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PBR(주가순자산비율)은 2월 28일 종가 기준 1.41이다. 반면 대만 TSMC는 5.23, 미국 애플은 37.80에 달한다. 같은날 기준 현대차는 0.82로, 테슬라(9.55배)는 물론, 일본 도요타(1.26배)와 비교해도 PBR이 매우 낮다. 

KB금융의 PBR(0.44배)은 미국 JP모건(1.67배)의 4분의 1, 일본 미쓰비시UFJ파이낸셜(0.9배)의 절반 수준에 그친다. 유통업에서도 롯데쇼핑(0.25배)보다 미국 월마트(5.75배), 일본 패스트리테일링(6.33배)의 PBR이 훨씬 높다.

증시의 화두가 되고 있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에서 가장 많이 거론되는 PBR(주가순자산비율·Price Book value Ratio)은 주식 1주의 가격을 주식 1주당 기업 자산 가치(BPS)로 나눈 것으로, 기업이 지닌 자산에 비해 주가가 어느 정도인지를 판단하는 척도다. PBR이 1 미만일 경우 주식 시장에서 해당 기업은 당장 청산했을 때보다도 낮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뜻이 된다.

금융위원회가 2월 26일 발표한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에 대해 "맹탕이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 등의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금융위 발표 내용의 골자는 상장사가 스스로 매년 지배구조, 자본수익성 등의 기업가치를 개선할 계획을 세워 거래소에 자율 공시하고, 이를 성실히 이행해 기업 가치 개선 성과가 뛰어난 기업에게는 투자장려, 세제지원, 우수기업 표창, 모범납세자 선정 우대 등의 혜택을 부여하는 것 등으로 요약된다.

기업의 자율성에 맡긴데다가 배당세·법인세·상속세 개편이나 주주 권익을 보호하는 상법개정안 등이 빠졌다는 점에서 증시 투자자들의 실망감이 나오는 것은 이해가 가는 대목이기도 하다.

비판과 지적이 쏟아지자 이번에도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진화에 나섰다.

2월 28일 여의도에서 열린 모 행사에 참석한 이 원장은 "주주환원 등 일정 기준에 미달하는 상장사는 증권 시장에서 적극적으로 퇴출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앞서 금융위원회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는 기업에 대해 "페널티(불이익)는 없다"고 밝힌 것과 배치되는 발언이다. 금융위가 발표한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이 인센티브나 강제성이 없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감안한 발언일 것이다.

주식시장에서의 기업 가치가 제대로 평가 되도록 하기 위해 금융당국 주도가 아닌 범정부적 차원에서 근본적 고민을 다시 하기를 바란다. 주식 시장에서 평가되는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기업의 펀더멘털을 강화할 수 있는 근본적 지원 정책이 수반되야 하기 때문이다. 

증권가의 리서치센터에서는 저(低)PRB 종목 대신 자기자본수익률(ROE)과 총자산회전률에 대한 언급이 많이 나오고 있다. 기업 가치를 높게 평가받기 위해서는 기업의 수익성과 효율성을 높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놓고 보면,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기업 밸류업 정책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기업들의 이야기를 많이 참고해야 한다. 

SK그룹은 '거문고 줄을 고쳐 맨다'는 '해현경장(解弦更張)'의 각오로 20년만에 '토요 사장단 회의'를 다시 열었다.

최창원 수펙스추구협의회(수펙스) 의장을 중심으로 수펙스 소속 임원들은 매달 두 차례 금요일에 쉴 수 있는 유연근무제마저 반납했다. 인공지능(AI) 시대 개막과 함께 AI 반도체 주도권을 손에 쥐기 위해 인텔, 엔비디아, 마이크론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간 공조가 확대되면서 SK그룹 역시 쇄신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차세대 성장 동력에 있어 글로벌 기업과의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에데서도 SK하이닉스는 HBM(고대역폭메모리) 공정 국산화를 시도하는 등 국내 밸류체인 강화에도 적극적으로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국내 증시의 핵심 축 가운데 하나인 이른바 '소부장' 기업들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며 확실한 기업 밸류업 지원이 될 것이란 기대감이 높아진다. 

방산을 주축으로 해온 한화그룹 역시 한화정밀기계를 중심으로 HBM 제조장비(하이브리드본더) 개발에 뛰어들며 떠오르는 산업에서의 경쟁력 확보에 승부수를 던졌다.

효성 그룹 역시 2개 지주사로 체제로의 재편을 추진하며 미래 사업 발굴에 적극 나서고 있다. 

조현상 효성 부회장은 2월 29일 서울 상의회관에서 열린 서울상공회의소 정기의원총회 참석 후 "추후 신설 지주회사 사업 계획을 발표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취지의 언급을 했다. 효성첨단소재를 주축으로 글로벌 소재 전문 기업으로서의 입지를 더욱 탄탄히 하는 한편 미래 성장 동력을 강화하기 위해 앞으로 신설지주가 선택할 방향에 자본 시장에서도 큰 관심을 두고 있다.

사실, 기업의 가치평가를 인위적으로 높여보겠다는 정책적 방향 자체가 애시당초부터 맞지 않는 이야기일지 모른다. 투자자들은 잠깐의 이벤트에 현혹돼 자신의 돈을 장기적으로 묻어둘만큼 어리석지 않기 때문이다.

진정성 있는 기업 밸류업 정책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금융당국 뿐 아니라 범정부가 모두 나서 기업 성장 지원에 필요한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이를 토대로 보다 현실성 있는 방안을 고민하는게 순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