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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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AI(인공지능) 시대다. 일각에선 6년 만에 AI 반도체 시장이 20배 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 삼성전자는 이러한 훈풍에 파운드리 선단공정에서 수주가 들리기 시작했고, 메모리 반도체는 기나긴 터널을 지나 올 1분기 흑자전환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급격한 시장 성장과 함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면서 AI 반도체 시장에서 장기적으로 ‘불확실성’에 맞닥뜨리게 됐다. 

AI 반도체 시장 폭발적 성장

23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엔비디아의 지난해 4분기 매출액과 총이익은 각각 221억달러, 122억9000만달러로 지난해 동기 대기 265%, 769% 급증했다. 엔비디아는 매출 증가가 H100과 같은 서버용 AI 칩 판매 호조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는 “가속 컴퓨팅과 생성형 AI가 임계점(tipping point·티핑 포인트)에 도달했다”며 “전 세계적으로 기업, 산업, 국가 전반에 걸쳐 AI 칩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AI의 발달과 확산은 시장 예상을 연이어 뛰어넘고 있다. 챗GPT 제작사 오픈AI는 텍스트로 명령어를 입력하면 고화질 영상을 만들어내는 서비스 ‘소라’를 공개했다. 해당 서비스가 공개되자 중국의 인터넷 보안 기업 치후360 창립자인 저우훙이는 “소라가 광고와 영화 예고편 업계를 완전히 흔들 것”이라며 인간 지능에 가까운 인공범용지능(AGI) 구현에 필요한 기간이 10년에서 1~2년으로 단축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미국 AI 스타트업 그로크는 최근 ‘언어처리장치(LPU)’를 출시했다. 이 제품은 거대언어모델(LLM)의 추론·응답 속도를 높이는 AI 가속기로 그래픽처리장치(GPU)보다 더 빠른 속도를 갖췄다고 평가된다. LPU를 탑재한 오픈AI의 ‘챗GPT’나 구글의 ‘제미나이’를 사용하면 1초도 안 되는 시간에 영어 기준 수백 단어의 답변을 받을 수 있다. 향후 생성형 AI 서비스 이용자 급증으로 처리 속도가 느려질 것으로 예상되는데, LPU를 이용할 경우 그러한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기대되면서 AI 확산에 더욱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올해 초 세계 최초 온디바이스 AI 스마트폰인 갤럭시 S24가 공개된데 이어 중국의 오포가 올해 2분기까지 OPPO AI 지우개 기능을 포함한 고급 생성형 AI 기능을 전 세계 모든 리노11 시리즈에 적용할 계획이다. 여기에 샤오미, 화웨이 등 다른 중국 업체들도 올해 중으로 AI 기능을 자사 디바이스에 탑재할 예정이다. 

AI가 기대 이상으로 빠르게 발전하고 퍼지면서 AI 서버 운영에 필수적인 AI 반도체 수요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이미지에서 영상으로 생성형 AI 서비스가 확대되고, 생성형 AI 서비스가 개발 단계(학습 단계)에서보다 사용자 이용 과정(추론 단계)에서 더 많은 AI 반도체를 필요로 한다는 점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이형수 HSL파트너스 대표는 “현재 생성형 AI는 텍스트와 이미지 기반인데, 이것이 영상으로 넘어가게 되면 현재보다 수십, 수백배 더 높은 컴퓨팅 파워가 필요할 것이다”라면서 “영상을 포함해 인간 오감에 해당하는 멀티모델을 상용화하기 위해선 지금보다 더 높은 수준과 더 많은 양의 AI 반도체가 필요하다. 이 때문에 샘 올트먼도 자체 AI칩을 개발하려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KB증권에 따르면 AI 반도체 시장 규모는 2024년 70억달러 수준에서 2030년 1400억달러 규모로 6년 만에 20배 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김동원 연구원은 “글로벌 AI 반도체 시장 규모는 급성장할 것으로 추정되며 향후 수 년간 AI 반도체는 시장의 메가 트렌드로 부각될 전망이다”라고 말했다. 

올해 HBM 매출↑, 문제는 HBM4

현대의 컴퓨터는 구조상 메모리와 처리장치로 이뤄져 있으며 이는 AI서버도 마찬가지다. 다만 AI서버는 고속 연산이 필요하다는 점 때문에 메모리에선 HBM(고대역폭메모리)이 처리장치에선 AI 가속기(GPU, NPU, LPU 등)가 필요하다. 

삼성전자는 HBM 생산업체인 동시에 AI 가속기 제조업체(파운드리)라는 점에서 AI 훈풍에 수혜를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당장 삼성전자는 올해 HBM 공급량을 지난해에 비해 2.5배 늘릴 계획이다. 작년 4분기 삼성전자는 재고 조정과 HBM 판매 증가에 힘입어 D램 사업이 흑자전환했는데, 올해에 이런 흐름이 지속되면서 흑자폭이 더욱 커지고, 전체 메모리 사업부 또한 흑자전환할 것으로 업계는 내다본다. 

선단 파운드리에서도 삼성전자는 빛을 보기 시작했다. 일본의 AI 유니콘 기업인 프리퍼드네트웍스(PFN)가 2나노 공정 기반 AI 반도체 생산을 삼성전자 파운드리에 위탁했으며, 앞서 소개한 그로크의 LPU 또한 삼성전자 파운드리에서 4나노 공정을 기반으로 생산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몇 년 뒤다. AI 반도체 시장이 급속도로 커짐에 따라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오는 2026년부터 양산 예정인 6세대 HBM(고대역폭메모리)인 ‘HBM4’완 관련해 TSMC와 협력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HBM은 빠른 데이터 처리 속도를 위해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쌓은 최신 메모리 제품으로 복잡한 제조 공정이 필요하다. 업계는 SK하이닉스가 선단 공정에서 가장 앞선 기술력을 보유한 TSMC에 제조 공정의 일부를 맡김으로써 전력 효율성을 높이고 다양한 선단 공정을 활용해 HBM의 기능을 높이겠다는 의도를 가진 것으로 풀이한다.
 
구체적으로 D램 적층부 맨 아래, 즉 HBM 최하단에 있는 로직다이(베이스 다이) 생산을 TSMC에 맡길 것으로 보인다.

현재 HBM에서는 SK하이닉스가 삼성전자를 앞서고 있다는 평가가 주류다. 이에 삼성전자는 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하며 SK하이닉스를 따라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실제 이달 개최된 반도체 학술대회인 ‘ISSCC 2024’에서 삼성전자는 HBM4의 대역폭이 전작인 5세대 HBM(HBM3E)보다 66% 늘어난 초당 2테라바이트(TB)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TSMC와의 협력으로 SK하이닉스가 6세대 HBM에서도 삼성전자를 앞설 수 있어 삼성전자의 앞날을 마냥 좋게 볼수만은 없다. 

인텔, 아메리카 원팀 지원에 삼성전자 추격

또한 선단 파운드리에서도 인텔이 미국을 등에 업고 본격적으로 뛰어들어 장기적으로 낙관할 수 없다. 

현지시간 21일 인텔은 ‘인텔 파운드리 서비스(IFS) 2024’ 포럼을 열고 파운드리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1.4나노미터 초미세 공정을 2027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삼성전자의 도입 목표 시점과 같은 해다. 

인텔이 무서운 이유는 기술보다도 생산능력, 고객사 확보 그리고 미국의 지원에 있다. 7나노 공정에서도 좀처럼 수율을 잡지 못한 인텔이 1.4나노에 돌입하겠다는 발표에 업계는 그 기술력에 의문을 품고 있다. 다만 인텔은 하이NA EUV 초기물량 6대를 세계 유일 EUV 장비사인 ASML으로부터 우선 공급 받는다. 현 추세대로라면 인텔은 2025년 초에 마지막 장비를 인도받게 되며 삼성전자가 하이NA EUV를 확보하는 시점은 2025년 중순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하이NA EUV는 기존의 불화아르곤(ArF) 노광 기술에 비해 파장이 짧아 보다 정밀한 패턴을 구현할 수 있어 2나노 미만 공정에 더 적합한 기술이라고 평가된다. 다만 공정이 복잡하다는 단점이 있다. 

IFS 2024에서 인텔은 총 150억달러에 달하는 수주를 확보했다고 공개하며, 이 중에는 마이크로소프트로의 1.8나노(18A) 수주도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행사장에 원격으로 등장한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는 “가장 발전된 고성능·고품질 반도체를 안정적으로 공급해야 하는 필요성이 인텔과 협력하게 된 이유”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더해 인텔은 1.8나노에서 4개의 대형 고객들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이 4개의 고객사들이 퀄컴 등 미국 기업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미국에 본사를 둔 팹리스의 일감 몰아주기 가능성이 존재하며, 미국 정부는 인텔에 100억달러 이상의 보조금을 지원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상당히 복합적인 상황에 직면했다”면서 “AI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함에 따라 수혜를 입을 것으로 기대되지만, 장기적으로 AI 반도체 시장에서 승기를 잡기 위해선 인텔과 SK하이닉스 등 경쟁사들을 따돌려야 하는 숙제를 떠안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