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던 플랫폼법이 미국과의 통상마찰을 일으킬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으나, 최근에는 '전혀 다른 목소리'도 나오는 것으로 확인됐다.

일반적으로 플랫폼법에 대해 미국 경제계는 우려를 보이고 있으며, 플랫폼법을 반대하는 진영에서는 미국과의 통상마찰이 벌어질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경향이 있다. 다만 최근들어 이러한 주장이 표면적인 논리에 불과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어 시선이 집중된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 사진=연합뉴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 사진=연합뉴스

재차 시동거는 플랫폼법, 과연?
공정위가 플랫폼법을 추진하자 엄청난 반발이 있었다. 크게 '플랫폼법이 통과되면 한국 플랫폼이 역차별을 받을 것' '플랫폼이 압박을 받으면 여기에 의존해 다양한 서비스를 누리던 소비자들의 피해가 커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전자인 '플랫폼법이 통과되면 한국 플랫폼이 역차별을 받을 것'이라는 반발이 가장 매서웠다. 당장 알토스벤처스의 김한준 대표, 소프트뱅크벤처스 이준표 대표, 법무법인 린 구태언 테크 부문 변호사 등 ICT 업계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플랫폼법이 통과될 경우 한국의 혁신이 사라질 것이라 강조했다.

하정우 네이버클라우드 센터장도 "(공정위) 공무원들이 디지털 시대의 국제경제를 알고 일을 하면 좋겠다"면서 "매국적인 규제 만들기에 올인하고 있어 나라의 미래가 없다"며 탄식하기도 했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등이 포함된 디지털대연합과 스타트업얼라이언스 등 관련 단체들도 플랫폼법이 통과되면 한국 플랫폼이 역차별을 받을 것이라 주장했다. 

결국 공정위는 지난 2월 7일 한발 물러났다. 법안 제정에 대해 전문가·업계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겠다는 설명과 함께 법안의 핵심이던 '지배적 사업자 사전지정'을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다만 최근 들어 '플랫폼법이 통과되면 한국 플랫폼이 역차별을 받을 것'이라는 주장은 동력을 상실하고 있다. 물론 관련 리스크는 남아있다지만 플랫폼법이 한국 플랫폼만 규제해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들 것이라는 논리 자체가 약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플랫폼법 자체가 완성되지 않은 상태라 예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공정위가 지금까지 수 많은 글로벌 기업들을 대상으로 법 집행에 나선 사례가 많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론 국내법이 해외 기업을 대상으로 강한 위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또 불가능한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당장 미국 기업인 퀄컴의 경우 공정위와 6년 법정 공방을 벌인 후 2023년 4월 대법원으로부터 무려 1조원의 과징금을 확정받기도 했다. 만약 한국 기업에 떨어진 과징금이라면 온 세상이 들썩였을 역대급 이슈였을 정도로 초유의 과징금 규모다. 조홍선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도 일간지 기고문을 통해 "공정위는 이미 구글, 애플, 퀄컴 등 다수의 해외 사업자에 대해 수차례의 법집행 경험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미 상의 홈페이지 갈무리. 사진=갈무리
미 상의 홈페이지 갈무리. 사진=갈무리

통상마찰? "글쎄"
'지배적 사업자 사전지정 재검토' 발표 정국을 통해 다소 소강상태에 빠졌던 플랫폼법 논의가 재차 부상하고 있다. 한기정 위원장이 7일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오찬 강연에 참석해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플랫폼 기업을 규제할 수 있는 '플랫폼법'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 27개국이 7일(현지시간)부터 미국 빅테크 기업을 사전 규제하는 디지털시장법(DMA)을 전면 시행한 후 한국의 플랫폼법도 다시 탄력을 받는 분위기다.

플랫폼법을 둘러싼 논란이 다시 시작될 조짐인 가운데, 플랫폼법에 반대하는 진영에서는 미국과의 통상분쟁 가능성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플랫폼법을 강행하는 것이 미국 경제계의 '심기'를 건드는 일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장은 표면적으로 사실이다. 최근 클리트 윌렘스 전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부위원장이 언론 인터뷰를 통해 한국 플랫폼법을 두고 무역확장법 301조 적용 가능성을 제기하는 한편, 미국상공회의소와 암참에서도 지속적으로 비슷한 주장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다만 이러한 주장들은 미국 경제계, 특히 미국 플랫폼 업계의 거물인 구글-애플의 주장일 뿐이라는 반론도 만만치않다.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입해 미 의회에 강력한 로비에 나서는 구글-애플과 같은 거물들이 미 경제계 전체의 여론을 주도하며 한국 플랫폼법을 압박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물론 구글-애플이 한국 시장에서 받을 타격 때문에 플랫폼법에 우려하는 것은 아니다. 유럽 DMA에 이어 한국마저 플랫폼법을 제정하면 다른 나라들도 관련 법을 제정할 때 비슷한 스탠스를 보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반대하는 경향이 강하다. 글로벌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자신들의 거대 비즈니스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연장선에서 중국에 대한 견제라는 대의명분도 함께 움켜쥔 후 구글-애플 중심의 플랫폼법 반대가 전체 미국 경제계의 목소리처럼 들리고 있다.

그 이면에는 전혀 다른 이야기들도 나온다. 비록 구글-애플이라는 거물의 목소리에 깔려 제대로 된 메시지를 내놓지 못하고 있으나, 이들의 독점적이고 폐쇄적인 생태계를 우려하는 이들은 구글-애플의 목소리가 마치 미국 경제계 전체의 메시지로 포장되는 것에 불만이 상당하다.

디지털 경제에 있어 플랫폼 독점은 새로운 도전자의 등장을 어렵게 만든다. 이런 가운데 세계의 플랫폼을 장악한 구글-애플이 자신들의 제국을 지키기 위해 막대한 로비력을 바탕으로 미국 경제계의 목소리를 주도하고 있으며, 그 아래에서 이들의 폐쇄적 생태계를 부수려는 다른 기업들의 목소리가 막히고 있다는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온다.

사안에 정통한 관계자는 "암참만 해도 구글-애플의 주장이 대세라 다른 기업들이 목소리를 잘 내지 못하고 있다"면서 "플랫폼법에 대한 여러 이견이 있지만, 폐쇄형 거대 생태계를 가진 구글-애플의 독점적 지위가 어느정도는 흔들려야 새로운 발전이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중"이라 말했다.

최근 미국 경제계에서 나오는 플랫폼법 반대는 사실상 구글-애플의 의견에 가깝고, 구글-애플의 독점적 생태계에 불만이 큰 다른 미국 기업들의 생각은 약간 다르다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그럼에도 플랫폼법을 단순히 미국과의 통상분쟁 가능성으로 끌고가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지적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의 망 이용료 분쟁 당시 미국과의 통상분쟁 가능성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나. 이는 사실상 협박"이라며 "미국 경제계의 목소리도 다양한 만큼 플랫폼법에 대한 입체적인 접근이 필요할 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