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스포저(위험 노출)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전체 자산에서 (해외 부동산 투자는) 굉장히 낮은 비중이기 때문에 시스템 리스크를 가져올 상황은 아니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2월 22일 통화정책방향 결정 회의 뒤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국내 금융사들의 해외 상업용 부동산 부실 문제에 대해 “우려할 수준은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이날 김병칠 금융감독원 전략감독 담당 부원장보도 브리핑에서 “상업용 부동산이 상당 폭 하락할 것이라고 가정해 스트레스 테스트(자산 건전성 심사)를 해본 결과 규제 비율을 하회하거나 위험성이 발생하는 금융회사는 나타나지 않았다”며 “개별 금융회사 차원에서도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상업용 부동산을 중심으로 해외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서 해외 부동산에 투자한 국내 금융사의 부실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금융당국은 금융권의 해외 부동산 대체투자 규모가 총자산의 1%도 되지 않는 만큼 금융 시스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판단했다.

 

5대 금융지주 본사.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KB금융, 신한금융, 농협금융, 우리금융, 하나금융 본사. 출처=각사
5대 금융지주 본사.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KB금융, 신한금융, 농협금융, 우리금융, 하나금융 본사. 출처=각사

 

5대 銀 익스포저 8조…올해 만기 1.5조

지난 2월 22일 금감원은 ‘해외 부동산 대체투자 현황’을 통해 지난해 9월 말 기준 금융사의 해외 부동산 대체투자 잔액이 56조4000억원이라고 발표했다. 은행은 10조1000억원어치를 투자한 것으로 집계됐다. 전체 투자 잔액의 17.9% 수준이다. 31조9000억원(56.6%)으로 가장 많은 금액을 투자한 보험사 다음으로 비중이 높다.

3월 4일 더불어민주당 김한규 의원실에 따르면 작년 9월 말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의 해외 부동산 익스포저는 8조2264억원으로 집계됐다. 국민은행이 4조3098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하나은행 2조4755억원 ▲신한은행 9510억원 ▲농협은행 2922억원 ▲우리은행 1978억원 순이다. 이 중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익스포저는 1조5872억원이다.

국민은행은 해외 부동산 펀드의 누적 평가손실 규모를 85억5000만원 정도로 예상한다. 대출에 대해서는 45억8000만원가량의 대손충당금을 쌓았다. 신한은행은 주택저당증권(MBS)으로 보유한 자산에서 231억원 수준의 평가손실을 반영했다. 우리은행과 농협은행은 각각 328억원과 107억6000만원 정도의 예상 손실이 발생할 것이라고 본다.

국제금융센터가 지난 2월 공개한 ‘미국 상업용 부동산 시장 동향 및 은행권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상업용 부동산(commercial real estate·CRE)의 전체 가격은 지난 2022년 7월 고점 대비 약 11%, 도심 업무지구 오피스는 약 40% 떨어졌다. 오피스, 아파트를 중심으로 수요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오피스 공실률은 18.6%로 최근 30년간 최고 수준이다. 올해는 최대 19.8%로 정점을 찍을 전망이다. 국제금융센터는 “2009년 금융위기 이후 저금리 기반으로 발생한 대규모 CRE 대출 만기가 올해부터 2027년까지 집중돼 은행 등 대출기관의 동반 부실화가 우려된다”고 했다.

 

추가 부실 우려에 ‘선제 대응’ 나선 5대 금융

3월 4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금융그룹이 자기자본으로 해외 부동산 투자한 건수는 782건, 전체 원금은 20조3868억원이다. 대출 채권을 제외한 수익증권과 펀드 등 투자 건수는 512건으로 집계됐다. 원금 규모는 10조4446억원이었으나 수익률은 -10.53%를 기록해 현재 평가 가치가 9조3444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1조원 이상 평가 손실이 발생한 셈이다.

금융당국과 금융권에서는 해외 부동산 투자의 대부분이 선순위 대출인 경우가 많아 실제 리스크는 제한적일 것으로 본다. 주요 금융그룹과 시중은행은 미국 등 CRE 시장 냉각이 계속돼 부실이 추가 발생하면서 글로벌 부동산 경기가 하락할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다. 현재 운용 규모를 유지하면서 기존 부동산 대체투자 자산 모니터링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보고·관리 체계 정비, 충당금 적립 등을 통해 위기 대응 여력을 키울 계획이다.

KB금융은 그룹 차원의 대체투자 자산 모니터링 체계를 운영하면서, 해외 부동산 관련 추가 부실을 막기 위해 관리 자산을 위험 수준별로 분류해 월·분기별로 관리하고 있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보수적인 자산 건전성 분류를 통해 추가 충당금을 선제적으로 적립하면서 미래 위험에 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신한금융은 지난해 4분기부터 현장 감리 및 실사를 거쳐 선제적으로 모니터링 체계를 갖춘 상황이다. 계열사별 리스크 판단 기준과 근거를 점검하며 부동산 금융 한도 관리 기준을 세분화하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지난달 신한금융이 발행한 4000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도 해외 부동산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 중 하나다.

신한금융 관계자는 “현재 해외 부동산 현황과 투자 국가별 위험도를 고려해 해외 부동산 투자 세부 기준을 정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한은행의 경우 “선순위 대출 투자에 집중했던 기존 방식대로 앞으로도 선순위 대출 투자에 집중할 계획”이라며 “필요시 대출 일부 상환 방식을 통해 리스크를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나금융은 올해 초 해외 부동산 투자 사전 심의 기구인 ‘해외 대체 투자 평가위원회’를 신설해 투자 초기 단계부터 적극적인 위기관리에 나섰다. 위원회는 기업금융(IB) 전문가의 사업성 분석과 자문을 토대로 해외 대체 투자를 결정하고, 투자 검토 단계에서 반드시 현장 실사를 하도록 의무화했다. 리스크가 크다고 판단되는 미국과 유럽 지역 상업용 부동산 투자에 대해서도 보수적 원칙을 도입해 당분간 신규 투자를 중단하도록 했다.

하나은행의 경우 지난해 말 약 2조5000억원의 투자 잔액 중 95%가 선순위 대출이라 손실 가능성이 작고, 안정적인 자산 운용이 가능하다고 본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해외 부동산 대체투자 자산의 총량 및 기초자산의 편중도를 고려한 포트폴리오를 구성 중”이라며 “기존 체계를 정비하고 더욱 보수적인 리스크 관리에 초점을 맞출 계획”이라고 밝혔다.

우리금융은 월별 위기대응협의희‧경영협의회를 통해 해외 부동산 자산에 대한 위험 요인에 대응하고 있다. 각 자회사가 보유 중인 해외 부동산 자산을 월 단위로 모니터링하고 관리 현황을 매월 그룹 회의 때 보고 하도록 하는 등 그룹 차원의 관리 체계를 강화했다. 우리금융 관계자는 “해외 부동산 투자 현황을 모니터링하고 투자 잔액 등을 평가해 상반기 내 리스크 가이드를 마련할 예정”이라고 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해외 부동산 투자나 대출 취급 건 중 연체가 발생한 채권이나 담보 가치가 하락한 자산을 집중적으로 관리하고 있다”며, “부실 자산에 대해서는 선제적으로 충당금을 적립하고, 빠른 자산 매각을 통해 손실을 최소화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NH농협금융도 해외 부동산에 대한 전수 감리 등 지속적인 점검을 실시하고 있다. 건별 사업성을 판단해 추가 출자, 리파이낸싱, 자산 매각 등 출구 방안을 다각도로 모색 중이다. 농협금융 관계자는 “충당금을 추가 적립하는 등 손실 흡수 능력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해외 부동산 투자는 최근 문제가 되는 홍콩 주가연계증권(ELS)과 달리 회복될 여지가 충분하다”며 “현재 위험성이 과하게 평가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언급했다. 그는 “은행은 해외 부동산 투자를 보수적으로 운용하기 때문에 선순위인 경우가 많아 손실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후순위로 투자한 금융사의 손실을 우려했다.

해당 관계자는 “현재 고금리 상황이 계속되며 상업용 부동산 부실 문제가 발생했는데, 금리가 낮아지면 손실 가능성과 크기가 줄어들 수 있다”며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회복 시점과 규모를 예측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