드 사태에서는 라임자산운용 이종필 전 부사장 등 주요 관계자는 물론 증권사 등 판매사 직원들도 자본시장법 위반으로 사법적 처벌을 받았다.

옵티머스 사태에 있어서는 김재현 옵티머스자산운용 대표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의 사기 등 혐의로 징역 40년을 확정 선고받았다. 현재까지 경제사범에 내려진 형량 중 가장 길다. 

이같은 사례와 비교해 홍콩ELS의 경우 애초당초부터 투자할 수 없는 대상에 투자하는 상품을 권유했거나 이미 상당 부분 부실화된 걸 소개했다는 점이 아직까지 입증된바는 없다는 점에서 '계약 원천 무효' 수준의 전액 배상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공모 상품인데다 금융소비자보호법에 따라서 판매 과정이 다 녹취돼 있기 때문에 불완전 판매에 걸릴 위험성도 이전보다 많이 낮아졌고 재가입한 사례들도 상당수다. 

이복현 금감원장, 불완전 판매 정황 시사...배상 못지 않은 '과징금 폭탄'

금융감독원 본사 전경. 사진=윤주혜 기자
금융감독원 본사 전경. 사진=윤주혜 기자

그럼에도 불완전판매 정황은 이미 상당수 확보됐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불완전판매가 확정되면 판매사들은 과징금을 피해가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현행 금소법은 설명의무를 저버리거나 부당권유행위를 했을 때 위반행위로 얻은 수입의 50% 이내에서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여기서 수입은 투자액 또는 대출금을 뜻한다.

이 원장은 "거액의 자산을 (금융사에) 맡길 때는 전체 자산 100 중 90인지, 5인지, 3인지 등 재산의 구성과 관련한 내용을 점검하도록 하는 게 금소법에 있다"며 "판매사들이 이를 고려하지 않고 일단 마케팅을 해서 (자산을) 받았다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이 원장의 발언은 은행이 가입자의 자산 상황에 맞지 않는 상품을 추천하면서 적합성의 원칙을 저버렸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 원장은 이어 "특정 금융사가 ELS 상품을 팔면서 고객에게 20년이 아닌 10년치 실적 분석 자료만 제시해 손실률을 0%에 가깝게 떨어뜨렸다"며 "의도를 갖지 않고서는 그렇게 하기 어렵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과거 수익·손실을 분석해 고객에게 설명해야 하지만 손실 기간을 걷어낸 후 손실 가능성이 없다고 설명했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공은 판매사들에게"...개별은행 앞 릴레이 시위 예고

자율배상에 대해 입을 닫고 있던 은행권은 일단 금융당국의 배상 기준안 발표 이후에는 투자자들과 배상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그간 금융당국을 상대로 규탄 목소리를 냈던 홍콩ELS 가입자들은 개별 판매은행을 상대로 피해 보상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피해자모임이 개별 판매은행으로 타깃을 옮기는 이유는 금감원의 홍콩ELS 배상 기준안 발표 이후엔 일단 은행으로 피해 보상의 공이 넘어가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홍콩ELS피해자모임(이하 피해자모임)은 이단 15일 오후 12시부터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 신관 일대에서 '대국민 금융사기 계약 원천 무효' 궐기 집회를 열 예정이다. 지난해 12월 15일과 1월 19일에 있었던 1, 2차 집회에 이은 3번째 집회다.

앞서 1, 2차 집회가 금감원 본원 앞에서 이뤄졌던 것과는 달리 개별은행에서 궐기 집회를 연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피해자모임은 판매은행에 대한 관리·감독 권한이 있는 금융당국에 투자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해 그간 서울 여의도 금감원 앞에서 홍콩ELS 가입자의 원금복원과 피해보상을 촉구해 왔다.

3차 집회에서는 처음으로 주요 판매은행인 NH농협은행의 지주사 NH농협금융지주를 지배하고 있는 농협중앙회 본사 앞으로 집회 장소를 옮겼다. 피해자모임은 NH농협은행을 시작으로 주요 판매은행 본점에서도 순차적으로 집회를 이어갈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피해자모임이 첫 타깃으로 삼은 NH농협은행은 지난해 11월 기준 홍콩 ELS 판매액이 2조2000억원이다. 5대 은행 중 KB국민과 신한은행에 이어 세번째로 많은 규모다. NH농협은행이 2019년 사모펀드 사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던 만큼 공모형이고 상품 자체에 문제 없던 ELS 상품을 집중 판매해 온 결과로 풀이된다.

특히 업계에서는 NH농협은행이 다른 4대 시중은행과 비교해 자율배상에 따른 배임 우려에서 자유롭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지주사가 상장돼 외국인 주주 비율이 높은 4대 시중은행과 달리 NH농협은행은 공공기관 성격이 짙은 농협중앙회가 지분 구조의 최상위에 있다.

이복현 원장-은행장들, 18일 간담회...자율배상 압박 커지나

지난해 7월 5일 금융지주 회장 및 은행장들과 간담회를 열고 있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왼쪽에서 두번째)과 김주현 금융위원장(왼쪽에서 세번째). 사진 = 김호성 기자.
지난해 7월 5일 금융지주 회장 및 은행장들과 간담회를 열고 있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왼쪽에서 두번째)과 김주현 금융위원장(왼쪽에서 세번째). 사진 = 김호성 기자.

배상안 발표 이후 이달 18일 은행연합회에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과 금융사들의 간담회가 열릴 예정이다. 주요 은행장들로 구성된 은행연합회 이사회가 참석한다.

이번 간담회는 홍콩ELS 배상안이 발표된 이후 1주일 만에 열리는 은행장과 감독 당국 사이의 간담회라는 점에서 배상과 관련한 논의가 주로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당국은 은행들이 '자율 배상'에 나서라고 압박하고 있다. 은행들이 자율 배상에 나서면 대규모 ELS 손실 사태와 관련한 과징금 등 제재를 감경해줄 수 있다는 방침까지 밝혔다.

하지만 은행들은 자율 배상과 관련해서는 배임 소지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일단은 금융당국이 마련한 배상안을 우선 살펴보겠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