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돌 반된 손자가 제 부모를 따라 더운 나라에 나가 있습니다. 일주일에 한번 꼴로 영상통화를 하는데 여기는 한참 추운 날도 반소매 차림으로 집을 콩콩 뛰어다니며 여전히 해맑습니다. 일년 전 나가서 이제는 말도 제법 하는 데 추위는 경험도 못 했으니 아예 개념이 없습니다. 이번 설을 쇠기 위해 보름여 간 들어오는데 손자가 어떨지? 일정에 맞추어 옷가지를 준비하고 있는데, 며칠 전에는 손자를 위해 귀여운 모자와 장갑도 사놓았습니다. 귀여운 빨간 장갑을 보여주니 설거지할 때 쓰는 빨간 장갑이냐고 물어서 모두가 웃었습니다.

손자에게 추위 적응 비법을 알려주겠다고 생각하니 십여일 전 산을 배우는 동료들과 나섰던 매서운 날의 산행이 생각났습니다. 산을 공부한 동료들끼리 1년에 두어번 베테랑 산악인 선배를 모시고 산행에 대한 전문지식도 배우고, 우의도 다질 겸 수도권 산을 오르는데 하필 그날이 많이 추웠고 바람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매서운 날씨가 조금 꺾이기 시작했고 햇빛이 있는 오후에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두 시간여 산을 타서 정상에 올라 잠시 멈추었다가 바로 하산을 했습니다. 산행 속도며 휴식 시간 운영 등 전반을 선배가 정했는데, 여러 가지를 고려해 하산을 서둘렀습니다. 하나는 땀이 나서 정상에서 멈추면 추위를 많이 느낄 수 있기에, 두 번째는 바람에 따른 저체온증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그날은 바람이 초속 4미터로, 평소보다 꽤 느껴졌습니다. 산에서 기온은 고도와 바람에 의해 떨어집니다. 그곳 산이 오백 미터급 산이니 고도는 그리 큰 영향을 주지는 않지만, 통상 100미터 올라갈 때 0.65도 정도가 떨어진다고 합니다. 문제는 바람. 1미터의 바람이 불면 1.6도 기온이 떨어진다고 하죠. 그날 초속 4미터의 바람이 불었으니 평소에 비해 6도 정도 떨어진 셈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겨울 산은 일찍 어두워진다는 것. 문득 젊은 시절 늦가을에 지리산 반야봉을 올랐다가 일찍 해가 지는 통에 정신없이 길을 걸어 화엄사에 불이 들어왔을 때 간신히 도착해 안도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불 켜진 상가 건물 쪽으로 내려오는 데 상가 쪽에서 새어 나오는 빨간 불빛이 너무 반가웠습니다. 간단한 저녁을 위해 들어간 식당에서 안전한 산행을 위한 하나의 팁이라며 선배가 입은 옷을 보여주었습니다. 방풍 보온이 되는 얇은 옷을 여러 벌 껴입은 모습. 마지막으로 우리 배낭을 슬쩍 쳐다보며 배낭이 크던 작던 필수적으로 몇 가지는 꼭 넣어 다니라고. 여벌 옷과 양말, 식량, 물, 헤드 랜턴, 보조배터리, 칼...

귀가길 산 아래에서 반갑게 만나는 등불.
귀가길 산 아래에서 반갑게 만나는 등불.

추위에 무슨 산행이냐는 가족들의 걱정을 이고 올랐는데, 손자에게 추위를 이기는 법을 알려주겠다는 나만의 생각을 가족들은 짐작이나 했을까요? 추위도 아는 만큼 피해 갈 수 있겠지요! 또 추위에 서니 땅속에서 무슨 소리를 들을 듯도 했습니다. 그건 땅속 뿌리와 씨앗의 아우성이었을까요? 식물학자의 말을 마음에 담아 보았습니다. ‘겨울의 낮은 기온을 경험한 씨앗만이 봄의 따뜻함을 느끼고 싹을 틔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