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도라는 섬에서 산림치유지도사로 일했었습니다. 섬 이름이 고슴도치 위(蝟)자(字)를 써서 위도((蝟島). 고슴도치들은 얼어 죽지 않으려고 가까이 붙어서 옆 친구의 체온으로 몸을 덮힌다고 합니다. 그런데 너무 가까이 붙으면 가시에 찔리고 말겠죠. 거기에서 사람 사이의 거리두기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지만, 워낙 작은 섬이다 보니 사람과의 교류가 별로 없어 저절로 거리두기가 되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할 즈음의 늦가을에 어느 직장의 여성분들이 산림치유를 받으러 왔습니다. 실내서 간단한 인사와 소개를 한 후에 먼저 야외 활동을 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습니다. 처음 분위기를 띄우는 차원에서 치유숲길을 걷다 잠시 멈춰 떨어진 낙엽 중에서 하나씩 주워 그 낙엽을 줍게 된 이유를 얘기하며 스스로를 말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사람들의 발길에 밟혔을 법한 낙엽을 든 분에게 이유를 물으니 요즘 여러 가지로 힘들어서 이 낙엽처럼 마음이 너덜너덜하다고, 빨간 단풍잎을 든 분은 빨간 잎처럼 최근 화가 나 있다고, 뾰족한 참나무 잎을 든 분은 자기 성격이 이처럼 모는 나지만 그래도 좋은 점도 있는데... 대략 난감한 분위기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선뜻 자기 얘기를 한 게 한편으로 고마웠고, 그 말을 통해 많은 부분이 저절로 치유가 되었기를 바랬었지요. 평소 내 성격도 그쪽이라 늘 조심해왔지만, 재삼 사람 사이 거리두기가 중요하다는 걸 생각했지요.

나무들의 거리두기는 어떨까요? 나무 특성을 보면 나무가 모여있으면 서로 햇빛 경쟁을 해서 우선 위로 키 크는 데 온통 신경을 씁니다. 그러느라 몸통을 넓히지 못하다 보니 비바람에 약해집니다. 반면 공원이나 마을 입구에 한 그루씩 뚝 떨어져 있는 나무는 햇빛 경쟁을 할 필요가 없으니 몸통을 키우며 크게 됩니다. 그러니 튼실한 나무가 되고, 오래가는 나무가 될 확률이 높습니다. 그래서 홀로 서 있는 나무들에 웬지 더 눈길이 가고 무언의 응원을 보내곤 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생각이 조금씩 바뀌고 있습니다.

겨울이어도 함께하니 멋진 메타세콰이어 나무들
겨울이어도 함께하니 멋진 메타세콰이어 나무들

나이 탓일까요? 나이 들면 관대해지며, 행복한 순간도 나 자신을 위할 때보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할 때 더 느끼게 된다는 심리학자의 말에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어울려 사는 쪽의 미덕으로 기우는 것 같습니다.

어느 식물학자의 얘기는 홀로 사는 나무의 고난을 고스란히 얘기하는 것 같습니다. ’나무들의 겨울에서 봄으로 변화 모습이 워낙 극적이어서 늘 삶과 죽음의 문제에 집착해온 인간으로서 큰 영감을 받을 수 있겠다...‘ 혼자서 겨울을 넘기는 나무를 보니 무엇보다 생존이 걱정되며 함께 모여 겨울을 견디는 나무들의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나무들에게도 울창한 숲이 품이 될 것입니다. 더구나 작금의 지구온난화를 늦추기 위해서라도 더 많은 활엽수 숲을 만들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려니 잎들이 다 진 양재천의 메타세콰이어 한 그루는 볼품없지만, 함께 해서 어울려 보이는 모습은 우리가 갈 길을 말해주는 듯했습니다.