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포스터.
전시포스터.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페로탕 서울 갤러리에서 2월 25일부터 미국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기하학적 추상화 작가 이상남(1953~ )의 ‘마음의 형태(Forme d’esprit)’전이 열리고 있다.

이상남은 1972년과 1974년 ‘앙데팡당(Indépendants)’전에 참여해 당시로서는 혁신적이었던 사진 매체를 활용한 ‘창문’ 시리즈를 선보였으며, 1979년에는 제15회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참가해 본격적으로 국제적인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이후 1981년 뉴욕 브루클린 미술관에서 열린 ‘코리안 드로잉 쇼’ 그룹전에 참여하면서 뉴욕으로 가게 된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중반까지 미국에서 자신의 예술의 방향을 모색하던 이상남은 기하학적 추상에서 그 길을 찾았다.

‘기하학적 추상’이란 차가운 추상이라고도 불리며, 대상의 특징을 점·선·면으로 단순화하여 표현하는 추상 표현의 한 방식이다. 대표적인 화가로는 피트 몬드리안(Piet Mondrian)이 있으며, 추상주의 중에서도 간단한 직선 등을 이용해 그림을 그리는 화파다.

‘Forme d'esprit (J311)’. 사진 제공= © SANG NAM LEE
‘Forme d'esprit (J311)’. 사진 제공= © SANG NAM LEE

이상남의 작품은 기하학적 추상화 중에서도 독창적인 특징을 갖고 있다. 수많은 점·선·면이 교차하면서도 다양한 아이콘들이 중첩되고 충돌하고 똑같은 도상들이 반복된다. 이미지 사이로 보이는 형상들은 일상적 사물이 층층이 쌓여서 축적된 사물로 보이는가 하면, 기하학적 형태로 만들어지는 음표들, 색채와 형태로 에너지의 흐름으로 보이기도 한다.

‘재현(再現)’하는 회화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낯설고 이질적인 이미지이자 정확한 형체를 파악하기 어려운 수수께끼 같은 형태로 보인다. ‘마음의 형태’라는 전시 제목처럼 그의 작품은 관람객에 시선에 따라, 관람객의 마음의 형태에 따라 자유로운 해석을 하도록 한다. 

이상남의 기호, 도상의 활용이 독창적이듯 작품 제작 과정 또한 독특하다. 초기에는 모든 것을 손에 기대어 프로토타입의 형태를 만들고 이를 평면 안으로 옮겨왔지만, 점차 컴퓨터를 이용해 프로토타입을 만듦으로써 더 많은 이미지를 추출하는 일종의 알고리즘 과정을 거친다.

수많은 기호들을 중첩해 구성한 이미지를 아크릴 물감으로 옮긴 후 그 위에 옻을 입히고 사포로 문지르는 과정을 50~100번가량 반복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결과물은 오히려 작가의 손작업의 흔적을 지우고 회화보다는 컴퓨터 그래픽을 프린팅 한 작업물처럼 보이게 한다. 일부러 ‘수제’의 흔적을 지우는 것은 ‘인공적인 매끈한 물질을 만들기 위한 노동’에 속하며 작품의 신비감을 극대화시킨다.

40여 년간 축적해 온 이상남의 독창적인 기하학적 추상의 끊임없는 변화의 과정을 볼 수 있는 전시는 3월 16일까지.

‘Blue Circle No.4’. 사진 제공= © SANG NAM LEE
‘Blue Circle No.4’. 사진 제공= © SANG NAM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