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사우디국제방산전시회 현대로템 다목적 무인차량과 부스 전경. 사진=현대로템
2024 사우디국제방산전시회 현대로템 다목적 무인차량과 부스 전경. 사진=현대로템

방산업계에 중동발 훈풍이 불고 있다. 지난해 이집트 방산전시회(EEDX), 두바이 에어쇼 등에 대한민국 방산기업이 대거 참여한 것에 이어, 올해도 2월 4일부터 5일간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에서 열리는 2024 사우디 국제방산전시회(WDS)에도 단체로 모습을 드러내며 K-방산의 위용을 아낌없이 과시 중이다. 중동 지역을 둘러싼 지정학적 리스크와 안보 위기 때문에 생산성이 높고 납품이 용이한 데다 기술까지 뛰어난 한국산 무기체계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형국이다. 특히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제작한 FA-50은 이집트 공군의 대규모 고등훈련기 도입 사업의 유력 기종으로 현재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출입은행 자본금 늘리는 법 개정안 언제 통과되나”…기다리다 목 빠지는 업체들

하지만 일련의 훈훈한 분위기에도 방산업체들은 쉽사리 웃지 못하는 분위기다. 수출 금융을 지원해주는 수출입은행의 자기자본금이 한도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국회에서는 뒤늦게 윤영석 국민의힘 의원과 양기대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을 중심으로 수은법 개정을 추진하며 자기자본금 한도를 최대 35조원까지 늘리기에 나섰지만, 개정안은 정쟁으로 인해 기재위 경제재정소위에 계류된 상태다. 업계에선 총선 전까지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한다면 중동 진출은 고사하고 이미 체결된 30조원 규모의 폴란드향 2, 3차 납품 계약도 온전히 이행하기 어려우리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수출입은행(이하 수은)은 수출입 과정에서 요구되는 수출금융을 지원한다. 현행 수은법상 대기업 집단 등 특정 대출자를 대상으로 한 대출은 수은 자기자본의 40%까지로 제한된다. 현재 수은의 자기자본 한도는 15조원이다. 40%인 6조원이 최대 대출 가능 한도다. 이 한도는 폴란드향 1차 납품사업에서 대부분 신용공여로 사용됐다. 국가 간 거래가 많은 방산 수출은 계약 규모가 거대하고 물품 인도까지 긴 시간이 소요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무기 판매국은 구매국에게 저금리 대출, 장기 분할상환 등 금융지원을 제공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번엔 2차 계약에 대출해줄 여력이 수은에 없다는 점이 문제다.

현재 2차 납품 계약을 이행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제외하곤 모두 발이 묶였다. 현대로템이 지난 2022년 폴란드와 체결한 K2 기본계약 물량은 1000대다. 이 중 1차 계약 물량을 제외하고 앞으로 820대를 추가로 납품해야 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역시 3차 계약이 남아있어 마냥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폴란드 키엘체에서 지난해 9월 5~8일까지 열린 국제방위산업전시회(MSPO) 전시장 입구에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다련장로켓 천무가 미국 하이마스 폴란드형과 나란히 전시됐다. 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폴란드 키엘체에서 지난해 9월 5~8일까지 열린 국제방위산업전시회(MSPO) 전시장 입구에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다련장로켓 천무가 미국 하이마스 폴란드형과 나란히 전시됐다. 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수출금융이 경색되자 폴란드 내부에서도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온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도날드 투스크 폴란드 신임 총리는 지난해 12월 28일 기자회견에서 “한국산 구매의 상당 부분은 한국이 제공하기로 한 차관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기로 한 것이었지만, 결국 한국의 대 폴란드 차관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서 “한국과의 계약이 지속되길 희망하지만, 일부 수정을 검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업계뿐 아니라 연구계도 수은법 계류를 놓고 우려를 내비친다. 산업연구원은 지난달 31일 ‘최근 K-방산 수출금융 주요 이슈와 향후 과제’ 보고서를 발간했다.

산업연은 “폴란드가 무기계약을 철회할 경우, 우리나라는 ▲동·북유럽 국가 방산 수출 차질 가능성 증대 ▲유럽 방산 수출 교두보 확보 애로 ▲한반도 유사시 국제방산협력 애로 등과 함께 ▲폴란드 무기계약과 관련된 K-방산기업 전체에 커다란 악영향을 초래할 것”이라며 “우선적으로 국회 계류중인 수은법의 신속 개정 및 시중은행 참여 유인책 마련과, 선진국 수준의 차별화된 수출금융지원시스템 구축, 수출금융창구 단일화, 방산수출금융조직 마련, 한국형 방산수출차관(K-FMF) 제도 도입 등 방산수출금융지원제도 고도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월 19일 임시국회가 마지막 기회”

이렇듯 업계 전반을 두고 수은법 개정안 요구가 뜨겁자, 정치권에서도 2월 중 개정을 최우선과제로 두고 추진하려는 분위기다.

먼저 김병환 기획재정부 1차관과 윤희성 수출입은행장이 지난달 17일 국회를 방문해 수은법 개정안의 조속한 처리를 촉구했다. 수은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윤영석 국민의힘 의원과 여당은 2월 중 개정안 처리를 위해 야당에 협조를 요청했다.

총선 전 통과는 여전히 미지수다. 한 기재위 의원실 관계자는 “지난해 11월 기재위 경제재정소위가 무산되는 등, 총선을 앞두고 여야 대립이 극심한 상황”이라면서도 “여야 모두 개정안 신속 통과가 필요하다는 시선은 같기에, 공통의 목표를 두고 협력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여야는 앞서 지난해 11월 23일 기획재정위원회 경제재정소위원회를 열고 수은법 연내 개정을 논의할 예정이었지만, 논의 예정이었던 23일 더불어민주당이 5호선 김포 연장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법안을 단독 처리하면서 이에 반발한 국민의 힘 의원들이 경제재정소위에 불참하며 무산됐다. 3월부터는 여야가 본격적인 총선 국면으로 접어들어, 다가오는 임시국회가 21대 국회에서 수은법 개정안을 통과시킬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기회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