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투자증권 여의도 본사 1층 전광판. 사진 = 김호성 기자
한국투자증권 여의도 본사 1층 전광판. 사진 = 김호성 기자

우리 증시의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 정부가 준비 중인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이달 중 윤곽을 드러낸다.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감에 유가증권시장에서 '저(低) PBR(주가순자산비율)' 종목들에 대한 관심이 커지며 신용잔고금액도 크게 늘고 있는 가운데 정부 정책이 뜨거워진 투자 열기를 지속시킬수 있을지 이목이 쏠린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저PBR 대책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며 유가증권(코스피) 시장에서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8일까지 연일 순매수에 나섰고, 이들의 국내 주식 순매수 규모는 5조원을 훌쩍 넘어섰다. 

상장사들에 주가순자산비율(PBR)이나 자기자본이익률(ROE) 목표치 제시 등 기업가치 제고 계획 공표가 권고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정부가 상장사들의 광범위한 참여를 어떻게 끌어낼지도 주목된다.

특히 주주가치 제고 우수업체 등으로 구성된 벤치마크 지수와 이를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에 연기금과 기관의 자금이 얼마나 유입될 수 있을지도 관건이다.

12일 금융당국 등에 따르면 정부는 이달 중 최상목 경제부총리 주재 비상경제장관회의를 통해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최종적으로 확정할 전망이다.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은 지난 1월 17일 윤석열 대통령 주재 민생토론회에서 처음 거론된 뒤 아직은 대략적 방향만 제시된 상태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24일 증권업계 CEO들과 간담회에서 ▲상장사의 주요 투자지표(PBR·ROE 등)를 시가총액·업종별로 비교공시 ▲ 상장사들에 기업가치 개선 계획 공표 권고 ▲기업가치 개선 우수기업 등으로 구성된 지수 개발 및 ETF 도입 등을 골자로 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도입·운용하겠다며 세부 내용을 이달 중 발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최종안에는 한국거래소가 상장사들에 기업 가치 개선계획 공표를 권고하는 내용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상장사들은 거래소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기업 가치 개선계획에서 PBR이나 ROE 목표치 제시를 포함해 기업가치를 높일 수 있는 대응 전략을 밝히게 된다.

사실상 기업들이 PBR이나 ROE 목표치를 설정하고 이에 대한 이행계획을 담는 이른바 '일본식 가이드라인'과 유사한 내용이다. 금융당국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벤치마크 대상으로 일본의 선례를 참고하고 있다.

도교증권거래소는 지난해 3월 주당순자산가치가 1 이하인 상장기업들을 대상으로 자본수익성과 성장성을 높이기 위한 개선방침과 구체적인 이행 목표를 공개하도록 요구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말 기준 개별 상장기업 기업지배구조보고서에서 구체적인 기업가치 제고 노력을 공표한 상장사는 프라임시장 1656개사 중 39.9%인 660개사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앞으로 기업가치 제고 노력 공표를 검토하겠다는 상장사들을 포함하면 그 비율은 49.2%까지 확대된다.

우리 정부가 추진 중인 기업가치 개선 우수기업 등으로 구성된 지수 내지 ETF를 추종하는 연기금이나 기관의 자금 유입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벤치마크 지수가 생기면 연기금을 포함한 기관투자자들이 이를 참고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기관 자금 유입이 한층 더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도쿄증권거래소가 개발한 기업가치 제고 기업에 가중치를 둔 JPX 프라임 150지수는 ROE가 자본비용보다 높은 상위 75개 기업과 PBR이 1을 초과하는 상위 75개 기업으로 구성돼 있다. 이 지수는 아베 정부의 주주가치 증대 노력의 하나로 도입된 지수다.

국민연금, 노르웨이국부펀드(NBIM)와 함께 세계 3대 연기금 중 하나로 불리는 일본 공적기금(GPIF)과 일본 중앙은행은 10년 전인 2014년부터 ROE가 높은 상위 400개 기업을 편입해 만든 닛케이 400지수를 벤치마크로 활용해 왔다. 

신용잔고 급증·외국인도 연일 순매수..."단기 과열은 경계해야"

여의도 증권가. 사진 = 연합뉴스
여의도 증권가. 사진 = 연합뉴스

정부 주도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감에 저PBR 종목들이 포진한 유가증권시장은 신용융자가 급증하고 있다. 빚을 내서 투자하는 이른바 '빚투'가 늘고 있는 것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달 8일 기준 유가증권시장의 신용잔고금액은 9조4510억원에 달했다. 지난해 말(8조7338억원)과 비교해 7172억원(8.2%)이나 급증했다.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투자자가 주식 투자를 위해 증권사로부터 자금을 빌린 뒤 변제를 마치지 않은 금액으로, 이 잔고가 늘었다는 것은 레버리지(차입) 투자가 증가했다는 의미다.

시가총액 상위종목 중 반도체주를 비롯해 저PBR 종목으로 분류되는 자동차·금융주 신용잔고가 일제히 늘었다.

8일 기준 현대차의 신용잔고는 1454억5000만원으로 지난해 말(880억4천만원) 대비 65% 증가했다. 기아의 신용잔고는 1085억원으로 지난해 말(490억6000만원) 대비 121% 늘었다.

반도체 종목 중 삼성전자의 신용잔고는 지난해 말 대비 42% 늘었고 SK하이닉스는 70% 증가했다.

반도체 업황 개선 기대감이 커지는 가운데 정부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추진한다는 소식까지 겹치며 수혜가 기대되는 저PBR 종목에 대한투자자들의 관심이 커진 점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KB금융과 신한지주 등 저PRR 대표 업종인 금융·지주사 신용잔고도 올해 들어 각각 113%, 178% 급증했다.

반면, 이 기간 LG화학, 포스코홀딩스(POSCO홀딩스), LG에너지솔루션, 에코프로, 에코프로비엠 등 2차전지를 위주로 성장주들의 신용잔고는 크게 감소했다. 

외국인의 순매수세도 예사롭지 않다.

외국인은 코스피200 종목을 지난달 19일부터 지난 8일까지 15거래일 연속 순매수했다. 외국인이 보름 이상 연속으로 코스피200 종목을 사들인 것은 1년 2개월만이다. 이 기간 외국인의 매수세는 현대차(1조2283억원)·기아(5003억원)·삼성물산(3112억원)·KB금융(2582억원) 등 ‘저PBR 종목’에 집중됐다. 현재 PRB을 보면 현대차가 0.79배, 기아차가 1.15배, 삼성물산이 0.96배 수준이다.

다만, 증권에서는 저PBR 테마에 대한 무분별한 투자를 지양하고 기업의 기초체력을 따져보며 투자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특히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구체적 내용이 확정된 이후에는 정책 재료 소멸로 인해 그간 올랐던 주식들이 한번에 조정을 받을 가능성도 염두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