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HBM3E 제품. 출처= SK하이닉스
SK하이닉스 HBM3E 제품. 출처= SK하이닉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3세대(HBM2E) 제품까지 시장을 양분했으나, 4세대(HBM3) 제품을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에 독점 공급하면서 시장의 판세가 기울어졌다. 업계에선 SK하이닉스의 패키징 기술력과 협업이 엔비디아 채택의 주된 요인으로 분석하는 한편, 차세대 HBM 시장에서 삼성전자에게도 기회가 주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4일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SK하이닉스의 HBM 시장 점유율은 2022년 50%에서 2023년 53%로 증가했고, 삼성전자는 40%에서 38%로 감소했다. SK하이닉스는 HBM3를 사실상 독점하고 있음에도 점유율 상승폭이 3%포인트에 그친 것이다. 

이는 이전 세대인 HBM2와 HBM2E가 아직 시장의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기 때문이며, 이것은 HBM2E까지만 해도 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점유율 차이가 크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SK하이닉스가 2013년 세계 첫 HBM을 개발한 이후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는 경쟁적으로 HBM에 뛰어들었고, 시장을 나눠 가졌다. 그러나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로 삼성전자가 HBM과 GDDR(그래픽용 D램) 중 GDDR에 좀 더 힘을 준 반면, SK하이닉스는 HBM에 집중하면서 성패가 갈렸다. SK하이닉스는 우직하게 HBM을 연구했고 마침내 독자적인 패키징 기술을 개발했다. 

SK하이닉스, 패키징 기술과 협업으로 엔비디아에 독점 공급 

SK하이닉스가 작년 HBM3 시장을 사실상 모두 장악할 수 있었던 건 엔비디아에 독점 공급했기 때문이다. 엔비디아는 현재 그래픽처리장치(GPU) 시장에서 점유율 90% 이상을 차지하는 기업으로, 엔비디아의 최신 GPU인 H100에 SK하이닉스의 HBM3가 사용되면서 SK하이닉스가 관련 시장을 점령했다.

엔비디아가 SK하이닉스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 업계는 크게 두 가지 이유를 꼽는데, 우선 패키징 기술력이 있다. SK하이닉스는 3세대부터 자체 개발한 패키징 기술인 ‘몰디브 언더필(MR-MUF)’을 도입했다. 이 기술은 기존 패키징 기술인 ‘열압착 비전도성접착필름(TC-NCF)’보다 열전도율을 높이는 동시에 공정을 간소화해 생산 효율을 개선한다. 

반면 삼성전자는 리플로우 시 발생하는 ‘칩 휘어짐’ 현상으로 인해 TC-NCF 방식을 사용 중인 것으로 파악되는데, 생산성 측면에서 MR-MUF 방식이 더 뛰어난 것으로 평가된다. 리플로우란 여러 개 칩을 한꺼번에 집어넣은 다음 열을 가해 납을 녹이면서 때우는 것으로, MR-MUF 과정 중 하나다.  

SK하이닉스가 채택된 또 한 가지의 이유는 협업이다. 

HBM은 기존 D램과 달리 맞춤형 반도체다. HBM은 GPU를 지원하기 위한 메모리로, 각사의 GPU에 맞게 생산된다. 그렇기에 개발단계에서부터 엔비디아와 오랫동안 협업한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에게 보다 최적화된 HBM을 제공하는 것이 가능했다. 

이형수 HSL파트너스 대표는 “HBM이 맞춤형 반도체이기 때문에, 엔비디아와의 오랜 협업은 SK하이닉스에게 중요한 경쟁력 중 하나다”라고 말했다. 

고객 다변화와 파운드리에서 온 기회

향후에도 엔비디아가 AI 가속기(GPU 포함) 시장에서 시장 지배적 지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이나, 수많은 기업들이 AI 가속기 시장을 두드림에 따라 삼성전자에게도 기회가 올 것으로 기대된다. 

미즈호증권에 따르면 엔비디아가 GPU 시장에서 앞으로 5년 동안 75~90% 사이의 점유율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상당한 점유율이나 현재 90% 이상인 점유율에서 상당히 떨어질 수 있음을 내포한다. 

AI 발전에 가속도가 붙고 관련 서비스가 급속히 퍼지면서 AI 가속기 시장은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AMD와 인텔은 AI 가속기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으며, 마이크로소프트와 메타 같은 빅테크들은 자체적으로 AI 가속기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이뿐만 아니라 리벨리온, 사피온, 퓨리오사AI처럼 AI 가속기 유니콘 기업들도 등장하고 있다. 따라서 삼성전자는 SK하이닉스와 엔비디아가 그랬던 것처럼 이들과의 긴밀한 협업을 통해 보다 최적화된 HBM을 제공함으로써 차세대 HBM 시장에서의 점유율 증가를 노려볼 수 있다. 

삼성전자는 이를 위해 작년 12월 ‘메모리 상품기획실’을 신설했다. 메모리 상품기획실은 제품 기획부터 사업화 단계까지 전 영역을 담당하며 고객 기술 대응 부서를 하나로 통합해 만든 조직이다. 그동안 분산되어 있던 동향 분석, 상품 기획, 표준화, 사업화, 기술 지원 등 모든 기능이 상품기획실로 흡수됐으며, ‘개별화된 요구’에 적극 대응함으로써 반도체를 보디 ‘맞춤형’으로 고객에게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 삼성전자의 파운드리가 HBM에게 기회를 가져다 줄 수 있다. HBM4부터는 일부 공정이 현재까지 활용되는 D램 공정이 아닌 7나노(㎚) 이하 첨단 파운드리 공정으로 전환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는 생산을 위해 별도 파운드리 업체를 활용해야 하지만 삼성전자는 자체적으로 생산이 가능하다. 비용과 효율 측면에서 우위에 있는 셈이다.

이형수 대표는 “HBM4의 로직다이 생산은 4나노 공정까지 내려가게 되는데, SK하이닉스는 4나노 공정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TSMC와 협력하는 것이다”라며 “삼성전자는 4나노 공정이 있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HBM4 로직다이를 만드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원가경쟁력에 대해서는 “삼성전자가 4나노 공정에서 수율이 잘 나올 경우에 원가경쟁력이 생길 것이다”라며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