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사진=삼성중공업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사진=삼성중공업

조선업계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연이은 대형 수주를 따내며 순조롭게 호황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총 29조1572억원어치의 선박을 수주하며 목표 수주액의 140%를 달성한 HD한국조선해양은 올해도 1월에만 4조2386억원 가량을 수주, 연간 수주목표의 25%를 달성하고 있다. 삼성중공업과 한화오션도 FLNG, LNG운반선 등 고부가가치선 위주로 선별 수주하며 3년치 수주잔고를 쌓아놓기도 했다. 향후 국제적 해상 탈탄소 움직임이 가속화됨에 따라 친환경선에 강점을 보이는 국내 조선업계의 호황은 장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견된다. 2010년대 혹독한 불황의 겨울을 벗어나 맞이한 봄은 유독 반갑고 따뜻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업계 한편에서는 여전히 찬바람이 강하다. 수년 전부터 골칫거리로 자리잡은 인력난 문제 때문이다. 수주 계약은 많이 따냈지만 정작 배를 설계하고 만들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현상에 납기 준수도 빠듯하다. 일부 인력에게 업무가 가중되며 이탈자도 늘어나는 악순환의 조짐도 보인다.

“용접공 구합니다”

지난해 국내 조선업계 종사자 수는 9만3000여명이다. 2022년의 9만5000명 대비 소폭 감소했다. 조선업계 장기 불황이 시작된 2014년 당시 20만명과 비교하면 50% 이상 줄어들었다. 장기 불황과 대규모 구조조정을 거치며 10만이 넘는 인력이 이탈했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는 지난해 연간 약 1000만 CGT에 달하는 국내 적정 생산량을 감안, 올해부터 1만2000명 이상의 인력이 부족할 것으로 추정했다. 오는 2027년에는 13만명에 달하는 인력이 부족할 것으로 내다봤다.

조선업체규모별 고용 현황 표. 사진=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이슈리포트
조선업체규모별 고용 현황 표. 사진=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이슈리포트

특히 생산인력의 탈조선 현상 가속화는 조선 도시 인구 감소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삼성중공업과 한화오션 사업장이 위치한 대표적 조선 도시 거제도의 2024년 인구는 2016년말 대비 3만7323명(13.8%) 감소하며 인구 소멸 현상을 겪고 있다. 10년 전 대우조선해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거제도 출신 A씨는 “최근 고향을 방문하니 아파트 공실률이 부쩍 높아졌다”며 인구 감소를 체감했다.

현장도 고령화되고 있다. 조선해양산업 인적자원개발위원회는 ‘2023년 조선해양산업 인력현황 보고서’를 통해 “조선업계 고용인력의 평균연령은 대략 41~42세 정도로 추정되며, 특히 30~99인 중소업체 규모 업체들은 추정 평균연령이 43.3세로, 고령화 정도가 더욱 심화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기존 인력 이탈 가속과 신규 인력 유입 감소는 인구 소멸과 고령화를 더 부추기고 있다. 특히 숙련공의 이탈은 조선사들의 존립을 위태롭게 만드는 요인이다.

조선 노조 관계자 B씨는 “숙련공 부족으로 건조 작업이 조금씩 밀리고 있다”며 “2016년 전후 대대적인 구조조정으로 이탈한 용접 숙련공들이 평택 등 주요 육상 건설현장으로 유입됐다”고 말했다. 그는 “건설현장은 조선소보다 비교적 안전하고 임금도 많이 주는데, 업무 난도도 낮기에 숙련공들이 복귀하려고 하지 않는다”며 “아직 조선소에 남아있는 숙련공들은 고령이어서 재취업이 힘들거나, 생활 기반이 조선도시에 있어서 떠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생산직 신규 인력 유입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 특히 현장인력 양성의 중심이 되는 전문대학의 규모와 수가 빠르게 감소 중이다. 2016년 14개 대학 17개 학과였던 조선해양 관련 전문대학의 수가 2022년엔 3개 대학 5개 학과로 급격히 줄었다.

용접 중인 용접공. 사진=HD한국조선해양
용접 중인 용접공. 사진=HD한국조선해양

노동자들은 이러한 인력 이탈과 유입 감소의 근본적 원인이 ‘임금’에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2010년대 해양플랜트사업에 거액을 투자하던 조선업계는 국제적 저유가로 인한 해양플랜트 발주 취소와 수요 감소에 직격타를 입었다. 불황과 함께 수주 절벽이 찾아오며 업체들은 저가 수주로 건조 포트폴리오만 간신히 방어했고, 선가가 낮아지자 자연스레 평균 임금도 하락했다. 여기에 구조조정이 더해지자 인력 이탈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그 결과 호황이 찾아왔음에도 노동인구 감소와 저임금 시기 여파로 인력 재수급에 어려움을 겪게 된 셈이다.

고급인력에게 ‘계륵’ 된 조선 취업

문제는 생산 인력 감소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조선산업의 미래 경쟁력을 책임질 설계와 연구·개발 인력도 점차 부족해지고 있다.

조선협회 회원사와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의 순수 연구인력은 2014년 2260명 수준이었으나, 불황기를 겪으며 2018년 1100명으로 50% 이상 줄어들었다. 이후 약간의 증가는 있으나 큰 상승은 없었다. 불황을 거치며 조선해양공학 전공자들이 조선업을 선택하지 않는 현상이 심화됐기 때문이다.

조선해양플랜트협회는 “졸업 후 조선소 혹은 조선해양공학과 대학원 등 조선해양공학 분야를 택하는 학부생의 비율은 평균적으로 30%를 약간 넘는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고 밝혔다. 부전공, 복수 전공 등을 통해 다전공이 가능하고, 우수한 대학일수록 다전공자의 숫자가 뚜렷하게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2년 국내 조선해양공학과 졸업 후 취업분야 사례. 사진=조선해양산업 인적자원개발위원
2022년 국내 조선해양공학과 졸업 후 취업분야 사례. 사진=조선해양산업 인적자원개발위원

이에 따라 다전공 학업 이후 조선해양 분야가 아닌 반도체, 전기전자 관련 기업, 자동차 분야 등으로 취업하는 조선해양공학과 졸업생의 수가 늘어나며, 과거의 조선해양공학 전공자들에 비해 조선해양산업에 대한 충성도가 낮아지게 됐다.

협회는 “특히 성적우수자들일수록 다양한 다전공 기회가 열려있는 만큼, 성적우수자들의 조선해양공학 분야 이탈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선해양공학과에서 여러 학생의 진로상담을 담당했던 A 교수는 “현재 학생들에게 1순위는 반도체 등 첨단 제조업이고, 조선사는 2, 3순위로 밀려난 지 오래”라며 “지방 근무, 타 업종 대비 적은 임금, 과거 불황기의 대대적 구조조정 사례 등 다양한 이유로 취업을 꺼린다”고 설명했다.

수도권 대학에서 조선해양공학을 전공 중인 한 학생은 “지난해 전자 관련 대기업에 취업한 선배와 국내 빅3 조선사에 취업한 선배가 있었는데, 조선사 초봉이 1000만원 이상 낮았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생산직과 마찬가지로 고급인력의 임금 역시 타 업종 대비 저렴한 점이 꺼려진다고 설명했다.

2022년 기준 조선 3사의 평균 연봉은 HD현대중공업 8470만원, 대우조선해양 7300만원, 삼성중공업은 8400만원이었다. 대우조선해양이 한화그룹에 인수된 후 1000만원을 더 올려 8300만원이 됐지만, 평균 연봉 1억원을 넘나드는 반도체, 이차전지 등 여타 제조업체에 비해 여전히 못 미친다.

고급인력의 수요는 나날이 늘어가고 있다. 국제해사기구(IMO)가 2050년 해상 넷-제로(탄소중립)를 선언한 이후로 기존의 설계, 연구·개발 인력에 더해 에너지, 탈탄소 전문가 등이 더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조선해양플랜트협회는 지난해 4분기 이슈리포트를 통해 “조선사의 연구개발은 암모니아, 액화수소, 연료전지, 원자력 등 다수의 연료와 추진시스템뿐 아니라 탄소포집(CCS) 등 친환경 기술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분야에 걸쳐 수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협회는 “에너지 시장의 제도적 변화와 국가적 규제 완화 및 지원이 필요한 경우가 많아 이를 이끌어 낼 정책 전문가도 필요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HD현대 사내벤처회사 '아비커스'의 자율운항시스템이 설치된 레저용 보트. 사진=HD한국조선해양
HD현대 사내벤처회사 '아비커스'의 자율운항시스템이 설치된 레저용 보트. 사진=HD한국조선해양

AI·소프트웨어 전문가도 확충해야 한다. 향후 시장 확대가 전망되는 자율운항 선박 코드개발과정에서 기술선점과 선박 건조공정 디지털화를 위해 한국, 유럽, 중국, 일본 등 주요국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실정인데, 현실은 녹록지 않다.

양종서 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조선공학 전공자들도 조선업계에 오지 않는 상황에 차세대 첨단산업 전문가들을 조선업계로 유입시키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친환경, AI 등의 분야는 조선산업뿐 아니라 다른 제조업 전반에 적용되는 분야이기에 인재들의 취업 우선순위에서 밀린다는 것이다.

정부·업계, 인력 확보 위해 동분서주

업계와 정부는 생산인력과 고급인력을 전부 잡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생산인력의 대안은 외국인과 스마트 조선소다. 특히 조선소에서 외국인 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현대삼호중공업의 경우 사내 협력사 9400여명중 외국인 노동자가 약 2700명으로 28%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지난해 하반기 외국인 숙련기능인력 쿼터를 기존 5000명에서 3만5000명으로 대폭 확대하기도 했다.

조선사들은 동남아 등지에 직접 기술 교육기관을 설립하는 등 외국인 인재 유입에 적극적이다. 한화오션은 지난해 7월 베트남 산업무역부와 ‘베트남 인력 양성과 채용 등을 위한 포괄적 협력사업’을 위한 MOU를 체결하기도 했다.

외국인이 한국인을 온전히 대체할 수 없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언어·문화적 차이는 물론 기술도 미흡한 경우가 많아 조선소에서 재교육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사방에 위험요소가 산재한 조선소에서는 자칫 산재의 위험성을 더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화오션이 거제사업장 곳곳에 게시한 픽토그램. 사진=한화오션
한화오션이 거제사업장 곳곳에 게시한 픽토그램. 사진=한화오션

이에 조선사들은 외국인 노동자들의 적응을 돕는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은 업계 최초로 외국인 지원센터를 운영 중이다. 한화오션은 옥포 조선소 내 외국인 근로자들을 위한 기숙사 9개동을 리모델링했다. 최근엔 외국인 노동자들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픽토그램을 거제 사업장 곳곳에 게시해 생산 품질도 높이고 있다. 삼성중공업도 새로 투입된 직원에게 정착 지원금을 지급하는 중이다.

공정 자동화 역시 생산 인력 감소의 대안이다. 조선 3사는 AI와 사물인터넷(IOT) 등을 활용해 조선소를 ‘스마트 조선소’로 전환하는 한편, 자체 개발한 용접 로봇으로 숙련공의 업무를 대체하고자 시도 중이다. 다만 곡면용접, 밀실용접 등 여전히 사람밖에 수행할 수 있는 업무가 많기에 당장의 해법이 될 수 없다는 점은 과제로 남아있다.

고급인력 확보를 위한 움직임도 활발하다. 주요 대학과 MOU를 체결하는 등 ‘찾아가는 인재 영입’에 나선다.

HD현대는 2022년 9월부터 미래 조선해양 분야 기술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서울대학교와 손잡고 개설한 ‘스마트 오션 모빌리티’ 대학원 융합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학생 전원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며, 입사 지원 시 가산점 등을 부여한다. 또한 지난해 연세대, 고려대 등과 잇달아 ‘미래 인재 육성 산학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 HD현대의 미래 오션 모빌리티를 이끌어나갈 차세대 핵심인재 육성에 함께하기로 했다. 지난해 9월에는 AI 해커톤 대회를 개최하며 우수한 성적을 거둔 대학·대학원생들에게 상금과 함께 서류 전형 면제 혜택(졸업예정자), 채용 전환 인턴 혜택(재학생)을 부여했다.

R&D 센터를 수도권과 광역시권으로 이동시켜 지방 근무에 대한 부담도 경감시킨다. 한화오션은 2018년 시흥 R&D 센터를 개소하며 수도권에서 스마트십 연구를 이어오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지난해 11월 부산 시내에 500평 규모의 R&D 센터를 신설해 회사의 핵심 사업인 해양플랜트 설계·엔지니어링을 중점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또한 삼성중공업은 판교와 대전 대덕에도 연구센터를 마련하며 R&D 센터 간 유기적 협업체계를 구축하기도 했다.

첨단산업의 ‘아웃소싱(외주)’도 고급인력난 해결책으로 거론된다. 양종서 연구원은 “조선사들이 자체적으로 첨단 분야 전공자들을 확보하기는 쉽지 않기에, 외부 연구기관이나 기업들과의 협력이 현실적”이라며 “현재 국책 사업으로 다수의 디지털화와 친환경 사업이 추진되고 있는데, 여기에 스타트업 기업들이 관심을 갖는 경우가 많다. 이들이 향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조선해양산업 인적자원개발위원회 역시 외부와의 협력을 강조하는 한편, “전통 조선분야의 기존 인력을 재교육하는 방안이나 대학과의 협업을 통해 재교육을 위탁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위원회는 또한 “사내벤처 육성 또는 벤처투자 등을 통해 독립적 경영체로서 관련 역량을 가진 자회사로 양성하는 방향도 생각해볼 수 있다”며 “무엇보다 조선사들이 고급인력을 유치하기 위해 인건비 상승도 감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HD현대는 이미 사내벤처 ‘아비커스’를 육성해 다양한 자율운항 기술을 확보, 관련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올라선 경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