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사옥. 출처=삼성전자
삼성전자 사옥. 출처=삼성전자

조단위로 쌓아 놓은 자사주를 지주사들이 어떻게 처분할지 관련 업계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정부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 자사주 공시 강화를 추진하고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조만간 가동할 방침이다. 정부 정책에 발맞춰 삼성 그룹의 지주사 역할을 하는 삼성물산은 올해 연초 이사회에서 보통주 781만주와 우선주 16만주를 소각하기로 결정했다. 약 1조원에 달하는 규모다. 이에 SK·LS 등 나머지 지주사들 또한 자사주 소각 등 어떤 주주환원정책을 내릴 지 관심이 쏠린다. 

정부 ‘자사주 공시 강화&밸류업 프로그램’ 가동

14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현재 국내 증시의 PBR(주가순자산비율)은 1배 수준(코스피 0.95배, 코스닥 1.96배)으로 선진국(3.1배)은 물론 신흥국(1.61배) 대비 현저히 낮다. 이에 정부는 ‘주권상장법인의 자기주식 제도개선방안’을 발표하고,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도입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결하고자 한다. 

앞서 지난달 금융위원회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원인으로 지목된 자사주에 대해 일반주주의 권익이 침해되지 않도록 상장회사의 인적분할시 자사주에 대한 신주배정을 금지하고, 자사주 취득·보유·처분 등 전체 과정에 대해 공시를 강화하기로 했다. 

자사주 취득은 이미 발행되어 시중에 있는 당해 회사의 주식을 매입하는 행위를 말한다. 따라서 자사주 매입의 경우 기업이 기존 주주들에게 현금을 주고 주식을 매입하는 것이므로 배당과 마찬가지로 주주환원 정책의 하나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지배구조 측면에서 이러한 자사주가 경영권 방어의 수단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자사주의 경우 보통 의결권이 제한됨에 따라 자사주 매입은 의결권을 가진 주식수를 줄임으로써 지배주주 보유 지분의 의결권을 상대적으로 강화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또한 매입한 자사주를 소각하지 않고 가지고 있다가 지배주주에 대한 우호적인 세력에게 매도하게 되면 의결권이 부활함에 따라 대주주의 우호지분을 확보하는 효과 등이 발생하면서 지배력을 강화하는데 활용된다.

정부는 이를 방지하고자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가동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업계는 상장사들이 거래소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기업 가치 개선계획에 PBR이나 ROE(자기자본이익률) 목표치를 기재하는 식으로 밸류업 프로그램이 시행될 것으로 전망한다. 

이렇게 되면 기업들이 ROE를 높이기 위해 자기자본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자사주를 경영권 강화에 활용하지 못하고 소각할 것으로 기대된다. ROE는 자기자본에 대한 순이익의 비율로, 자사주를 소각해 자기자본이 줄어들면 ROE 값이 상승한다. 

자사주는 인적분할 과정에서 지배주주의 지배력 확대를 위해 사용되기도 한다. 인적분할은 기존법인의 사업부문을 분리하여 신설법인을 설립한 후 신설법인 주식을 기존법인 주주에게 분배하는 분할 방식이다. 지주회사 전환 과정에서 회사를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인적 분할할 때 보유 중인 자사주를 자산으로 취급하여 분할된 자회사의 자사주를 모회사에 남겨둠으로써 분할과 동시에 별도의 지분취득 없이 자회사에 대한 모회사의 지배력을 강화시킬 수 있다. 이를 흔히 ‘자사주 마법’이라 부른다. 

정부는 자사주 마법을 막고자 기업의 인적분할 과정에서 상장회사의 인적분할시 자사주에 대한 신주배정을 금지하는 제도개선을 추진한다. 아울러 인적분할된 신설회사가 재상장하는 경우, 상장심사과정에서 일반주주 권익보호 방안을 충분히 마련했는지 등에 대해 점검하도록 할 방침이다. 

삼성물산 1조원 규모 자사주 소각

한국 증시의 고질병인 저평가를 해결하고자 하는 정부의 강력한 결의에 지주사도 동참하는 모습이다. 

실제 삼성생명을 통해 삼성전자를 직간접적으로 지배하는 삼성물산은 작년 3분기 기준 보유 중인 자사주 보통주 2342만2688주(보통주 대비 12.6%)와 우선주 15만9835주(우선주 대비 9.8%) 중 보통주 780만7563주와 우선주를 전량 소각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시가 기준 약 1조원 규모다. 이와 더불어 2025년과 2026년에 각각 보통주 780만7563주를 소각할 예정이다. 

여기에 올해 3월 정기주주총회를 앞두고 지난 2일 안다자산운용, 씨티오브런던인베스트매니지먼트(CLIM), 화이트박스어드바이저스 등 국내외 헤지펀드들이 삼성물산에게 주주제안서를 제출하면서 추가적인 주주환원 정책이 나올지 주목된다. 

정부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일환으로 기업에게 PBR과 ROE 목표치를 제시하게 할 경우, 자사주를 많이 보유 중인 지주사가 적극적으로 주주친화 정책을 펼칠 것으로 기대되는 상황이다. 현재 삼성물산 이외에 자사주를 많이 가지고 있는 지주사는 대표적으로 SK와 LS가 있다. 

지난해 9월말 기준으로 SK의 주주구성을 보면 자사주 비율이 무려 24.6%이다. 주식의 총수를 반기별로 기재하는 LS는 2023년 6월말 기준으로 자사주 비율이 14.7%다. 

14일 종가 기준으로 SK와 LS의 시가총액이 각각 13조8125억원, 2조9109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자사주로 수조원을 쌓아두고 있는 것이다. 

SK는 지난해말 조직 개편을 통해 SK수펙스추구협의회에 남아 있던 투자 조직과 미국·중국·일본 등 글로벌 오피스를 모두 SK에 넘겼다. 이를 통해 투자의 효율성과 수익성을 강화해 나갈 것으로 기대된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SK가) 양적 투자확대로 인한 순차입금 증가로 차입금 의존도만 높아지면서 SK 밸류에이션에 마이너스 요소로 작용했다”며 조직 개편 등을 통해 “향후 투자 등이 상당 부분 축소될 것으로 예상되며, 금액이 크지 않은 그린 분야 대체식품과 디지털 분야 AI 등 초기 산업 기업에 한정되어 투자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어 “이와 같이 초기산업에 선제적인 투자로 투자금 회수를 보다 빨리 이끌어내면서 투자의 효율성과 수익성을 높일 것으로 예측된다”고 덧붙였다. 

이상헌 연구원은 LS에 대해서도 “최근 정부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자사주 제도 개선 등의 핵심은 대주주의 사익추구를 근절하고 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이며 이런 기조가 결국에는 기업들의 고배당, 자사주 소각 등 주주환원정책 확대로 옮겨갈 가능성이 크다”며 “이에 따라 LS의 경우도 배당확대 및 자사주 소각 등 주주환원정책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