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영구·국민·행복주택을 통합한 ‘통합공공임대주택’에도 민간 건설사의 브랜드를 적용한다. 분양형이 혼합되지 않은 임대주택에도 유명 브랜드를 써야 수익성을 제고할 수 있어서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관련 사업을 기존에 걸리던 기간보다 수개월 줄이겠단 구상이지만 중소 건설사를 제외하면 업계의 반응은 냉담하다.

26일 입수한 ‘민간참여사업 추진계획’ 내부 자료 등에 따르면 LH는 인천 검단(AA19)과 경기 남양주왕숙(A-03) 등 수도권에서 착공 선도지구로 지정한 곳에 들어설 통합공공임대주택에 유명 브랜드를 적용하기로 했다.

2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의 한 임대주택 건설 현장. 사진=이혜진 기자
2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의 한 임대주택 건설 현장. 사진=이혜진 기자

인근의 경기 부천 대장(A5BL∙A6BL)지구는 통합임대주택이 아닌 혼합형(분양+임대)으로 공급된다. 이런 임대주택엔 현재 유명 브랜드가 적용되고 있는데 관련 범위를 넓히겠단 게 정부의 구상이다.

브랜드 가운데서도 고급 브랜드가 아닌 메인 브랜드만 임대주택에 적용하기로 했다. 현대건설을 예로 들면 ‘디에이치’가 아닌 ‘힐스테이트’를 통합임대주택에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LH는 지난해 이미 혼합형, 이른바 ‘소셜 믹스’로 불리는 임대주택에 건설사의 메인 브랜드를 달았다”며 “이제 건설사가 참여하지 않고 있는 임대 블록의 아파트에도 유명 브랜드를 달 것”이라고 말했다.

가장 큰 사업 지구인 AA19의 민간사업비는 2667억원이다(LH 추산). LH는 AA19블록과 A5BL∙A6BL블록을 묶으면 대형∙인접화로 건설사의 공사비를 줄일 수 있단 분석이다. 이렇게 통합임대주택이 들어서는 다른 지역도 하나의 권역으로 묶기로 했다.

이런 ‘동일∙인접지구 결합형’ 모델 외에 ‘토지 현물보상형’이라는 방식을 만들어 일부 건설사에 제안했다. 보상형은 건설사에 땅을 제공하고 업체와 현물(금전 이외의 자산)을 서로 교환하는 방식이다.

공모기준은 ▲공사비 현실화 및 증액기준 개선 ▲참여부담 완화 ▲부∙분담금 면제 측면에서 바꾸기로 했다. 이 중 증액기준을 바꾸겠단 건 LH와 건설사의 관련 협약 시점부터 임대주택 공사를 끝내기 전까지 물가연동제를 반영하겠다는 뜻이다. 이에 앞서 정부는 지난해 11월 ‘민간참여 공공주택사업 시행지침 16조’을 개정했다. 협약부터 준공 시점까지 물가변동으로 인한 사업비 조정에 대한 사항을 협약서에 규정하게 하는 내용이 골자다.

착공 선도지구 외에 LH가 올해 임대주택 공모 후보지로 승인한 지구는 14곳(1만1522채)이다. 경기에서만 왕숙(6146채)과 평택고덕국제화지구(2145채)에 5곳씩 승인하는 등 총 11개 지구다. 지방에서는 경남 양산의 덕계(600채)∙사송(1307채)지구에 각각 1곳, 2곳씩 임대주택을 공급한다. 14곳 중 A-25블록을 뺀 왕숙지구와 Aa-20-1블록이 제외된 고덕지구에 통합임대형이 공급된다.

LH는 조립식(모듈러) 주택과 같은 OSC(Off-site Construction·공장 생산 건설) 방식을 가점 항목으로 추가한다. 정부가 OSC 공법을 확산하려는 기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LH는 관련 부서와 가점 항목 추가에 대한 내용을 검토하고 있다. 그동안 여러 대형 건설사들은 건축비를 줄이기 위해 모듈러 건축 관련 사업을 확장해왔다.

그러나 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대형사뿐만 아니라 중견사들도 자사 브랜드를 통합임대주택에 적용하는 것을 꺼리고 있다. 공공임대주택 사업에서 ‘대규모 프로젝트가 필요하다’는 LH의 공식 입장에도 중소 업체들이 “지역 업체와 소규모 기업도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는 것과 대비된다.

또 업계에 따르면 LH는 전날 오후에 비공개로 연 설명회에서 중견 이상 업체들의 브랜드 적용을 강제 사항으로 규정하지 않은 사실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지만, 의무가 되도 이미지 훼손이 우려된다며 사업 참여를 꺼리는 중견 이상 건설사가 적지 않다. 이번에 브랜드 적용이 확대될 통합임대주택은 혼합형 임대주택보다 사회적 취약 계층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입주민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단지 이미지를 동일시하는 만큼 이런 곳에 브랜드를 적용했다간 기업 가치가 추락하는 게 현실이란 것이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혼합형에 사는 사람들도 단지명에 LH의 브랜드(안단테)가 적용되는 걸 싫어하니, 건설사들이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추구하고 있음에도 LH의 요구에 울며 겨자먹기로 브랜드를 넣는 것”이라며 “그런데 분양 없이 임대로만 공급되는 단지에 아직 브랜드 적용을 강제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어느 정도 인지도를 갖고 있는 브랜드를 가진 업체 중 어떤 곳이 브랜드 적용을 원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그럼에도 LH가 중소 건설사를 꺼리는 이유는 수익성 등으로 인한 브랜드 문제도 있지만, 그보다 지난해 검단 주차장 붕괴 사태로 인해 민간참여사업을 2~3개밖에 못했을 만큼 안전 관리에 전보단 신경을 쓸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며 “그간 중소 건설사들이 중견 이상 업체들보나 안전 사고를 더 많이 일으켰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