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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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원료의약품의 높은 해외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팔을 걷어 붙였다. 원료의약품의 높은 해외의존도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전 세계적인 이슈로 떠올랐다. 의약품 선진국인 미국과 유럽 등에서도 핵심 과제 중 하나로 거론된다.

29일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 따르면 정부는 최근 조세특례제한법상 ‘신성장·원천기술’에 ‘혁신형 신약·개량신약의 원료 개발 및 제조기술’ 추가를 결정하고 관련 시행령을 개정했다.

혁신형 신약·개량신약의 원료 개발과 제조기술에 대한 세제지원은 R&D 비용 2~25%에서 20~30%, 시설투자는 1~10%에서 3~12%로 확대된다. 이러한 세제지원은 올해 1월 1일 지출분부터 적용된다.

이 같은 조치는 그동안 계속된 제약바이오 업계의 건의 속에서 이뤄졌다. 제약바이오협회에 따르면 국내 원료의약품 자급도는 2018년 26.4%에서 2022년 11.9%까지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특히 국내 원료의약품 자급도는 2021년 24.4%에서 2022년 11.9%로 반토막이 났다. 자급률이 30%를 웃도는 일본·유럽 등 주요국에 비해 크게 낮다. 원료의약품 수입 규모는 2021년 20억9000만달러(약 2조7431억원)에서 2022년 24억3000만달러(3조1888억원)로 16.3% 늘었다.

이에 제약바이오협회를 중심으로 의약품 원료에 대한 개발과 생산을 촉진하기 위한 세제지원 건의가 이어졌다. 정부의 이번 시행령 개정은 이같은 제약바이오업계의 의견을 수용한 것이다.

원료의약품 공급 절반 중국·인도에 의존

현재 전 세계 원료의약품 공급망은 중국과 인도가 주도하고 있다. 한국은 2022년 중국에서 역대 최대치인 9억1000만달러(1조1943억원) 규모를, 인도에서 3억달러(3937억원) 규모를 수입했다. 원료의약품 공급의 절반을 이들 두 국가에 의존하고 있는 셈이다.

이렇듯 원료의약품 자급도 제고가 시급한 현 상황에 정부의 세제지원 정책이 나오자 제약바이오협회는 환영의 목소리를 냈다. 협회는 “원료의약품에 대한 해외 의존도가 높아지는 현실에서 이번 세제혜택은 국내 원료의약품 산업을 활성화하는 촉진제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어 “미국·EU·일본 등 주요 선진국은 필수의약품과 원료의약품의 자국 내 생산을 독려하기 위해 다양한 지원책을 강구하고 있다”며 “우리 정부 역시 국제적 공급망 변화에 대비하고 해외 원료의약품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실질적인 지원책을 마련했다”고 호평했다.

미국, 유럽 등 주요국들도 앞서 원료의약품 수급 방안을 강구한 바 있다. ▲공급망 안정화를 위한 조직과 법제도 정비 ▲자국 내 지속 생산을 유인할 수 있는 인센티브 지급 ▲동맹국과의 협력 강화 등이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2022년 9월 의약품 등을 자국 내에서 제조·생산하도록 촉진하는 ‘국가 바이오기술 및 바이오제조 이니셔티브’ 행정명령 관련 약 20억달러(2조7000억원) 이상의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지난해 3월에는 바이오 공급망 강화를 추진하며 중국과 인도에 의존하는 원료의약품 가운데 25%를 자급하겠다는 구체적인 목표도 제시했다. 11월에는 국방물자생산법을 통해 미국 내에서 더 많은 필수의약품을 생산하고 의약품 부족을 완화하겠다는 신규조치계획을 발표했다.

EU 대다수 국가는 지난해 5월 의약품 공급 안정성 개선을 위한 ‘중요 의약품법(Critical Medicines Act)’의 제정 제안에 동의했다. 이 법안은 EU 내 필수의약품 생산뿐 아니라 의약품원료 및 기초화학물질 생산을 장려해 중국과 인도 등 해외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것이다. 벨기에가 제안하고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스페인 등 18개국이 지지했다.

‘세계의 약국’이라 불리는 인도조차 원료의약품 해외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인도 정부는 지난 2020년 생산연계 인센티브(PLI) 제도를 원료의약품에 적용했다. 이 제도를 통해 기업에 자국 제품의 매출 증가분과 투자의 일정 비율을 보조금으로 최대 6년간 지급하고 있다.

2021년부터는 벌크의약품, 의료기기, 의약품 분야에 PLI 제도를 추가 적용했다. 또 41개의 핵심 벌크의약품에 대한 인도 내 생산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6940크로레(약 1조1000억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인도 신용평가기관인 ICRA는 이러한 조치들을 통해 향후 4~5년 내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25~30% 낮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바이오협회 관계자는 “미국, 유럽 등 많은 국가도 원료의약품의 특정 국가 수입 의존도를 낮추고 공급망 차질에 대비하기 위해 핵심(필수)의약품을 선정하고 공급망 안정화를 위한 조직 및 법제도 정비, 자국 내 생산을 유인할 수 있는 인센티브, 해외 동맹국 확대 등 중단기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