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플랫폼 독과점을 사전 규제하는 ‘플랫폼 경쟁촉진법(가칭) 제정을 추진하는 가운데 논란이 커지고 있다. 

특히 플랫폼법이 디지털 경제 전반을 압박하는 정책으로 여겨지며 진통이 커지고 있다. 실제로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이 2023년 12월 19일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플랫폼법 제정안을 마련해 발의하겠다는 뜻을 밝히자 "한국 디지털 기초체력이 약해지고 스타트업 중심의 새로운 혁신 기회가 사라질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당장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등이 포함된 디지털경제연합도 플랫폼법에 대해 "국내 온라인 플랫폼 시장은 해외 플랫폼 기업과 치열하게 경쟁하는 완전경쟁 상태"라며 "온라인 플랫폼 사전규제는 가뜩이나 어려운 국내 온라인 플랫폼에 사약을 내리는 것과 같다"고 강조한 바 있다. 지난달 열린 플랫폼 규제 법안과 디지털 경제의 미래 토론회에서도 비슷한 메시지가 나오기도 했다.

이 대목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독일 스타트업 업계다. 공정위가 플랫폼법을 추진하며 참조한 유럽연합 디지털시장법(DMA)에 대해 독일스타트업협회(GSA)는 적극적인 환영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실제로 GSA는 2022년 1월 15일 “DMA를 명백히 환영한다(expressly welcome(s) the DMA)"고 밝히면서 입법이 가져올 긍정적인 영향을 명확하게 제시한 바 있다.

한국의 스타트업 업계는 플랫폼법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으나, 플랫폼법의 '원조'라 할 수 있는 DMA에 대한 독일 스타트업 업계의 반응은 사뭇 다른 셈이다.

이유가 무엇일까? 사실 유럽의 DMA와 한국의 플랫폼법 모두 거대 플랫폼 기업의 지배력 남용을 방지하고 시장 공정성을 촉진하는 선제적인 규제를 지향하는 순기능을 가지고 있다. 지나치게 비대해진 플랫폼의 야만성을 조절하고 그 권력을 상당부분 분산시키면 새로운 혁신의 가능성이 열리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플랫폼법이 글로벌 기업을 우대하고 한국의 디지털 기초체력을 약화시킨다는 공포도 현 상황에서 많이 옅어진 것이 사실이다. 자극적인 표현이 난무하는 논란의 행간을 냉정하게 짚어보면 발견할 수 있는 중요한 메시지다. 

물론 이견은 있다. 그러나 전세계 각국에서 이러한 순기능에 주목, DMA와 플랫폼법 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흐름을 두고 글로벌 규제 트렌드에 부합하는 혁신적 변화의 신호탄이라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그 연장선에서 DMA에 대한 독일 스타트업 업계의 반응을 입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 사진=연합뉴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 사진=연합뉴스

혁신, 그리고 글로벌 경쟁력 강화
GSA 등 독일 스타트업 업계가 DMA에 우호적인 이유는 사실 간단하다. 일각에서는 규제에 방점을 찍은 DMA가 디지털 경제를 약화시킬 것이라 우려하지만, 실상은 작은 기업들이 얻을 수 있는 다양한 혜택이 크다고 봤기 때문이다.

거대 플랫폼에 짖눌린 상태를 해소한다면 스타트업에게 유리하며, 혁신과 경쟁이 가속화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크다. 시장 진입 장벽을 낮추고 지배적인 플랫폼의 불공정한 행위를 방지함으로써 공정한 경쟁 환경에 도움이 될 것이라 본 셈이다.

공정한 환경이 조성되면 기회가 열린다. 독일 스타트업 업계는 이를 바탕으로 혁신적인 기술과 아이디어에 대한 투자가 더욱 촉진되어 소비자에게 더 많은 선택과 더 나은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여세를 몰아 자연스럽게 글로벌 시장으로 가는 길도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점에 착안한 것이 비단 플랫폼법, DMA만 있는 것이 아니다. 현재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세기의 구글 반독점 소송은 물론 미 연방거래위원회(FTC)의 경우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 알파벳, 오픈AI, 앤트로픽을 대상으로 반독점 조사에 나서기도 했다. 

영국, 일본, 호주의 행보도 지켜볼 필요가 있다. DMA와 유사한 사전 규제 법안들이 속속 발의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국의 디지털 시장, 경쟁 및 소비자 법안(DMCC, Digital Markets, Competition and Consumers Bill)은 ‘전략적 시장 지위’를 지닌 디지털 플랫폼을 규제하고 불공정한 시장 지배를 방지하는 것이 목표며 일본의 경우 거대 플랫폼의 영향력을 낮춰 사용자의 종속 현상과 경쟁사 제거를 방지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나아가 호주는 주요 기업의 시장 지배력 남용을 예방하고자 디지털 플랫폼 서비스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진행하고 있다.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엘리자베스 워런 미 상원의원이 주장한 소위 '빅테크 쪼개기' 모두 특정 기업의 시장 지배자적 지위를 약화시켜 공정한 환경을 조성, 작은 기업의 존재감을 키워 이들에게 글로벌 시장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쪽으로 방점이 찍혔다.

결국 디지털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 움직임은 세계적인 트렌드며, 견고한 규제 도입은 해당 국가의 디지털 산업 성장을 촉진하고 다양한 자국 기업들이 글로벌 무대에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자연스럽게 스타트업이 성장할 수 있는 최소한의 토대가 된다. 

사진=갈무리
사진=갈무리

맞춤형 핀셋 전략 필요하다
글로벌 모바일 시대의 '폭군' 애플은 특유의 폐쇄적 iOS 생태계를 바탕으로 시장 전체를 자신들의 제국으로 지배하고 있다. 스스로가 시장의 표준이 되어 사용자는 물론 관련 기업 전체를 억압하고 있다. 

물론 미국 대법원이 1월 16일(현지시간) 에픽게임즈가 애플에 제기한 두 건의 반독점 소송에 대해 양측이 각각 제기한 상고를 모두 기각하는 등 제국의 균열은 엿보인다.

포트나이트의 에픽게임즈가 지난 2020년 8월 애플이 30%에 달하는 앱스토어 수수료를 요구하는 것에 반발, 이를 우회해 결제할 수 있는 별도의 외부결제창을 열자 시작된 양측의 공방에 있어 외부결제를 열지 않은 것은 경쟁 제한 요소가 있다고 본 1심과 2심 판결이 그대로 확정됐기 때문이다. 

DMA에 따라 유럽의 애플 이용자들이 애플스토어가 아닌 다른 플랫폼에서도 앱을 다운받을 수 있도록 한 것도 마찬가지다. 지나치게 강력한 권력을 가진 거대 폭군 플랫폼의 존재감을 분산시켜 시장 전체의 혁신을 끌어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일종의 트렌드로 정착되고 있다. DMA와 플랫폼법과 같은 규제는 거대 플랫폼 기업의 지나친 권력을 형해화시켜 시장 전체에 건강한 씨앗을 뿌리는 행위로도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규제마저 꼼수로 피하는 행위다. 당장 애플은 DMA에 따른 애플스토어 규제를 회피하며 또 다른 논란을 낳고 있다.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인앱결제 정책에 대해 우회로를 만들어 보란듯이 무시했던 사례가 반복되는 셈이다.

DMA 및 플랫폼이 추구하는 순기능이 '제대로' 발휘되려면 시기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일종의 핀셋전략으로 긍정적인 효과는 극대화시키고 부정적인 효과는 최대한 낮추는 전략이다.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그 동안의 공정거래법으로는 사후적인 규제만 가능하기 때문에 폭군의 칼날에 희생당하는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을 적시에 보호하지 못했던 사례들이 무수히 많았다. 불공정 거래, 담합 등으로 수년 후에 처벌하더라도 이미 시장에서 작은 경쟁자들은 사라져버린 후라 사후약방문이라는 지적이 무수히 제기되어 왔다. 스마트한 규제를 위한 선제적인 보호 법안이 필요한 이유다.

GSA가 DMA 법안 논의 과정에 적극 참여한 것이 더욱 부각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나치게 관대한 금지 조항과 규제로는 게이트 키퍼 기업들의 시장 지배를 무력화하거나 불공정한 행위를 효과적으로 제한할 수 없기에, 게이트 키퍼들의 자사 우대 정책과 같은 불공정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명확하고 엄격한 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히며 '더 먼 곳'을 보고 있다는 것을 입증했기 때문이다. 한국도 비슷한 흐름을 잡아가야 한다는 평가다. 

나아가 플랫폼법의 성패는 스타트업, 중소기업 및 소비자 단체 간의 지속적 대화 및 협력에 달려 있다는 것도 중요하다.  이들의 광범위한 지원과 신중한 실행을 통해서만 플랫폼법이 주요 플랫폼 기업의 독점을 막고 보다 경쟁력 있는 공정한 디지털 시장을 형성하는 중요한 첫 발을 뗄 수 있기 때문이다. 플랫폼법에 대한 입체적인 접근이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