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애플 공식 홍보 영상 갈무리.
사진=애플 공식 홍보 영상 갈무리.

‘공간 컴퓨팅’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할 것인가. 애플 신제품 ‘비전프로’에 대한 사용 후기가 쏟아지는 가운데, 한국에서는 아직 판매하지 않는 이 두꺼운 고글 모양의 신문물로 인해 어떤 변화를 맞이하게 될지 주목된다.

기자는 지난 6일 서울 강남구 신논현 포바이포 본사에서 애플 비전프로를 직접 체험해봤다. 애플이 지난 2일(현지시간) 정식 출시한 비전프로는 2014년 애플워치 후 10년 만에 나온 애플의 신제품으로, 가상(디지털)과 물리적(현실) 세계를 혼합한 ‘공간 컴퓨팅’을 구현하겠다며 내놓은 야심작이다.

비전프로 체험기... "몰입감 최고, 콘텐츠는 아직 단조로와"

혼합현실 헤드셋 ‘비전프로’를 머리에 착용했다. 오른쪽 위의 버튼을 누르자 시점이 맞춰지면서 동그란 포인터가 시선을 추격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비전프로는 패스스루 영상과 손/눈동자 추적도 지원하는 점이 특징이다. 이후 1시간 정도 비전프로를 통해 영상 시청, 그림 그리기, 웹 서핑, 공룡을 볼 수 있는 앱 등 다양한 콘텐츠를 경험했다.

넓은 시야각과 고화질의 디스플레이의 만남은 몰입감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실제 비전프로는 12개의 카메라와 2개의 4K 4000 PPI(인치당픽셀) 초고해상도 패널을 앞세웠다. 애플의 마이크로 OLED 디스플레이는 색정확도나 색감, 다이내믹 레인지 등이 놀라울 정도로 훌륭했다.

현실 공간이 그대로 보이면서 앱을 실행하거나 영상을 재생할 수 있었다. 먼저 켠 자연 풍경이 담긴 사진은 시야각이 넓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좌우를 살피면 산와 구름이 펼쳐졌고 아래를 보면 흙을 밟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그 상태에서 웹사이트 창을 띄워 영상을 시청하니 현실과 가상을 동시에 경험하는 기분이었다.

단숨에 사진작가 겸 리뷰어인 제레미 그래이의 후기를 이해했다. 제레미 그래이는 “적혈구와 거의 같은 크기의 픽셀을 가지고 있는 마이크로 유기발광다이오드 디스플레이는 너무 생생해서 내가 눈앞의 광경을 기기를 통해 보고 있다는 것을 잊게 한다”면서 “내가 바라보는 것과 비전 프로가 보여주는 세상 사이의 지연 시간은 12밀리초다”고 말한 바 있다.

공룡에게 쫓기는 영상에 몰입감이 커서 뒷걸음질치는 모습. 사진=최진홍 기자.
공룡에게 쫓기는 영상에 몰입감이 커서 뒷걸음질치는 모습. 사진=최진홍 기자.

이후 공룡을 볼 수 있는 앱을 직접 실행했다. 공룡이 나오는 시대로 들어가는 문이 열리자 아기 공룡이 눈앞에 나타났다. 앞으로 움직여 공룡에게 다가가니 공룡 피부결까지 보일 정도로 가까워졌다. 다른 공룡이 꼬리를 흔들면서 달려오자 앞에 실제로 있다는 착각에 빠져 뒷걸음질치기도 했다.

조작법도 간편했다. 응시하고 꼬집으면 된다. 실제 검지와 엄지를 붙이는 동작을 통해 터치를 하면서 콘텐츠를 즐겼다. 검색 시 눈앞에 뜬 키보드의 자판을 하나씩 입력하는 재미도 있다. 또한 그림판에서 손을 휘저으면서 그림을 완성하는 등의 실험을 통해 비전프로의 손 인식 능력이 뛰어나다고 느꼈다.

응시하고 손가락을 꼬집으면서 스크린을 터치하고 있다. 사진=최진홍 기자.
응시하고 손가락을 꼬집으면서 스크린을 터치하고 있다. 사진=최진홍 기자.

멀티태스킹 능력치도 높다. 기존 아이패드가 2개 정도의 창을 띄울 수 있다면, 비전프로는 최대 10개의 화면을 공간에 띄우면서 창들을 하나씩 따로 볼 수 있다. 실제 5개 정도의 창을 띄운 상태에서 하나의 창을 손으로 클릭해보니, 명암이나 색상이 바뀌어 터치가 제대로 됐는지도 즉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내장 스피커와 공간 오디오는 인상적이다. 기기에서 나오는 소리는 마치 주변 환경에서 소리가 나오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러한 공간 오디오 시스템은 실내 음향 특성을 분석해 소리의 전파를 시뮬레이션한다. 실제 오디오가 나오는 귀 옆 부분을 손으로 감싸면 볼륨과 울림이 달라졌다.

볼륨을 높이면 주변 사람들에게 들리는 문제가 있으나, 외부를 바라볼 때 비전 프로 앱에서 나오는 소리와 주변의 소리를 함께 듣는 것에 대한 불편함이 없었다. 이런 면에서 고립된 몰입형 경험에는 최적이었다. 특히 내재돼 있는 명상 프로그램은 고급 오디오 기술과 합쳐져 시너지를 냈다. 어둠 속에서 나뭇잎이 떠다니는 가운데 잔잔한 오디오 음성이 나오면서 세상의 방해 요소를 차단하고 호흡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비전프로의 외연. 사진=신경민 기자.
비전프로의 외연. 사진=신경민 기자.

다만 외장형으로 연결된 배터리와 단조로운 콘텐츠 등은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다.

비전프로와 배터리의 무게를 합치면 1kg에 달한다. 600g인 비전프로의 무게가 얼굴 앞쪽에 쏠려 있어 오래 착용하니 목이 뻐근함을 느꼈다. 또한 배터리 지속시간이 2~3시간 정도에 불과해 외장형 배터리를 주머니에 넣은 채로 체험을 진행하니 불편함이 있었다.

현재 영상을 비롯한 시청 위주의 콘텐츠가 전부인 점도 아쉬웠다. 애플 특유의 폐쇄 전략으로 유튜브, 넷플릭스 등 앱들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다. 서드파티 앱은 대부분 아이패드 앱이고 비전OS 전용 앱은 1000종 정도다. 이마저도 아직 오류가 종종 발생하며, 아이패드 앱을 공간에 떠다니는 형식으로 약간 수정한 것들도 많았다.

이외에도 착용 시에는 어지럼증이 없었으나, 착용 후에는 약간의 어지럼증을 느꼈다. 또한 가상 공간에 빠져들면서 실제 공간에 있는 물체들을 발견하지 못해 다칠 수도 있는 점이 우려되기도 했다.

공간컴퓨팅 환경… “저화질을 고화질로 바꾸는 것은 필수”

비전프로는 애플의 자존심이 걸렸다. 애플은 챗GPT 등장 이후 생성 AI 열풍이 불면서 메타버스는 한물갔다는 이야기가 나오던 시기에도 메타버스를 포함한 ‘비전 AI’ 연구에 몰두해온 바 있다. 그런 과정을 거쳐 10여년 만에 세상에 내보낸 작품인 것이다.

비전프로에 대한 반응은 극과 극이다. 미국 외의 지역에서 비전프로가 2~3배 가격으로 거래될 만큼 인기를 끈다는 소식과 함께 환불 고객이 늘고 있다는 뉴스가 동시에 나오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에서도 공간 컴퓨팅 생태계는 계속 확장되고 있다.

공간 컴퓨팅 환경에서 ‘몰입감’을 줬던 건 디스플레이의 역할이 컸다. 실제 공간컴퓨팅 환경에서는 화질이 기존보다 좋아야 실생활에서 보는 화면과 비슷한 느낌이 난다. 이런 점에서 초고화질 영상 콘텐츠 기업들도 주목 받고 있다. 저화질로 나온 영상들을 초고화질로 업스케일링하는 과정을 통해 몰입감을 유지할 수 있어서다.

그 연장선에서 AI 업스케일링 시장이 각광받고 있다. 업스케일링은 영상에 내장된 화질 개선 칩이 기존 영상을 인식해 부족한 부분을 채워 넣는 것이 기본 원리다. 해당 기술은 게임 산업과 콘텐츠 영역에서의 생생한 체험감을 증대시키고 품질 향상을 도우면서 그래픽 혁명을 시작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어떤 차이가 있을까? 기자는 포바이포 화질 개선 AI 솔루션인 픽셀이 적용된 영상과 그렇지 않은 영상을 비전프로로 동시에 시청해봤다. 과거 영화나 드라마의 경우 대다수 저화질로 제작됐다. 픽셀은 이런 영상들을 수 만건의 초고화질 영상을 학습한 AI를 통해 채도, 선명도, 명암 등을 미세하게 조정해 화질을 고도화한다.

픽셀 기술이 적용되지 않은 영상(왼쪽)과 픽셀 기술이 적용된 영상(오른쪽) 비교. 사진=포바이포.
픽셀 기술이 적용되지 않은 영상(왼쪽)과 픽셀 기술이 적용된 영상(오른쪽) 비교. 사진=포바이포.

비전프로 내에서 드라마 ‘성균관스캔들’을 두개의 창을 띄워 시청하는 과정에서 눈길이 자꾸 픽셀이 적용된 창으로 향했다. 아무리 영상을 잘 만들어도 화질이 떨어지면 외면받는다는 말이 있다. 픽셀 솔루션은 영상의 초당 전송하는 데이터양을 낮추면서도 화질을 초고화질로 바꿀 수 있어 다양한 업계에서 활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업계에서는 범용 업스케일링 기술이 콘텐츠 시장 판도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사에 가까운 고해상도의 콘텐츠를 즐기는데 진입장벽이 낮아지면서 시장을 넓하는 등의 효과가 예상된다. 소비자가 알아서 화질을 개선할 수 있게 되면 영상 송출에 들인 데이터 관리 부담도 줄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한편 포바이포는 딥러닝 AI 기반 화질 개선 솔루션을 기반으로 초실감화 비주얼 콘텐츠를 제작하고 초고화질 영상 콘텐츠 유통 플랫폼을 운영하는 회사다. 포바이포의 화질 개선 AI 솔루션 픽셀은 총 2개 부문에서 CES2024 혁신상을 받은 바 있다.

공간컴퓨팅 환경… “미래는?”

2024년 애플 비전 프로의 등판으로 본격적인 공간 컴퓨팅 시대가 열리는 분위기다. 이에 존재적, 공간적 제약과 경계가 사라질 전망이다.

지난해 NIA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물리적-디지털 공간이 하나가 되면 XR의 고도화, 참여자의 확장, 공간의 확장을 가져올 것”이라며 “이를 통해 단절된 공간들 속에서 불가능했던 다양한 기회들의 확장까지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출처=NIA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보고서 갈무리.
출처=NIA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보고서 갈무리.

또한 보고서는 공간 컴퓨팅 생태계에 대해 “물리적 공간에 종속적이지 않은 활동을 구분지어 사람들을 조금 더 자유롭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경계가 사라져 공간과 활동, 어쩌면 공간과 인간의 관계를 새롭게 정의하도록 하는 혁신이 바로 공간 컴퓨팅이 이끄는 미래라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