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증시의 대표 주가지수인 닛케이평균이 종가 3만9098.68엔으로 거래를 마치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사진 = 연합뉴스.
일본 증시의 대표 주가지수인 닛케이평균이 종가 3만9098.68엔으로 거래를 마치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사진 = 연합뉴스.

일본 증시가 무서운 기세로 상승장을 이어가고 있다. 닛케이225 평균주가(이하 닛케이지수)는 34년 전 버블 경제 시기에 기록한 역대 최고치를 넘어섰다.

23일 도쿄증권거래소에 따르면 닛케이지수는 전날 2.19% 오른 3만9098.68로 장을 마감했다. 닛케이지수는 앞서 버블 경제 시절인 1989년 12월29일에 종가 3만8915, 장중 3만8957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바 있다. 최고치 기록을 바꾸기까지 무려 34년2개월의 세월이 걸렸다.

닛케이지수는 올 들어 이미 16%가량 상승하는 등 강세 흐름을 보여왔다. 같은 기간미국 S&P500지수가 약 5% 상승, 코스피지수가 0.07% 하락한 것과 대조적이다.

이날은 엔비디아 등 미국 주요 반도체 업체들의 실적이 시장 예상치를 웃돌면서 일본 증시에 관련주들의 매수세가 몰렸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엔비디아의 실적 호조세에 힘입어 반도체 관련주에 매수 주문이 유입된 데다 수출 관련주도 엔화 약세의 지지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강세 이끈 요인은?

지난해부터 이어진 일본 증시의 강세 배경에는 2가지 요인이 꼽힌다.

우선 일본은행의 완화적 통화정책 영향에 따른 엔화가치 약세로 덕분에 수출 기업들의 이익이 대폭 늘었다. 

달러-엔 평균 환율은 지난 2021년 평균 109.75엔에서 현재 150엔 수준으로 가치가 크게 떨어졌다. 엔화가치가 떨어지면 수출기업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진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올 1분기 일본 상장사 1020곳의 순이익 전망치는 총 43조5000억엔(약 384조6000억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가 예상된다.

이 기간 매출 대비 순이익률도 5.8%를 기록해 코로나19 팬데믹이었던 2022년 1분기를 제외하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사상 최고 수준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 기업들의 주당순이익(EPS)은 2012년 말에 비하면 2.8배 증가해 미국(2.1배), 유럽(1.5배)에 비해 크게 늘었다고 전했다.

일본 금융당국의 주주친화 정책 유도와 비과세제도 변화에 따른 소액 투자 활성화도 지수를 밀어올린 주요인이다.

2022년 일본 정부는 주식시장을 대대적으로 개편하면서 기존 5개 시장을 ▲프라임 ▲스탠더드 ▲그로스 등 3개로 나눴다. 시가총액 및 유통주식비율 등의 기준으로 재편해 국내외 투자자들이 직관적으로 시장을 구분하고 접근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는 평가다. 

지난해 도쿄·오사카증권거래소를 운영하는 일본거래소그룹(JPX)은 3300여개 상장사에 공문을 보내 "주가순자산비율(PBR)이 1배를 밑도는 경우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한 구체 방안을 공시하고 실행해 달라"고 요구했다. PBR은 주가를 주당순자산가치로 나눈 값이다. 이 값이 1배보다 낮다는 건 회사가 가진 자산 가치에 비해 주식시장에서 평가받는 가치가 낮다는 의미다.

JPX는 "PBR 1배 미만 상태가 계속되면 2026년 상장폐지 목록에 오를 수 있다"고도 했다. 돈을 쌓아놓지 말고 적극적으로 주주환원에 나서라는 '경고'인 셈이다. 이후 일본의 PBR 1배 미만 기업 비중은 51%에서 지난해 말 44%로 낮아졌다. 닛케이지수는 지난 한 해에만 28.24% 올랐다.

이에 더해 올해 1월부터는 신(新) 소액투자 비과세제도(NISA) 정책을 도입하며 개인들의 장기 투자 자금을 유인하고 있다. ISA 계좌는 하나의 계좌로 예·적금은 물론 주식·채권·펀드까지 투자할 수 있는데, NISA는 비과세 한도액을 연간 납입 360만엔, 누적 1800만엔(약 1억6000만원)으로 3배 늘리고 기간도 무기한으로 늘렸다.

"4만선 뚫고 훌쩍" VS "차익매도에 조정"

34년만에 고점을 뚫은 일본 증시가 더 상승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노무라증권은 이달 15일 보고서에서 올 연말 닛케이지수 전망치를 4만으로 종전보다 5%가량 올려 제시했다. 다이와증권은 올해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추가 상승동력이 있다며 닛케이지수 전망치를 지난번 예측 때보다 3400 높인 4만3000으로 올려 잡았다.

씨티그룹은 보고서에서 일본의 디플레이션 탈출, 기업 지배구조 개선, 중국에서 일본으로의 자금 이동 등을 언급하면서 닛케이지수가 올해 연말 4만5000까지 뛸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지금보다 15% 이상 더 오른다는 것이다.

BNP파리바의 웨이 리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일본 주식에 대한 시장의 컨센서스는 '비중 확대'지만 여전히 투자자들은 ' 비중 축소' 상황"이라며 "아직 상승 초기이므로 자금 유입은 추가 상승을 지지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히라노 켄이치 케이에셋 대표는 “이번 상승세는 2025년까지 계속될 것으로 본다”며 “일본 경제나 기업의 상대적인 우위에 주목하는 해외 투자자들은 매수를 가속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켄이치 대표는 "올해는 하락 시 즉시 매수하는 투자 전략이 유효하다"며 "일본 주식은 연중 과열 상태가 지속할 것이고 연내 목표 상한은 4만2000으로 본다"고 말했다. 다만 "흐름이 급속하게 진행되는 만큼 수정할 필요가 있을지 모른다"며 여지도 남겼다.

미쓰이 이쿠오 아이자와증권 펀드매니저 역시 추가 상승을 전망했다. 그는 "오늘 장은 미국 엔비디아의 호실적을 이어받아 반도체 관련주가 강세를 보인 부분이 크지만, 근저에 깔린 것은 기업의 '돈 버는 힘'이 높아지고 있는 점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이쿠오 펀드매니저는 "1989년 버블 당시에는 일본 주식이 과대평가를 받으면서도 실질적으로 기업 이익은 수반되지 않았다"며 "그러나 버블이 붕괴한 이후 기업들은 오랜시간을 들여 착실하게 벌어들이는 힘을 길렀다"고 덧붙였다.

반면 차익실현 매도, 미국 기준금리 불확실성, 엔화가치 상승 전환, 중국으로의 글로벌 투자 자금 이동 등으로 인해 조정장에 들어갈 수 있다는 예측도 있다.

우선, 엔화 가치 상승 전환은 위험 요인으로 꼽힌다. 이제 미국이 금리를 낮추고 일본은 금리를 올리려는 상황이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는 22일 "일본은 디플레이션이 아닌 인플레이션 상태에 있다"고 해 마이너스 금리 종료가 곧 단행될 것임을 시사했다.

한국은행은 지난주 보고서에서 “올해 중 일본은행이 금리 인상으로 정책을 전환하면 이자 지급 증대 등이 기업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또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재가속하고 금리 인하 가능성이 지연되거나 연착륙 기대가 반전될 경우 미국 주가가 조정 국면을 거치면서 일본 주식시장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최근 중국 증시의 반등 조짐도 일본 증시엔 위협적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중국 증시 침체에 자금을 일부 일본 시장으로 옮겨왔는데 중국 정부가 부양책을 속속 준비하고 있어 자금 흐름은 다시 바뀔 가능성도 있다.

차익 실현 매도세가 커질 것이란 예상도 있다. 

하시즈메 고지 도쿄해상자산운용 주식운용부 부장은 "22일 오후에는 3일간의 연휴(23일 일왕 탄생일)를 앞두고 대량 매도가 나왔다"며 "앞으로의 상한선 기준이 없는 만큼 중장기적으로 어디까지 상승할지 현시점에서 가늠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또 "월말에는 연기금에서 매도가 나올 것으로 보고 주가가 크게 상승하는 전개는 예상하지 않고 있다"며 "3월은 계속해서 반도체 관련주가 물색 대상이 될 것 같지만, 3월 중반 이후로는 고배당 종목을 중심으로 배당락을 앞두고 이익확정 매도가 나오기 쉬워 전체적으로는 매매에 엇갈림이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