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1월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전기차 전환 속도를 늦추기 시작했다. 전기차 조기 전환을 우려하는 완성차 업계와 노조를 달래기 위한 행보다. 바이든의 친환경 정책에 제동이 걸리면서, 지난해 미국에서 전기차 판매량을 중심으로 호실적을 거둔 현대차그룹의 미래에도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지난 17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TY)는 미국 정부 소식통들을 인용해 바이든 정부가 전기차 전환 시점을 늦출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지난해 4월 바이든 행정부는 환경보호청(EPA)을 통해 자동차 판매사가 생산한 차량의 평균 배기가스 배출량을 제한하는 규제를 발표했다.

당초 목표는 배기가스 배출 총량 규제를 2027년부터 꾸준히 강화해 2023년 기준 7%를 차지하던 전기차 비중을 2032년 67%까지 늘리는 것이었다. 기존 계획이라면 자동차 제조사들은 이산화탄소· 질소산화물·미세먼지 등의 배기가스 배출 총량을 2027년부터 연평균 13%씩 줄여야 했다. 

하지만 최근 바이든 행정부가 “아직은 자동차 업계의 준비가 부족하다”면서 입장을 번복한 것으로 알려졌다. 2032년 시중 전기차 비중을 67%까지 늘린다는 목표는 변함이 없지만 2027~2030년까지는 배출가스 기준을 서서히 강화하고, 2030~2032년부터 기준을 대폭 끌어올린다. 전기차 전환 속도를 줄여 유예기간을 두는 것이다.

이같은 변화는 대선을 앞두고 전미자동차노조(UAW)의 ‘표심’을 의식한 결과로 보인다. 뉴욕타임스는 “바이든 대통령이 기후변화에 대응하려고 배출가스 기준을 강화했지만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자동차 업계와 노동조합의 입장을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고 분석했다.

앞서 UAW는 자동차 산업이 전기차로 급격히 전환하는 과정에서 기존 노동자의 일자리 보장이 어렵다며, 일자리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대선에서 바이든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겠다고 밝혀왔다. 전기차의 부품수가 내연기관차에 비해 30% 가량 적기 때문이다.

현재 UAW 조합원은 약 14만6000명에 달한다. 대다수 조합원들은 제너럴모터스(GM), 스텔란티스, 포드 소속으로 위 공장이 위치한 미시간주와 위스콘신주는 이번 대선에서 경합 지역으로 꼽힌다. 바이든 대통령이 1년 만에 자신의 정책을 번복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기도 하다.

◆  美 대선 앞두고 커지는 전기차 리스크…“바이든 피하려다 트럼프 만난다”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엔젤레스 도로. 사진=연합뉴스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엔젤레스 도로. 사진=연합뉴스

전반적인 전기차 전환 속도가 늦춰질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현대차그룹도 가시적인 영향권 안에 들었다. 지난해 현대차그룹은 미국에서 전년 대비 12.1% 증가한 165만2821대를 판매, 혼다와 스텔란티스를 제치고 미국 내 완성차 판매량 4위에 올랐다.

대당 가격이 높은 SUV(스포츠유틸리티차)와 전기차의 판매 호조가 역대급 실적에 기여했다. 지난해 현대차그룹은 미국 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도 불구하고 미국 시장에서 9만4000여대의 전기차를 판매, 테슬라에 이어 전기차 점유율 2위를 기록했다

IRA 규제 강화로 미국 정부가 북미에서 생산하는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하자 현대차그룹은 2025년 상반기 양산 계획이던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준공을 오는 10월로 앞당겼다. HMGMA는 연간 30만대의 전기차를 생산할 수 있는 전기차 전용 공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바이든 정부가 전기차 전환 속도를 늦추면서 전기차 판매량을 안정적으로 늘리려던 현대차의 계획 또한 복잡해지고 있다.

공화당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 될 경우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트럼프는 바이든의 전기차 보급 확대 정책을 ‘광기의 산물’이라 비난하며 전기차 지원 정책에 꾸준히 부정적인 입장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공화당이 다수인 하원에서는 IRA를 폐지하거나, 전기차 세제 혜택을 20만대로 제한하는 법안이 상정됐다.

미국 내 주요 미디어도 트럼프가 대선에서 이길 경우 자동차와 관련한 각종 환경 규제를 완화하고 전기차 보조금을 축소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미국 투자 매체 바론은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은 수익성이 낮은 전기차 기업에 재앙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바이든과 트럼프가 서로 다른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미국 내 전기차 보급 정책에 제동이 걸리면서 올해 전기차 전용 공장 완공을 앞두고 있는 현대차그룹의 리스크가 커질 것으로 점쳐진다. 현대차 관계자는 “전기차 신차 라인업 확대 등의 방안으로 (대선에 따른) 미국 시장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