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의 생성형 AI 전략에 드라이브가 걸리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와 연합한 챗GPT의 오픈AI가 글로벌 빅테크 시장을 강타하는 가운데 구글이 ‘제미나이 울트라(Ultra)’를 적용한 ‘제미나이 어드밴스드(Gemini Advanced)’를 7일(현지시간) 전격 공개했기 때문이다.

제미나이 접근성 확대가 광범위하게 벌어지는 가운데 업계에서는 구글이 보여주는 소프트웨어 플랫폼 전략의 행보에도 주목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안드로이드라는 거대한 소프트웨어 그릇을 가진 구글의 존재감이 커지는 지점이 의미심장하다.

제미나이. 사진=구글
제미나이. 사진=구글

역전의 명수 구글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구글도 무조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100% '프론티어'가 아니다. 현재 글로벌 포털 시장의 90%를 장악한 폭군이지만 포털의 역사를 새롭게 개척하지는 않았으며, 때로는 구글플러스와 같은 신박한 서비스로 마크 저커버그에게 카르타고 취급을 당하기도 한다.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거나 기존 시장을 파고들어 숟가락을 올리기도 하며, 성공할 때도 있고 실패할 때도 있다.

AI는 어떨까? 비교적 최근 시장을 주도했으나 당연히 개척자는 아니고, 생성형 AI 측면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도전자 포지션이다.

사실 2016년 알파고 쇼크의 인상이 지나치게 강해 구글을 마치 AI의 기원으로 여기는 이들도 있지만 AI 자체의 역사는 워렌 맥클록(Warren McCulloch)과 윌터 파츠(Walter Pitts)가 인공신경망에 대한 최초의 연구성과를 발표한 1950년, 혹은 그 전의 추상적 논의에서 찾아야 한다. 기업 한정으로 봐도 딥블루의 IBM이 먼저다. 

다만 구글은 알파고 쇼크 이후 꾸준히 글로벌 AI 시장을 선도하며 명확한 트렌드 섹터 역할을 해 왔다. 최소한 2022년 6월 구글의 '책임 있는(Responsible) AI' 부서에서 수석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하던 블레이크 레모인(Blake Lemoine)이 AI 람다에서 영혼을 느꼈다는 폭로를 할 때까지는, 말 그대로 구글 AI 트렌드 시대였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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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달라진 것은 오픈AI의 챗GPT 등판부터다. 오픈AI는 초기 일론 머스크, 고 스티븐 호킹 등이 참여한 AI 비영리 기구였으나 산하에 영리회사를 두고 몇 번의 변신을 시도하더니 MS의 천문학적 투자를 통해 AI 게임 체인저로 변신했다. 최근 샘 올트먼 CEO의 축출과 복귀를 반복하며 완전한 AGI(인공일반지능)으로 가닥을 잡았고, 이들은 AI가 검색이나 식별을 넘어 무언가를 창조할 수 있음을 재차 어필하는데 성공했다.

반면 구글은 주춤거렸다. 팬데믹, 엔데믹, 우크라이나 전쟁 등에 따른 글로벌 인플레이션, 빅테크 이슈를 몰아내기 시작한 다양한 산업군의 부상(FAANG 2.0) 등으로 허덕이던 가운데 챗GPT로 열린 생성형 AI 시대에서 어필 타이밍을 완전히 놓쳤기 때문이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으나 2018년 프로젝트 메이븐 사태 후 구글 내부에서 AI 윤리를 강화하려는 목소리가 커졌던 것이 주효했다.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지만 기술 발전에 있어서는 악재기 때문이다.

구글은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챗GPT의 오픈AI가 글로벌 생성형 AI 시대의 모든 이슈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자 2023년 3월 내부적으로 코드레드를 발령, 바드를 중심으로 전격전을 펼쳤다. 이어 챗GPT가 MS의 오피스365 및 빙, 애저 등 기업 생산성 서비스로 파고들며 엔터프라이즈적 측면서 생성형 AI 존재감을 키우자 구글은 바드의 포털 적용을 중심으로 하는 '뉴타입' 카드를 꺼내는 등 신속하게 움직였다.

그 연장선에서 최근 공개된 제미니아 로드맵은 경외로운 수준이다. 바드에서 제미니아로의 브랜딩 변경을 기점으로 강력한 울트라 버전의 제미나이 어드밴스드(Gemini Advanced)가 공개되는 한편, 말 그대로 AI 저변 확대에 '미친' 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제미나이 어드밴스드는 150개 이상의 국가에서 지원되며, 구글의 AI는 구글 원 AI 프리미엄(Google One AI Premium) 요금제에 포함되면서 구글 어시스턴트에 이어 단독앱으로도 출시된다는 설명이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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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미나이 제국, 어렵지 않을 듯
"AI가 인간을 뛰어넘으니 공포를 가진체 지갑을 열어 내 주머니를 채워준 다음 종말에 대비하라"는 우리 일상 생활의 유사 과학종교인과 지식사냥꾼들의 이야기까지 들을 필요도 없다. AI는 그 기술력과 비전 자체만으로 인간보다 똑똑하며, 또 더욱 똑똑해질 것이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그 연장선에서 구글의 제미나이 제국 건설은 가능할까? 이 역시 당연한 말이지만 AI 기술력에 달렸다. 쉽게 말해 챗GPT와 비교해 더 강력한 AI 기술력을 보여주면 제국 건설은 당장이라도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좋고 강력한 AI가 승리할 것이다. 혹은 안드로이드와 iOS, 리눅스 등이 존재했던 모바일 시대처럼 아슬아슬하게 공존하며 각자의 특성을 지킬 수도 있지만, 역시 AI는 OS와 인터넷 익스플로러와 서비스 플랫폼의 성향을 모두 합친 개념이라 '천하일통' 가능성에 더 무게가 실린다.

그렇다면 AI 기술력을 떠나 시장에 접근하는 측면에서의 승산은 어떨까? 구글 제미나이 제국의 압승이다. 모바일 시대를 관통했던 안드로이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안드로이드가 제미나이 제국으로 향하는 고속도로가 될 수 있다. 비전프로가 출시될 당시 "쓸 수 있는 콘텐츠가 별로 없다"고 투덜거린 투자자들에게 애플이 '비전프로는 곧 iOS 생태계와 연결될 것'이라는 말로 불안감을 달래준 것처럼, 구글이 이미 가지고 있는 거대 모바일 파라다이스 안드로이드 거주민들은 곧 제미나이 제국의 잠재적 신민들로 연결될 수 있다. 글로벌 모바일 OS 점유율 72%의 안드로이드가 보여주는 '위엄'이다.

심지어 구글은 픽셀로 온디바이스AI 수요도 타진하고 구글 어시스턴트는 물론 자체 앱 제작에 iOS 지원도 나섰다.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찾아 안드로이드 파라다이스에서 제미나이 제국으로의 이주를 독촉하고 있다. 거의 총력전 분위기다. 

한때 PC 시대의 왕이었으나 '스티브 발머 암흑시대'를 맞아 모바일에서 무너졌던 MS는 꿈도 꾸지 못하는 전략이다. 비록 클라우드 퍼스트와 AI 퍼스트로 살아나 오픈AI와의 협력으로 생성형 AI 기술 트렌드로 미친 존재감을 자랑하고 있으나, 역시 MS-오픈AI 연합군은 모바일과 생성형 AI의 연결고리가 지나치게 약하다.

튜링 테스트 장면. 사진=갈무리
튜링 테스트 장면. 사진=갈무리

소프트웨어 그릇의 힘 강해진다
구글이 안드로이드에서 제미니아 제국의 생성형 AI로 자연스럽게 권력을 넘기는 장면은, 소프트웨어 그릇의 강점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장치로도 해석된다.

한때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하드웨어 플랫폼 기반의 한국 기업들은 소프트웨어 기술력에 나름의 관심을 보인 바 있다. 대표적인 것이 삼성전자의 바다, 타이젠 OS다. 그러나 이러한 야심찬 시도들이 모두 실패한 후 이들은 하드웨어 플랫폼 전략에 더욱 집중했다. 소프트웨어 플랫폼은 구글 안드로이드 종속을 받아들이되, 하드웨어 플랫폼을 통해 소프트웨어 플랫폼의 이득을 취하겠다는 주장이다. 

소프트웨어 독립은 현실성이 없으니, 하드웨어 플랫폼을 통해 구글과 같은 소프트웨어 플랫폼 강자들이 누릴 수 있는 데이터 확보 및 사용자 경험 고도화를 대신 해내겠다는 어필이다. 

아직도 이 전략은 유효하다. 그러나 구글 등이 보여주는 하드웨어 기업들을 거느린 체 소프트웨어 플랫폼 강자로 군림하는 것과, 이들에게 소프트웨어가 종속된 상태에서 하드웨어 플랫폼 전략을 가동하는 삼성 및 LG전자의 최근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무엇보다 하드웨어 플랫폼 전략 운신의 폭이 점점 좁아지는 것이 문제다. 변화무쌍한 소프트웨어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량적인 하드웨어는 시간이 지날수록 상향표준와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으며, 이제는 생성형 AI 기술이라는 강력한 소프트웨어에게 주도권까지 놓아주고 있다. 

갤럭시 S24. 사진=SKT
갤럭시 S24. 사진=SKT

삼성전자가 최근 발표한 갤럭시 S24가 최초의 AI 스마트폰이라지만 그 AI는 사실 구글 제미니아며, 그 기능과 잠재력 모두 하드웨어를 만드는 삼성전자가 아닌 구글에게 주도권이 쏠려있다. 삼성전자는 또 언팩 직전 온디바이스AI 전용으로 가우스를 운용한다고 말했지만 막상 갤럭시 S24가 공개됐을 때 가우스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가우스는 삼성전자의 마지막 남은 소프트웨어 자존심이면서도 아직 전면에 나올 수 없어 예고편 티저에만 이름을 올린 정치적 판단의 산물일 수 있다. 

갤럭시 S24 화제의 기술 서클 투 서치(Circle to Search)도 구글의 기술, 통번역도 구글의 기술이다. 삼성전자가 협력했다지만 그 협력은 기술 주도권과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닌 호환성에 머물러 있다. 결국 하드웨어 특이점은 상향표준화되는 가운데 단말기의 가치를 온전히 결정할 수 있는 다변적 기능은 모두 소프트웨어의 것인 셈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소프트웨어 기업들은 어떨까. 네이버와 카카오가 있다. 이들은 OS 측면은 아니지만 그 상위 단계인 서비스 인프라에서 어느정도 플랫폼 전략을 가동하고 있다. 이들은 삼성 및 LG전자와 같은 전통적인 플랫폼 기업들과는 다른 전략적 선택을 할 여지도 있다. 

이들이 뭔가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생성형 AI 시대로 접어들며 이들이 한국형 AI를 택하는 순간 스텝은 이미 꼬였다. 물론 글로벌 기업과 비교해 자금을 운용할 수 있는 폭이 제한적이고, 구글의 포털 공습을 막아낸 경험이 있으니 자신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AI는 과거 포털처럼 각 로컬에 맞는 맞춤형 전략이 통하는 시장이 아니다. 야후를 참조한 후 지식IN으로 한국 이용자들에게 어필한다고 구글 공습을 막을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뜻이다. 

AI는 OS와 인터넷 익스플로러와 서비스 플랫폼의 성향을 모두 합친 개념이다. 5G 네트워크이자 인터넷이며 클라우드다. '천하일통'이 전제되고 약속된 시장이다. 그렇기에 MS와 오픈AI, 구글은 물론 한때 맞춤형 전략을 구사하던 메타마저 H100 34만개를 쓸어담고 연내 자체 AI칩을 데이터센터에 탑재하겠다는 폭탄선언까지 했다. 그런데 네이버와 카카오는 옛 영광에 취해 '어쩔 수 없지 않냐'며 움츠러들었다.

차라리 제한적인 전략을 추구하려면 한국형 AI라는 로컬이 아니라, 글로벌 AI 시장이라는 전체 시장의 하단부분을 노리는 것이 유리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장 전체를 크게 봐야 한다는 뜻이다. 그 연장선에서 제미나이가 보여준 플랫폼의 최근 트렌드를 읽고, 생성형 AI 전반의 어필 포인트를 다시 구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