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이하 현대중공업)이 특수선 사업분야에서 본격적으로 맞붙었다. 단순 수주 경쟁에서 벗어나 양사의 명예가 걸린 소송전으로 돌입하며 갈등이 격화되는 양상이다.

한화오션은 앞서 지난 4일 성명을 통해 “현대중공업의 임원이 소속 직원 9명에게 한국형 차세대 구축함(KDDX)의 개념설계보고서 등 군사기밀을 탈취 및 누설하도록 지시하거나 개입·관여한 정황이 있다”고 밝히며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국수본)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한화오션은 이어 5일 기자회견을 열어 “그간의 정황상 임원 개입이 없다고 할 수 없다”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2012년~2015년 현대중공업 직원들이 수차례 방위사업청, 해군본부 등을 방문해 KDDX 개념설계보고서 등 군사기밀을 불법 탈취하고, 비밀서버에 업로드해 광범위하게 공유하면서 입찰 참가를 위한 사업제안서 작성 등에 활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KDDX의 발주처인 방위사업청은 그간 계약심의위를 열어 현대중공업의 입찰 제한 제재를 논의했지만, 지난 2월 행정지도 처분으로 결정되며 현대중공업은 향후 입찰을 제한받지 않게 됐다. 이에 한화오션이 반발하며 임원 개입 정황을 지적하고 나선 것이다.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조감도. 사진=HD현대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조감도. 사진=HD현대

한화오션 “보안사고 관련 확실한 제재 선례 만들어야”

기자회견 발표를 맡은 구승모 한화오션 컴플라이언스실 변호사는 “현대중공업 직원을 대상으로 한 2심 판결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은 주식회사 링크를 통해 독자적으로 서버를 구축·관리하며 군사기밀을 보관해왔다”며 “이는 경쟁업체 간의 이해관계 문제가 아닌, 함정 관련 국방사업 신뢰가 걸린 문제”라고 주장했다.

구 변호사가 제시한 2018년 피의자신문조서에 따르면, 피의자들은 지난 2014년 회의를 이유로 해군본부를 출장 방문한 뒤 군 실무자로부터 군사비밀을 탐지·수집했다. 또한 출장 복명서는 피의자, 부서장, 중역이 차례대로 결재했다.

구 변호사는 “이런 사실을 토대로 결재 계통에 있는 상급자들의 지시와 개입으로 조직적 기밀 탈취가 이뤄졌음을 유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다른 피의자신문조서를 공개하며 “피의자들은 KSS-III Batch-II(장보고-III Batch-II) 잠수함 개념설계 사업을 수주하지도 않은 시점에 사업에 대한 의견을 군 관계자로부터 청취했다”며 “방산업계 특성상, 보안사고 우려로 발주처와 입찰 전 사전 미팅을 잡지 않는 게 일반적임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다만 한화오션은 이번 고발이 “KDDX 수주전에서 현대중공업을 배제해 수주를 따내기 위함이 아니며, 열심히 경쟁을 통해 입찰에 성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쟁관계를 떠나 초유의 보안사고가 발생했음에도 이를 바로잡지 않는 것은 향후 안 좋은 선례를 만들 수 있기에 문제제기에 나섰다는 설명이다.

구승모 한화오션 컴플라이언스실 변호사가 5일 기자회견에서 발표하고 있다. 사진=박상준
구승모 한화오션 컴플라이언스실 변호사가 5일 기자회견에서 발표하고 있다. 사진=박상준

현대중공업 “비취인가자 출장 결재는 당연…임원 개입 없어”

현대중공업도 반론에 나섰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임원 개입 여부 등 한화오션이 문제 제기한 사안은 이미 사법부의 판결과 방사청의 두 차례에 걸친 심도 있는 심의를 통해 종결된 사안”이며 “한화오션이 발표한 내용은 정보공개법 위반 소지가 있을 뿐 아니라, 수사 기록과 판결문을 일방적으로 짜깁기하여 사실관계를 크게 왜곡하고 있다”고 유감을 표했다.

출장 관련 의혹도 반박했다. 관계자는 “특수선사업부 직원들은 애초에 비취인가자(기밀취급허가자)기 때문에 해군본부 출장도, 관련 자료 열람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피의자들이 출장을 나가 자료를 열람한 후 촬영과 저장을 한 행위가 문제되는 것이지, 단순 출장을 결재했다고 임원이 개입됐다고 주장하는 것은 비약이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현대중공업은 보안사고로 받은 감점으로 충남급 등 수주전에서 탈락했는데, 여기에 입찰 제한이 더해지면 이중 제재”라며 “입찰 제재로 국내 특수선 건조 포트폴리오가 중단된다면 향후 국가적 특수선 경쟁력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