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 픽코마가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2016년 론칭된 후 세계 최대 만화 시장을 보유한 일본에서 2020년 7월부터 현재까지 디지털 만화 플랫폼 1위를 수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거침없이 질주하는 픽코마는 아직 멈출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앱 누적 다운로드 4000만건을 돌파한 후 연간 거래액 1000억엔을 경신하는 등 '기록은 깨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는 명언을 몸소 보여주는 중입니다. 일본 출판시장의 2023년 추정 판매수익은 코로나 이전인 2019년 대비 3.4% 증가했으나, 픽코마의 2023년 거래액은 2019년 대비 7배 증가한 수치입니다.

지난 2018년 일본 도쿄에서 만난 김재용 대표는 픽코마의 깃발을 들었던 순간을 회상하며 "런칭 초기 5명이 앱으로 들어왔었고 그 중 3명이 테스트하는 우리 직원이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랬던 픽코마가 이제는 글로벌 전략의 첨병이면서 카카오 '볼드모트'인 인도네시아 패스모바일의 그림자까지 걷어내며 승승장구하는 중입니다.

무엇이 지금의 카카오 픽코마를 만들었을까요? 무엇이 출판만화천국인 일본에서 픽코마를 '픽사마'로 만들었을까요?  

"내가 지금 봤으면 구작도 신작" 작품에 대한 철학, 그리고...
사실 카카오 픽코마의 성공 비결은 대략 알려져 있습니다. 먼저 일본 시장의 상황입니다. 일본은 1억명이 넘는 인구를 바탕으로 하는 풍부한 시장과 콘텐츠 결제에 거부감이 없는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은 식당에서 주인에게 "서비스 주세요"라고 하면 공짜 음식을 달라는 뜻이지만 일본에서 서비스란 곧 돈이 오가는 정당한 서비스라고 합니다. 이러한 흐름은 특히 디지털 콘텐츠 비즈니스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됩니다.

픽코마의 작전도 좋았습니다. 아직은 출판만화가 강세를 보이는 곳에서 입체적인 전략으로 시장 개척에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만화를 스낵컬쳐처럼 감상하는 환경’을 제시한 장면이 눈길을 끕니다. 전자책(e-Pub)형태의 전통적인 출판만화와 '노림수'인 인기 웹툰을 동시에 서비스하며 잠재적인 수요층을 확장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출판만화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출판만화를 충분히 보여주고, 그 옆에 웹툰을 슬쩍 보여주는 전략입니다. 다소 집중해 봐야하는 출판만화를 즐기는 이들에게 상대적으로 가볍게 볼 수 있는 웹툰을 보여준다? 이건 못참죠.

플랫폼 운용 철학도 눈길을 끕니다. 오리지널 IP 확보는 물론 철저한 현지화는 기본. 나아가 "아무리 구작이라도 내가 지금 봤으면 신작"이라는 명언(?)에 착안해 이용자들에게 다양한 작품을 제공하는 것을 모토로 삼는 중입니다. 작품 공개시점에 영향을 받지 않고 신작을 포함한 폭 넓은 작품들이 이용자와 만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018년 김재용 대표가 픽코마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최진홍 기자
2018년 김재용 대표가 픽코마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최진홍 기자

물 들어올 때 노도 꽤 잘 젓는 편입니다. 올 초 애니메이션으로  방송을 시작한 ‘나 혼자만 레벨업’의 웹소설과 웹툰을 일본에서 서비스하고 있는 카카오 픽코마는 일본에서 제작되는 해당 작품의 제작위원회에 참여해, 원작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는데 기여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 만화 1권을 에피소드에 따라 ‘1화, 2화…’로 나눠 제공하는 '화 분절' 방식 도입 △'기다리면 0엔' 도입 △이용자의 취향을 반영한 작품 큐레이션 △서비스제공 국가별 특화된 로컬라이제이션 △이용자의 달라진 라이프스타일, 감상 방식을 고려한 최적의 감상환경 등도 호평입니다.

조직 운영 측면에서는 물 나갈 때를 대비해 적당히 노 젓기를 조절하는 영악함도 있습니다. 실제로 팬데믹 당시 많은 디지털 플랫폼들이 호황을 누리며 고연봉의 개발자를 대거 채용하는 등 노를 과하게 저었으나 카카오 픽코마는 달랐습니다. 현장에서 많은 출판사들과 소통하는 직군만 약간 늘었을 뿐 '컴팩트'한 조직 운영을 바탕으로 신중한 조직 운영에 나섰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조직 운영도 분명 픽코마에게 큰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카카오 픽코마의 콘텐츠 라이브러리 확대를 위한 노력도 이어지는 중입니다. 다양해진 이용과 관심사와 취향을 고려한 폭 넓은 작품 라이브러리를 선보이는 동시에 작품과 이용자(독자)를 연결하는데 집중하는 중입니다. 현재, 카카오 픽코마는 일본과 프랑스에서 한국의 웹툰 작품과 현지 독자를 연결하며 다양한 가능성 타진에 나서고 있습니다.

사진=갈무리
사진=갈무리

두 개의 탑
카카오 픽코마 성공 비결 중 특별히 재미있는 관전 포인트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전자출판만화와 웹툰의 상관관계입니다.

일반적으로 디지털 전환에 방점을 찍은 플랫폼들은 '구시장'에 있던 이들을 '신시장'으로 끌어오려고 합니다. 정리하자면 오프라인 구시장을 ICT 기술로 혁신해 그 자원을 온라인 신시장으로 끌어온다는 뜻입니다. 이른바 O2O 전략. 배달앱 시장을 예로 들면, 배달앱 플랫폼들은 기존 전단지 광고(구시장)에 익숙해진 이들을 배달앱 플랫폼(신시장)으로 흡수하는 것이 목표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그걸 디지털 전환이라고 부르지요.

카카오 픽코마는 다릅니다. 우선 오프라인 구시장을 ICT 기술로 혁신하는 O2O 로드맵까지는 동일합니다. 플랫폼으로 오프라인 출판만화를 전자출판만화로 바꾸고 웹툰을 보여주는 것 자체가 ICT 기술의 힘으로 오프라인에 온라인 전략을 덧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음 단계는 사뭇 온도차이가 납니다. 전자출판만화 자원과 수요를 웹툰으로 끌어오는 것이 아니라, 두 콘텐츠 모두 카카오 픽코마의 기둥으로 삼기 때문입니다.

디지털 플랫폼 모두가 참조할만한 의미있는 사례입니다. 기존 콘텐츠를 ICT 기술로 고도화하고, 태생부터 ICT 기술이 필요한 새로운 콘텐츠를 동시에 두 개의 탑으로 삼아 서로 시너지를 일으키는 전략. 물론 출판만화왕국 일본의 특성 등을 고려한 철저한 현지화 전략 연장선이라 모든 디지털 플랫폼에 동일하게 적용할 수 없지만, 100% ICT 기술 기반의 디지털 전환만 고려하지 말고 또 다른 길이 있다는 것도 염두에 두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