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슨 황 엔비디아 CEO와 샘 올트먼 오픈AI CEO가 UAE 두바이에서 12일(현지시간) 열린 2024 세계정부정상회의(WGS)에 참석한 가운데, 젠슨 황 CEO가 샘 올트먼 CEO의 최근 행보에 견제구를 날리는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생성형 AI 반도체 시대가 열리는 상황에서 오랫동안 협력했던 두 기업 사이에 묘한 기류가 번지는 중이다. AI 무기상인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와, 실제 전장에서 전투에 임하고 있는 샘 올트먼 오픈AI CEO의 '티격태격' 신경전이다.

WSG 현장. 사진=연합뉴스
WSG 현장. 사진=연합뉴스

"각국이 독자 AI 인프라 구축해야"
젠슨 황 CEO가 WGS 대담 프로그램에 참석해 각 국이 독자적인 AI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많은 나라들은 다른 국가나 민간 기업이 자국의 AI 인프라를 구축하도록 허용하면 안된다"면서 "각자의 문화를 보호하면서 AI의 경제적 잠재력을 이용하려면 모든 나라가 각자의 AI 인프라를 보유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각 국이 최대한 AI 인프라를 빨리 구축한 후 산업을 혁신하기 위해서는 해당 정부에게 달렸다"고 강조했다.

젠슨 황 CEO의 발언은 큰 틀에서 이상할 것이 없다. AI 반도체를 판매하는 엔비디아 입장에서 각 국이 자체적으로 AI 인프라를 구축한다면 그만큼 판매처가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블록체인, 메타버스 열풍이 불 당시 이들을 새로운 세계의 미래 플랫폼으로 규정하며 멋지게 포장한 후 자사의 GPU를 판매하던 '귀신같은' 비즈니스 감각의 연장으로 볼 수 있다.

각 국의 '니즈'를 제대로 저격한 발언이기도 하다. 

생성형 AI 시대가 '쩐의 전쟁'으로 흘러가는 상황에서 현재 미국과 중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들은 AI 산업의 주도권을 빼앗길 것이라 우려하는 중이다. 정확히 말하면 AI가 OS이자 인터넷익스플로러이면서 기간 인프라이자 모든 산업의 근간이며 투자 유치를 받을 수 있는 가장 자극적인 소재로 뿌리를 내린 가운데, 각 국은 풍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자국 산업시장으로 밀려오는 미중 AI 권력에 안방을 내어줄까 고심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PC와 모바일 시대를 맞아 구글이라는 세계제국을 막아낸 경험을 가진 네이버가 이제는 전혀 다른 상황. 즉, 글로벌 생태계에서 움직이는 생성형 AI 시대가 열렸음에도 비슷한 전략인 한국형 AI로 버티는 것은 일종의 고육지책으로 볼 수 있다. "생성형 AI 시대를 맞이해 쩐의 전쟁을 피하는 것이 아닌, 가장 승률이 높은 게임을 하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 이면에는 역시 정면대결의 부질없음이 선명하다.

사실 포시마크 하나를 인수할때도 네이버가 휘청인다는 루머가 돌았을 정도로 '쩐의 전쟁'은 부담스럽다. 그 연장선에서 네이버는 승률은 낮지만 쩐의 전쟁에서 한발 발을 뺄 수 있는 한국형 AI 전략이라는 카드를 빼들 수 밖에 없었고, 이러한 사정은 유럽은 물론 미국 및 중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가 안고있는 비슷한 고민이기도 하다. 그리고 젠슨 황 CEO의 "각 국이 자체적인 AI 인프라를 가져야 한다"는 발언은, 이러한 고육지책을 고민하고 있는 각 국에게 일종의 지지선언이나 다름이 없다. 

당장 소버린 AI 전략에 힘이 실리는 순간이다. 심지어 정부의 역할까지 강조했으니 금상첨화라 볼 수 있다. 보기에 따라 많은 정부들이 각 국의 생성형 AI 시장을 지키기 위해 주도적으로 H100을 구매하라는 것으로도 들리기도 한다.

최근 엔비디아가 맞춤형 AI 반도체 시장 진출을 준비하는 장면도 눈길을 끈다. 실제로 로이터는 9일(현지시간) 엔비디아가 클라우드 컴퓨팅 및 맞춤형 AI 반도체 설계에 방점을 찍은 새로운 사업부를 구축하는 중이라 밝혔다. 브로드컴 및 마벨 등 이미 맞춤형 AI 반도체를 시장에 공급하는 기업들과 이미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핵심은 클라우드 컴퓨팅 등 B2B지만 새로운 사업부의 타깃에는 자동차 및 오디오 등 세부 영역을 겨냥한 맞춤형 AI 반도체 설계도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이러한 자사 전략과 각 국 자체 AI 인프라 트렌드는 그 자체로 궁합이 잘 맞는다. 

한편 젠슨 황 CEO는 AI 반도체 무기상인으로서 당연하게도 일각의 AI 공포에는 선을 그었다. AI 산업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젠슨 황 CEO가 AI 포럼 참석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젠슨 황 CEO가 AI 포럼 참석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 행간에는 '샘 올트먼 저격'
젠슨 황 CEO의 각 국 AI 인프라 구축 발언은 무수히 많은 공급처를 확보하려는 엔비디아의 기본 비즈니스 전략에 부합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굳이 이렇게 까지 AI 인프라 구축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궁금증도 커진다. 각 국이 AI 인프라를 따로 구축하면 엔비디아의 판매고도 춤을 추겠지만, 어차피 생성형 AI 시대는 곧 '쩐의 전쟁'이다. 누군가는 AI 반도체를 구매해야 하고 그 수요는 대상을 가리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왜?

젠슨 황 CEO의 이번 메시지가 지극히 정치적인 전략에서 나왔다는 의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특히 오픈AI와의 불편한 관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초 엔비디아와 오픈AI는 AI 생태계에서 매끈하게 협력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오픈AI가 자체 AI 반도체 전략을 띄우며 묘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보기에 따라 엔비디아와의 거리두기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오픈AI의 의지는 강하다. 샘 올트먼 CEO의 영화같은 퇴진과 복귀 행간에도 그의 강력한 AI 반도체 인프라 구축에 대한 이견이 있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 연장선에서 월스트리트저널은 8일(현지시간) 오픈AI가 7조 달러의 투자금을 유치해 자체 AI 반도체를 생산할 예정이며, 이를 위해 소프트뱅크 및 중동의 투자자들과 접촉하는 중이라 보도하기도 했다. 최근 샘 올트먼 CEO는 한국과 대만, 일본 등을 방문해 자체 AI 반도체 제작 점검에 나서기도 했다.

샘 올트먼 CEO가 자체 AI 반도체 인프라를 구축하려는 이유는 두 가지다. 

먼저 AI 전략. 엔비디아가 제공하는 H100은 훌륭한 제품이지만 엄밀히 말해 범용제품이다. GPU가 범용제품이 되는 희한한 시대에 살고 있는지라 이렇게 밖에 해석할 수 없다. 그리고 범용제품은 아무리 성능이 뛰어나도 각각의 맞춤형 전략에는 미묘한 엇박자를 낸다.

처음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나 시간이 지나며 서비스가 고도화될때 반드시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애플이 아이폰 제작에 있어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부품 수직계열화를 노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샘 올트먼 CEO는 도래하는 생성형 AI 시대를 맞아 더 이상의 '미묘한 엇박자'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다. '나에게 맞는 자체 AI 반도체'를 원하는 이유다.

또 다른 이유는 가격이다. 생성형 AI 시대가 열리며 H100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가운데 '쩐의 전쟁'에 뛰어든 기업들은 AI 반도체 확보에 지나치게 돈을 쓰고 있다. 사실 이 문제가 제일 크다. 오픈AI는 지난해 연 매출 20억달러를 올렸으나 아직도 적자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그 연장선에서 자체 AI 반도체는 H100과 같은 외부 범용제품 구매에 들어가는 돈을 크게 절약시킬 수 있다. 그것이 아니라면 최소한 협상의 카드는 되어줄 수 있다. 삼성전자가 퀄컴 스냅드래곤8 3세대에게 갤럭시 S24 울트라의 두뇌를 모두 내어주면서도 엑시노스를 포기하지 않는 배경과 비슷하다.(물론 이 이유가 전부는 아니다)

다시 엔비디아로 돌아오면, 젠슨 황 CEO 입장에서 오픈AI의 행보는 위협적이다. 

메타마저 지난해 5월 아르테미스 프로젝트, MTIA(Meta Training and Inference Accelerator)라고 하는 자체 AI 반도체 계획을 밝힌 후 맞춤형 AI 반도체 로드맵에 드라이브를 거는 등 엔비디아 무기상인 제국이 약간은 흔들리는 중이다. 나아가 이런 사례들이 많아질수록, 즉 엔비디아의 제품을 사용하지 않고 각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AI 반도체를 제작해 사용한다면 상당한 타격이다.

그 연장선에서 젠슨 황 CEO는 각 국의 자체적인 AI 인프라 구축을 독려하는 메시지를 통해 오픈AI에게 일종의 견제구를 날렸다고 볼 수 있다. 내밀하게 본다면 샘 올트먼의 오픈AI야말로 각 국 자체 AI 인프라에게는 '적그리스도'라는 점에 착안, 소위 심술을 부린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챗GPT의 오픈AI가 자체 AI 반도체로 엔비디아의 새로운 경쟁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하며 일종의 잽을 날렸다고 볼 수 있다.

올트먼 CEO가 대담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올트먼 CEO가 대담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더 깊숙히 들어간다면 이 메시지를 일종의 '거울공격'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만약 오픈AI가 자체 AI 반도체 시장을 개척해 엔비디아를 위협한다면, 엔비디아의 글로벌 비즈니스도 어느정도 위협을 받을 수 있다. 이를 참고해 엔비디아는 각 국이 AI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는 당위성으로 역시 글로벌 전략을 추구하는 오픈AI를 공격했다고 볼 수 있다. 오픈AI 입장에서 각 국이 자체적인 AI 인프라를 구축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시작부터 글로벌 시장 석권을 위해 움직이던 오픈AI의 전체 스텝이 무너질 수 있다. 티격태격의 결정체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그의 심술은 AI 비용에 대한 메시지에서 더욱 노골화된다. 

당장 젠슨 황 CEO는 AI의 천문학적인 비용을 우려하는 이들에게  "컴퓨터가 더 빨라지고 있기 때문에 필요한 컴퓨터의 양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으로 추측된다"며 "더 빠르게, 빠르게, 빠르게 제조하는 반도체 산업 덕분에 AI 비용이 크게 낮아질 것으로 자신한다"고 말했다. 

샘 올트먼 CEO가 최근 자체 AI 반도체 인프라 전략을 구축하며 7조달러에 달하는 천문학적 규모의 펀딩에 나서겠다 밝힌 가운데, 이를 의식해 또 다시 견제구를 던진 셈이다. "비싸다고? 그렇지 않아" 엔비디아에서 사들이는 AI 반도체 금액이 지나치게 부담이라 자체 AI 반도체를 개발한다는 샘 올트먼 CEO의 발언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과정에서 젠슨 황 CEO는 다소 두서가 없어 보이는 말도 했다. 대담 말미 AI 비용 증가가 조만간 멈추는 것은 아니며, 현재 1조 달러 규모인 AI 데이터센터가 5년 뒤에는 2배가 될 것이라 말했기 때문이다. 

수요가 끊이지 않는 엔비디아의 밝은 미래를 주주들에게 보여주고 시장의 확장성을 어필하려면 AI 데이터센터 규모가 2배가 될 것이라 말해야 하지만, AI 반도체 가격이 비싸 자체 AI 반도체를 준비한다는 샘 올트먼 CEO의 발언을 반박하려면 180도 다른 말을 해야 한다. 그리고 젠슨 황 CEO는 고심 끝에 이 두가지를 모두 다 하기로 결정했다. 그 정도로 티격태격이다.

마지막으로 젠슨 황 CEO의 심술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 또 있다. 바로 '메시지의 무대'다. 

젠슨 황 CEO가 무대에 오른 WGS는 UAE 두바이에 위치해있고, UAE는 샘 올트먼 CEO가 자체 AI 반도체 로드맵을 위해 유혹해야 하는 큰손들이 있는 곳이다. 샘 올트먼 CEO 입장에서는 '좋은 인상'을 보여야 할 곳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대담 프로그램에서 오마르 술탄 알올라마 UAE AI·디지털경제부 장관이 7조 달러를 모으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농담하자 샘 올트먼 CEO가 “제발 알려달라”고 너스레를 떨 정도다. 그리고 이 민감한 자리에서, 젠슨 황 CEO는 샘 올트먼 CEO의 최근 AI 자체 반도체 행보와 관련된 모든 것을 부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