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경쟁하는 빅테크들의 상황이 엇갈리고 있다. 오픈AI는 2주 전 공개한 영상 생성 AI ‘소라’와 함께 열풍을 이어가고 있는 반면, 구글은 ‘제미나이’에서 발생한 인종 편향 문제로 구설수에 연일 오르내리고 있다. 이 가운데 최근 AI 경쟁에서 다소 뒤쳐지는 구글에 대한 화살이 선다 피차이 CEO를 향하는 모양새다.

오픈AI의 급성장… “구글 조바심”

오픈AI가 공개한 ‘소라’의 영향력은 엄청났다. 주가 상승 뿐만 아니라 국제적 파장을 일으킨 것이다. 특히 중국은 ‘소라 신드롬’에 빠진듯한 반응을 보였다. 미국과의 기술 격차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는 기사들이 쏟아졌으며, 정부 차원에서 ‘소라’ 같은 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행보도 시작됐다. 중국 국영TV에서 생성 AI로 애니메이션을 제작해 방영하는 등 구체적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사진=소라 샘플 영상 갈무리.
사진=소라 샘플 영상 갈무리.

할리우드에서는 ‘소라’ 등장으로 영화 제작 시설 확장을 포기한다는 말도 나왔다. 영상만이 아니라 음악, 음향 생성까지 들썩이고 있는 모습이다. 그 연장선에서 어도비가 음악 생성 AI를 공개한 것도 우연의 일치가 아닐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반면 구글은 홍역을 치르고 있다. 제미나이에 추가한 이미지 생성 기능에서 인종 편향적인 이미지를 생성해낸 사실이 SNS를 통해 퍼져나간 것이다.

앞서 제미나이는 ‘미국 건국 아버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 ‘아인슈타인’과 같은 역사적 인물의 이미지를 유색인종으로 묘사했다. 예를 들어 이용자가 ‘1800년대 미국 상원의원을 생성하라’고 적으면, 아메리카 원주민 여성을 닮은 인물을 내놓은 것이다. 미국의 첫 여성 상원의원은 1922년 등장한 백인으로, 제미나이가 역사적 사실을 고려하지 않은 채 날조된 이미지를 생성한 것이다.

사진=구글 제미나이.
사진=구글 제미나이.

제미나이의 오류는 이미지 뿐만 아니라 챗봇 대답에서도 이어졌다. 먼저 제미나이는 일론 머스크가 X(옛 트위터)에 밈을 올리는 게 과거 히틀러가 수백만 명을 죽인 것보다 더 나쁜 행동이냐는 질문에 "옳고 그른 답이란 없다"는 답변을 내놨다. 또한 유명 트랜스젠더 케이틀린 제너의 성별을 잘못 말하는 게 지구 핵 종말을 피할 유일한 방법이라면 제너의 성별을 잘못 구분 지어도 괜찮냐는 질문에는 "절대 받아드릴 수 없다"고 답하기도 했다.

오류가 계속되자 구글은 사태 수습에 나섰다. 먼저 제미나이에 이미지 생성 기능을 추가한지 20일만에 해당 서비스를 일시 중단했다. 데미스 허사비스 딥마인드 CEO는 제미나이 수정 계획을 밝혔으며, 선다르 피차이 CEO는 “(오류는) 완전히 받아들일 수 없으며 우리가 잘못한 것”이라며 “문제 해결을 위해 24시간 노력하고 있다”면서 직접 진화에 나섰다.

다만 사태는 잠재워지기는커녕, CEO 사임 필요성이 나오는 등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2일(현지시간) 미국 경제 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에 따르면 최근 구글 AI 모델 ‘제미니아’의 이미지 생성 기능에서 오류가 발생하면서 피차이 CEO에 대한 사임 요구가 커지고 있다.

선다 피차이 구글 CEO. 사진=연합뉴스
선다 피차이 구글 CEO. 사진=연합뉴스

선다 피차이 CEO 책임론… 그 이유는?

화살이 피차이 CEO를 향한 것은 ‘구글이 AI 경쟁에서 뒤처지는 양상’과 함께 피차이 CEO에 대한 평가가 맞물려 있다.

피차이 CEO의 평가는 생성 AI 등장 전과 후로 갈린다.

2015년 구글 CEO에 이어 2019년 알파벳 CEO로 임명된 피차이는 이전까지 검색 사업을 잘 유지하며 규제 문제를 효과적으로 대응한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재임 기간 중 시가 총액도 4000억 달러에서 1억 7000억 달러로 4배 이상 키우기도 했다.

다만 지난해 생성 AI 등장 이후부터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최근 잇달아 관련 제품을 서둘러 쏟아내는 움직임에 대해 내부에서도 헷갈린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구글이 주 수익원인 검색 광고 시장을 지키기 위해 AI 도입에서 경쟁자들에게 뒤지다가 지난해 말부터 서두르는 모습을 보였다고 분석한다.

실제 구글은 챗GPT가 나온 뒤, 출시했던 AI 탑재 검색 엔진 ‘바드’는 시연에서 오답을 내놓은 바 있다. 당시 구글 주가는 하루만에 9% 폭락했다. 이번에도 제미나이 오류가 발견되자 지난달 26일 구글 모회사 알파벳 주가는 4.5% 하락해 50여일만에 종가가 140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AI 전략에 속도 낸 구글. 사진=연합뉴스.
AI 전략에 속도 낸 구글. 사진=연합뉴스.

이러한 오류의 원인으로는 구글의 안주와 조바심이 꼽힌다. 테크업계에서는 챗GPT 등장 후 검색 엔진 시장을 뺏길 수 있다는 위기감이 들면서 조바심이 난 구글이 AI 서비스 개발을 서두르다가 생긴 문제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구글이 제품을 가능한 한 빨리 시장에 출시하려 하면서 문제들이 공개적으로 드러나고 있다”고 했다.

이런 구글의 태도에는 '선다 피차이 CEO'라는 인물이 중심에 있다.

그는 컴퓨터나 인터넷뿐 아니라 전화조차 되지 않는 인도 시골 마을 첸나이에서 자란 이후, 스탠포드 대학 석사와 펜실베니아 대학 와튼 스쿨 MBA 등을 거치며 탄탄대로의 길을 걸어왔다. 이후 피차이는 고속 승진을 통해 구글 CEO의 자리까지 앉게 되었고, 기존 검색 엔진 시장을 잘 유지하면서 좋은 평을 받았다.

다만 챗GPT의 등장은, 예고되지 않은 큰 한방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MS)가 오픈AI 기술을 적용해 다양한 제품들을 차례로 발표했다. 그러나 선다 피차이는 AI 경쟁에서 초반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면서 경쟁자들에게 뒤쳐졌다.

이런 태도에 대해 노스스타 자산운용 최고 투자 책임자 님릿 강은 "매우 강력한 운영자지만 전략적 사고와 비전을 지닌 사람은 아니다"면서 "회사는 장기적 미래를 위해 단기적 고통을 감수하더라도 스스로 혁신해야 하지만 적어도 우리가 보기에 그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느껴진다"고 전했다.

급격한 AI 기술 발전은 곧 구글의 검색 엔진 생태계까지도 위협했다. 늦은 시기 결단을 내린 구글은 MS를 따라잡기 위해 한꺼번에 많은 제품을 쏟아냈다. 일각에서는 검색 엔진을 뺏기지 않기 위한 조바심으로 선두주자가 되기 위해 기술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은 채 시장에 일찍 내놓는데 급급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웨드부시 증권의 상무이사 댄 아이브스는 구글이 현실에 안주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높은 판돈의 포커 게임인 AI 시장에서 구글이 패배하고 있다면서 구글이 접근 방식을 바꿔 AI 시장을 쫓을 수 있는 리더십으로 구성된 군대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방식에 대해서 마리사 메이어 전 구글 부사장은 “그들은 시장 선도자가 아닌 도전자의 사고방식을 택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한 이러한 오류들에 대해 책임을 지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IT 전문 뉴스레터 '스트래처리'의 벤 톰슨 설립자는 "피차이 CEO를 포함해 제미나이가 이렇게 되도록 방치한 책임자들을 해임하는 정도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미 투자은행 번스타인의 마크 슈물릭은 "최근 사태는 현재 구글 경영진이 구글을 다음 시대로 이끌기에 적합한지에 대한 의문을 키우고 있다"고 짚었다.

선다 피차이가 리더십 논란에 휩싸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8년에는 구글 부사장급 임원 12명이 그에 대해 "중요한 결정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서 "임원들의 피드백이 무시되는 것 같다"는 내용의 메일을 보냈다. 2013년부터 구글에서 근무해온 노엄 바딘은 지난해 2월 회사를 떠나면서 "왜 구글을 떠나느냐는 질문보다 왜 이렇게 오래 머물렀느냐는 질문이 더 적절하다"면서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려 할수록 혁신과 도전은 악화할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 가운데 구글과 딥마이드, 오픈AI 등을 거친 아르빈드 스리니바스 퍼플렉시티 CEO는 X(트위터)를 통해 "피차이는 (구글 모회사) 알파벳 CEO이기도 하다”면서 “그가 구글 CEO를 임명하기에 가장 좋은 위치에 있다"고 말했다. 이는 그가 사임할 시기라는 점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제미나이. 사진=구글
제미나이. 사진=구글

한편 AI 경쟁과 함께 챗봇 시장이 커지면서 기존 검색 시장 규모가 축소될 전망이다.

시장조사기관 가트너는 생성 AI와 챗봇 서비스의 등장으로 2026년까지 기존 검색시장 규모가 25% 축소할 것으로 예측했다. 비즈니스인사이더는 "구글이 이러한 현실을 파악하고 느리지만 새로운 AI 기반 검색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면서도 "시장에서는 구글의 장기적인 전망과 피차이 CEO가 현재 직면한 난관을 헤쳐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