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사진=현대차그룹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사진=현대차그룹

최근 정부가 저평가된 상장사 주식가치를 높이기 위한 ‘밸류업 프로그램’을 추진중이다. 정부 정책 발표 이후 기업가치 대비 주식가치가 낮은 현대차의 자사주 소각 및 매입에 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지만, 현대차에게는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있다. 바로 순환출자 고리를 끊어내는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국내 10대 그룹 가운데 유일하게 순환출자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순환출자란 그룹 내에서 A기업이 B기업에, B기업이 C기업에, C기업이 A기업에 자금을 돌려 지급하는 것으로, 한 사람이 상대적으로 적은 자본을 가지고 여러 회사를 거느릴 수 있다.

현대차 순환출자 구조는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로 이어진다. 순환출자 구조의 중심에 있는 기업은 현대모비스다. 현대모비스가 그룹의 핵심인 현대차 지분 21.33%를 보유하고 있는 최대 주주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적은 자본으로 여러 회사를 소유하기 때문에 외부 공격에 취약할 수 밖에 없다. 한 회사가 무너질 경우 다른 회사까지 연쇄적으로 무너질 수 있다. 순환출자 관계에 있는 기업들의 경우 서로가 서로의 부채까지 보유하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삼성그룹의 경우 리스크가 큰 순환출자 고리를 끊기 위해 2018년 삼성물산 지분을 가지고 있던 삼성화재와 삼성전기가 블록딜로 삼성물산 주식을 모두 처분했다.

지배구조 최상단에 위치한 ‘현대모비스’ 지분 확보가 관건

그래픽=이코노믹리뷰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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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선 회장의 과제로 ‘순환출자 구조 해소’가 대두되는 이유다. 올해로 취임 4년을 맞이한 정의선 회장 입장에서는 최대한 그룹 내 지배력을 유지하면서 순환출자 구조를 해결해야 한다. 순환출자 구조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정의선 회장이 사실상 지주사 역할을 하고 있는 현대모비스의 지분을 확보하면 된다.

그러나 정의선 회장이 확보하고 있는 현대모비스 지분이 아직 충분하지 않은 수준이다. 정의선 회장의 지분은 현대모비스 0.32%, 현대차 2.65%, 기아 1.74%, 현대글로비스 20%, 현대위아 1.95%, 현대오토에버 7.33%, 이노션 2%로 지배구조 최상에 위치한 현대모비스의 지분은 0.32%에 불과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분율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정몽구 명예회장의 지분을 상속 받는 것, 또 하나는 정의선 회장이 계열사들이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을 직접 매입하는 것이다. 그러나 두 경우의 수 모두 ‘조’ 단위의 자금이 발목을 잡는다. 

정몽구 명예회장이 보유한 지분은 현대차 5.39%, 현대제철 11.81%, 현대모비스 7.19%로 현대차는 2조7000억원, 현대체철은 5500억원, 현대모비스는 1조5900억원 수준이다. 지분을 상속 받을 경우 4조8400억원의 상속세로만 약 3조원을 납부해야 하는데, 이는 울산 현대차 전기차 전용 공장 건설 규모와 맞먹는 금액이다.

복잡하지만 가장 현실적인 가능성은 지배구조를 개편하는 것이다. 현대차그룹도 과거 지배구조 개편을 시도했었다. 지난 2018년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를 모듈 사업과 AS 사업으로 분할한 이후 현대글로비스에 흡수 합병하는 개편안을 공개했다.

정의선 회장이 가진 현대글로비스 지분이 20%에 육박한다는 점을 고려했을때, 합병 이후 정의선 회장의 현대모비스 지분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러나 이 개편안은 당시 현대차와 기아, 현대모비스의 주식 1조원을 보유하고 있던 글로벌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반대로 끝내 무산됐다.

정의선 회장은 2022년 4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지배구조 개편은 정답이나 모범답안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밝혔다.

사상 최대 실적 기록한 현대차·기아…‘자금’이 모인다

그래픽=이코노믹리뷰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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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난해 현대차와 기아가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며, 지배구조 개편의 적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주가 상승으로 투자자들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현 시점에 순환출자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것이다. 

늘어난 배당액도 기회로 다가온다. 순환출자 구조를 끊어내기 위해선 얼마나 많은 자금을 확보하는지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실적에 대한 배당금 총액이 가장 많이 증가한 기업은 현대차로 나타났다. 현대차 배당액 총액은 1조1683억원이 증가했다. 정의선 회장이 받을 배당액도 당연 늘어났다. 올해 정의선 회장이 받을 배당액은 1549억원으로 전년에 비해 436억원이 늘었다.

총선 이후 상속세 개편 관련 논의가 진행될 경우 순환출자 구조 해결에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대기업 오너들은 상속세로 60%의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 최고 세율 50%에 최대 주주 할증 10%가 더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총선 이후 상속세 개편 논의가 진행되고 상속세 세율이 40%까지 조정된다면 정의선 회장이 납부해야 할 상속세 규모는 2조원 안팎으로 떨어진다.

상상인증권 유민기 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OECD 평균 상속세는 25% 수준”이라며 “아직까지 (상속세) 법률 개정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된 바는 없지만 만약 상속세가 40% 수준으로 조정된다면 정의선 회장이 납부해야 할 상속세 규모가 줄고, 이에 따라 지배구조 개편에 대한 논의가 보다 활발하게 이루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현대차와 기아의 사상 최대 실적을 이끌며 경영 능력을 인정받은 정의선 회장이 원활하게 기업을 운영하기 위해선 가장 큰 내부 리스크인 순환출자 구조를 끊어내야 한다. 어느 선택지를 고르든 정의선 회장에게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것은 변함 없지만, 상황을 보다 원활하게 풀어가기 위해선 기업구조 개편안을 정교하게 보완해 시장의 공감을 얻어내는 것이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